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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투사의 죽음

꼭 1년이 됐다. 백남기 선생이 물대포에 쓰러진 지. 그 때도 지금만큼 추웠다. 청계천의 다리 위에서도 종로1가의 싸움이 그대로 보였다. 골목길에서 다친 이들을 기다리던 앰블런스에까지 사정없이 쏟아져내리던 물대포는 한참 떨어져서 볼 때도 위협적이었다.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노인 한 분이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송고되어 온 사진에서 그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선생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떠오른 노래가 ‘투사의 유언’이었다.

“한평생 후회없이 싸우다간다.
못 다한 일들 가슴에 품고.
나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할까.
또 다시 투사가 되어 투사가 되어~”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가 불렀던 이 노래가 이 때만큼 가슴에 박힌 적이 또 있었을까? 20대에는 소주 한 잔을 걸치고 핏대를 세워서 이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그저 속으로만 읊조린다. 선생처럼 한 평생을 ‘싸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 같아서다. 유신과 싸우던 선생의 젊은 날과 우리 밀을 지으며 이름없는 ‘농사꾼’으로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의 삶에 차례로 찾아오는 후회와 갈등, 주저함의 순간이 선생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그 순간들을 이겨내며 한 자리에 서서 꿋꿋하게 살아오셨으니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스팔트 위에서 물대포를 견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대통령을 욕하고 있지만 1년 전만해도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야당은 내홍과 분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영원히 권력을 이어갈 것처럼 보였다. ‘민중총궐기’가 끝나고나면 경찰이 민중단체들을 마구잡이로 때려잡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지난 해 말 조계사로 피신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렇게 끌려가 지금도 감옥에 있다. 그래도 1년전 민중총궐기에 나섰던 이들이 ‘싹쓸이’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선생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모두를 독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깊어지면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시류에 따라 살아가는 게 지혜라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진정한 자유는 싸우는 데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는 창덕궁을 넘어 서울대병원 쪽이 보인다. 그 때마다 저 곳에서 선생이 싸우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지난 1년을 나쁜 놈이 되지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선생께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가슴에 품으셨을 못 다한 일들은 모두가 조금씩 나눠가졌으니 이제 고향의 흙에서 영원히 평화로우시길. 영원히 자유로우시길.

이정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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