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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조양호 회장에 찍힌 ‘대한항공 블랙리스트 1호’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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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이규남(55) 위원장은 자신을 “대한항공 블랙리스트 1호에 오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수차례의 권고사직·법정다툼, 부기장 강등, 전출, 감봉 등 25년간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면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징계는 다 받았다. 그는 이런 파란만장한 경력(?)을 “노조활동과 바꾼 훈장”이라고 말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부당한 것을 보면 싸우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이 위원장을 25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만났다.

이규남 대한항공 조정사 노조 위원장을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만났다.
이규남 대한항공 조정사 노조 위원장을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만났다.ⓒ민중의소리

‘한번 실수가 대형참사’ 파일럿의 운명
노조설립이 대형 사고를 막았다?

“조종사가 꿈이었나”라는 질문에 그는 멋쩍은 듯 웃었다. “제가 제주도 출신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육지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배보다 비행기가 훨씬 빠르잖아요.”

이 위원장은 1979년에 항공대학교 항공운항과에 입학해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 대학 ROTC를 거쳐 군에 입대했고, 조종사 교육을 마친 후 1991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하늘을 이불 삼아 생활하는 파일럿의 로망이요? 그런 이상은 운항 교육을 받을 때 이미 깨져요. 수백명 승객의 안전이 달린 운항 과정에서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데요. 기상환경, 관제탑과 소통, 운항 안전 등 이것저것 점검하면서 긴장상태로 있다 보면 그런 기분 느낄 겨를도 없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가장 위험한 직업이 항공기 조종사입니다.”

19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 보잉747 미국 괌공항 착륙 사고 (자료사진)
19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 보잉747 미국 괌공항 착륙 사고 (자료사진)ⓒ민중의소리

# 1997년8월, 대한항공 보잉747 미국 괌공항 착륙 중 추락, 225명 사망·29명 부상 # 99년4월, 대한항공 MD11 중국 상하이공항 이륙 직후 추락, 8명 사망·41명 부상 # 99년12월, 대한항공 보잉747 영국 스텐스테드공항 이륙 후 추락, 4명 사망.

이 위원장의 입사 후 2000년 전까지만 해도 항공기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조종사들은 “살인적인 비행 스케줄이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조종사 한 달 비행시간이 140시간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비행기를 운항하는 시간이고, 비행 준비 등 기본 업무 시간을 포함하면 근무시간은 훨씬 늘어납니다. 일의 특성상 시차가 수시로 바뀌어서 제대로 잠을 자거나 쉬기도 어렵습니다. 살인적인 비행스케줄 때문에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그를 비롯한 조종사들을 “이러다 죽겠다”는 심경으로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와 집회를 했고, 사상 초유의 비행기 파업까지 결의했다. 당시 기장과 부기장은 청원경찰 신분이라는 이유로 노조설립 신고가 반려된 상황이었다.

“합법 노조를 만들기 위해 불법 파업까지 결심했어요. 지도부들은 감옥 갈 것까지 각오하고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파업 날이 다가왔고, ‘끝까지 간다’라는 각오로 버텼습니다. 파업 당일 오전, 정부의 중재로 노조 설립 필증이 나왔습니다. 첫 비행 때보다도 더 짜릿했죠.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 때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합법 노조 지위를 인정받고 많은 것이 변했다. 먼저 한 달 140시간이었던 비행시간이 80시간으로 줄었다. 그는 “노조가 만들어진 후 대형 인명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게 주요 성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도 있었다. 노조 파업을 주도했던 10여명의 집행부들이 해고를 당했고, 수십명의 노조원들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당했다. 이 위원장도 온갖 이유로 권고사직, 직위강등, 감봉 등의 징계를 당했고, 25년차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재차 강등돼 부기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라 후회한 적 없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작지만 조금씩 근로환경 등이 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해고자들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한항공은 최순실 게이트의 축소판”
고액 연봉자들은 파업도 못 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세무조사 촉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세무조사 촉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는 “대한항공 모습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했다. “시스템이 없습니다. 국정 운영 절차를 무시하고 대통령과 최순실 입김에 나라가 돌아가듯이 대한항공도 이사회 등 경영 절차에 의해 회사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회장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운영됩니다. 아마 회사 전체를 개인 사유물로 생각하나 봅니다. 제왕적 경영 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커지는 중국 항공사들에 머지않아 따라 잡히고, 잠식당할 겁니다.”

그는 위기의 징조로 항공기 조종사의 중국 유출을 예로 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작년에만 92명의 한국 조종사들이 해외로 유출됐고, 이 중 84명이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다. 올해에도 100여명 유출자 중 대다수가 중국으로 이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봉도 2~3배가량 높고, 근로조건까지 좋으니 조종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으로) 안 가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일하던 동료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노조가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듭니다. 청춘을 바친 회사에요. 우리 아이, 손자들이 봤을 때도 최고의 항공사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습니다.”

노조는 올해 사측에 37%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1.9% 인상으로 맞섰다. 노조와 사측 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10여년 만에 파업도 예고됐다. 이같은 대립을 두고 일부 언론들은 ‘고액의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더 높은 임금을 위해 파업까지 경고했다’는 내용의 비판을 쏟아냈고, “항공 운항을 담보로 한 파업이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까지 전망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언론 보도에 불편한 심정을 표했다. “조양호 회장은 한해 연봉으로 60억 이상을 챙깁니다. 노동자들이 피땀 흘린 대가를 그냥 가져가는 겁니다. 조종사들은 밤낮없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운항한 결과로 연봉을 받는 거고요. 사측과 잘 싸워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파업도 하면 안 됩니까? 재벌과 보수언론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입니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더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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