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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헬조선이여, 꺼져라!

100만의 촛불이 타오를 줄은 몰랐다. 민중투쟁과 민심의 현장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는 사회운동가가 아니고서는 그저 ‘(지난 번보다 거리에) 더 많이 나오겠지’하고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저 멀리, 부산 자갈치시장의 아주머니까지 올라와서 “그동안 속고, 속고, 또 속아 살았심니더. 이제는 속지 마입시더.”하고 부르짖을 줄은 몰랐다. 우리는 지금 87 민중항쟁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벅찬 역사의 한복판을 살고 있다.

광화문과 종로에 박근혜 퇴진 촛불들
광화문과 종로에 박근혜 퇴진 촛불들ⓒ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우리는, 100만의 촛불은 승리했는가? “저를 밀어올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마저 등을 돌렸는데 (고립돼 버린 놈이) 안 내려오고 배기겠어?”하고 쉽게 낙관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악착같이 버티다 보면 민심이 다시 (얼마쯤이라도) 반등할 때가 올 거라고 청와대 패거리는 신앙하겠지만 천만에! 지지율 5%는 0%와 다를 것 없네. 사람 세상에는 어디든 금붕어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 부분은 빼고 봐야지.”

하지만 우리는 지금 박정희의 딸과 맞장뜨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최태민의 혼에 의해 지배돼 왔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더 중요한 사실은 최태민 이전에 박정희가 그녀의 영혼을 (더 널리, 더 깊이) 지배해 왔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어떤 사람인가? 젊어서 그는 제 목숨 살리려고 숱한 벗[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저를 반대하는 정치인 김대중을 바다 한 복판에서 남몰래 죽이려고까지 한 무자비한 독재자다.1) 무엇보다 그는 ‘막걸리 반공법’으로 모든 민중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홧발로 노동자들을 짓밟았다. 그녀는 아비로부터 그런 끝없는 권력욕을 물려받았다. 제 분부를 따르지 않았다고 문체부 관리들을 족집게로 집어낸 것은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쪼인트 까기 일쑤였던) 그녀의 아비를 떠올리자면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지, 최순실의 아바타라는 것이 아니다.2) 전前 대통령 김영삼이 자랑했듯이 “남들한테 머리를 빌리는 것이 무에 대수”라는 말인가?3)

그래서 이 싸움이 언제 명쾌하게 끝날지 우리는 사실 알 수 없다.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 ‘퇴진 후 (그녀의) 안전보장을 약속해 주자’고 의견을 내고,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사이트에 ‘(그녀를) 사면해 주자’는 주장글이 실린 것도 그래서 일리가 있다.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 싶으면 절대로 내려올 리 없다는 것이다. 제 안위安危 지키는 것 말고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그런 집권자와 우리는 나라의 명운命運을 놓고 한 달이 될지, 1년이 걸릴지 모르는 건곤일척의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모금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모금ⓒ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싸움의 최대 전과, ‘청소년들의 깨어남’

그래서 필자가 꺼내고 싶은 말은 “전리품戰利品을 제대로(단단히) 챙겨 가며 싸우자.”는 것이다. 무슨 얘긴가? 이번 촛불에서 제일 벅차게 다가오는 대목은 발랄한 청소년들이 우루루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원주의 어느 여고생은 서울 올 차비가 없어서 아예 스스로 거리의 집회를 주동해 버렸다. 그 애는 자기 학교로 돌아가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3.1운동 때의 감격만큼은 아니라도 스스로 나라의 주인으로 나선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 청소년들이 한둘이 아니리라. 100만 촛불에서 얻어진 가장 고귀한 전리품은 이들 청소년들의 자부심이 아니겠는가.

불과 달포 전만 해도 우리는 헬조선을 말했다. 99%의 민중이 가난하고 불안스런 삶을 살아가고, 알바 인생이나 비정규직 밖에 선택할 길이 없는 청년들이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지냈다.4) 그런데도 한국 사회(국가)는 어린 초중고생들더러 “입시 경쟁에서 살아 남아라!” 하는 눈먼 지령만 때려 놓고 ‘나 몰라라’ 했다. 왜 경쟁해야 하는데? 금수저들의 인생길에 들러리나 서라고? 지잡대(지방의 잡스런 대학)생이든, 이른바 명문대생이든 앞길이 보이지 않기는 별로 다르지 않은데 그저 요행수로 세상에 살아남기만을 바라라고?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침묵하면 (언젠가) 마당귀 돌멩이들이 들고 일어나 외치리라.” 주입식 입시교육에 찌들어 살아가고 스트레스는 스마트폰과 게임기로나 푸는 줄 알았던 청소년들이 어느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짓말쟁이 대통령은 물러가라!” 외쳤다. (어린/어리석은) 미성년자라고 밀쳐 놓았던 그들이 대담하게 ‘시국선언문’을 쓰고 버젓이 교문 앞에서 그것을 낭독했다. 이것이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미리(일찌감치) 결산해 보건대 우리 싸움의 최대 전과戰果는 ‘청소년들의 깨어남’이다. 이들이 오늘은 박근혜게이트에 분노하지만 내일은 한반도에 점점 드리워지고 있는 전운戰雲을 깨닫고, 모레 글피에는 생태계 파괴를 아랑곳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추레한 몰골도 반성하게 될 것이다.5) 성추행(미수)범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선장船長이 된 갈팡질팡의 세계를 옳게 헤쳐나가려면 우리 청소년들이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불 밝힌 대통령 하야 촛불
불 밝힌 대통령 하야 촛불ⓒ양지웅 기자

아이들한테 다가가자. 100만 촛불로 하여 학교 교사들도 많이 깨어났겠지만 아이들을 헬조선을 깨부술 주체로 세우는 데에 그분들의 노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른들 모두(!)가 선생이 돼야 한다. 아이들과 “세월호, 사드, 역사교과서와 위안부 (비밀)합의, 한일군사협정, 기후악당 국가, 미치광이 트럼프, 비정규직과 빈부양극화, 머잖아 닥칠지도 모르는 원전 붕괴 사태, 그리고 눈먼 입시경쟁”에 대해 토론하자. 그들한테 세상의 갖가지 어두운 치부恥部를 일러주고, 또 그들한테서 발랄한 희망을 수혈輸血받자.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은 바로 이런 ‘만민공동회’다.6)

....‘헬조선’은 운명의 현실이 아니라 이명박근혜 밑에서 앞길을 찾지 못하던 우리의 절망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아이들이 깨어나는 순간, 적어도 그런 낱말과 그런 암울한 감정만큼은 단박에 날려보낼 수 있다. 그러니 꺼져라, 헬조선!

1) 육영수 저격사건의 진상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 김종필에 따르면 그녀는 5천만이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올 유아독존이란다(시사저널 인터뷰).
3) 대통령이 내쫓기는 마당인데 국방부가 일본과 수상쩍은 군사협정을 멋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줌 집권세력이 쿠데타를 벌이는 중이다.
4) 김제동이 진행하는 ‘톡투유’ 프로그램의 청중들은 걸핏하면 눈물을 흘린다. 마치 울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찾는 것 같다.
5) 최근 세계 환경단체들은 지구온난화 대비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4대 악당(!) 국가로 한국과 사우디, 호주와 뉴질랜드를 꼽았다.
6) 문해文解운동 시절(1960년)의 쿠바는 온국민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변혁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우리도 한반도 모두를 (국가 개조의) 배움터로 만들어야 한다. 새 사람들이 태어나야 한다.

정은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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