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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사라져가는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하는 이인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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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된 아파트가 무너진다. 하나의 아파트가 한 동네를 이룰 만큼 거대한 공간에 일순간 펜스가 둘러지고, 이제 곧 지도 한켠에서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곳에 '정주'하면서 '적응'해 온 6천 세대의 기억도 함께 헐리게 된다. 흘러온 세월만큼 칠이 벗겨져 초라한 외관이라도, 가끔 녹슨 물이 나오긴 하더라도 예정된 이별에 삐져나오는 헛헛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편집장 이인규 씨는 재건축을 앞둔 이 아파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파트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집을 직접 찾아가고, 그 집과 함께 켜켜이 쌓인 삶을 풀어낸 4번째 책을 냈다. 이인규 씨는 공간을 기록하면서 상실감을 추억으로 만드는 중이다. 그렇게 기억은 단절되지 않고 사진으로, 글로 남아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이인규 편집장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이인규 편집장ⓒ민중의소리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일종의 프로젝트입니다. 둔촌주공아파트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사람들의 교류와 인연을 기록하는 것이죠. 12년간 아파트에 함께 있던 커다란 놀이터를 기록하기도 하고, 아파트의 나무들을 기록하고, 아파트 주변의 학교나 상가 등을 기록할 수도 있고요. 한마디로 이 아파트 안에서 사는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초기에는 주로 동네를 소개하는 내용을 잡지 형태로 담았어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나중에 이곳이 사라지더라도 이 잡지를 펼쳐보면 그리울 수 있는 풍경들을 옮겨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재건축으로 사라질 고향의 풍경과 추억을 기록하다

이인규 씨에게 고향은 둔촌주공아파트다. '아파트가 어떻게 고향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답변으로 맞받아쳤다. 따지고보면 그녀는 '둔촌 토박이'인 셈이다. 사람들은 '삭막하다'고 표현하는 아파트를 이인규 씨는 '계절마다 풍경이 아름다운 고향'이라고 말한다. 봄에는 1단지 벚꽃길이 예뻐 한참을 머물게 되고, 여름에는 2단지와 4단지의 푸른 메타쉐콰이아 잎이 단연 으뜸인, 그런 곳이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1편과 2편 그리고 3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1편과 2편 그리고 3편.ⓒ이인규 편집장 제공

"흔히 고향을 생각할 때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겠지만 저처럼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아파트가 고향이죠. 특히 둔촌주공아파트에는 20~30년 거주한 사람이 많아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같이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잠깐 이 곳을 떠났을 때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이곳을 찾아와 위안을 얻었어요. 동네를 둘러보다 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따뜻한 가족의 울타리에서 살던 기억도 나더라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됐는데 어렸을 적 살았던 아파트를 가보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가끔 인생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일종의 회귀본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파트도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죠."

그런 고향이 이르면 내년, 재건축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재건축 이야기가 나온 지도 어느덧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딘 진행에 혹시나 재건축이 미뤄지는 것은 아닌가 기대도 품었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아파트는 차근차근 헤어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인규 씨는 재개발을 '인재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예정된 '인재'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 씨는 지난 2013년 5월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4권의 책이 발행되었고, 재건축으로 주민들 이주가 끝날 때까지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지게 됐을 때 어떤 행태로든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둔촌주공아파트의 모습을 개인적인 기록으로만 남겨두었는데 그 와중에 동일본대지진 이후 '미래에의 기억'이라는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일본대지진으로 폐허가 되기 전 동네 사진들을 올릴 수 있도록 저장 공간을 만든 것인데요. 당시 일본 사람들은 지진이라는 재해로 생활 공간과 함께 그 속에서 나누던 기억도 한순간 잃게 됐습니다.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 없어진 셈이죠. 상실감 가득한 사람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복원한 프로젝트를 보고 저도 사라질 아파트를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재건축은 인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서'라고는 말하지만 고향을 잃어버리게 될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해나 다름없거든요. 예정된 재해니만큼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으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풍기는 삶의 냄새를 담아 '당신의 집을 기록합니다'

이인규 편집장은 4번째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X가정방문’을 집필하기 위해 집집마다 직접 만든 전단지를 통해 신청자를 받았다.
이인규 편집장은 4번째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X가정방문’을 집필하기 위해 집집마다 직접 만든 전단지를 통해 신청자를 받았다.ⓒ이인규 편집장 제공

최근에 발간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X가정방문'은 사람들의 집을 기록해온 영상 작가 라야와 협업한 작업으로, 이인규 씨의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12가구를 방문해 촬영하고, 그들이 이 공간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분량도 어마어마하다.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는 두터운 책이다. 책 곳곳에는 검게 때가 탄 운동화들과 미뤄둔 설거짓거리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그야말로 집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이곳에는 5살부터 살았던 집에서 지금은 6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기 엄마의 삶이 있고, 봄이면 벚꽃이 가득한 창이 있는 3층에서 28년간 산 어머니의 삶도 있다.

"4번째 책은 직접 12집을 방문해서 그 집의 풍경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집과 삶에 대해 집중한 프로젝트인데요. 이전까지의 작업에서는 상실감이 컸어요.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한집한집 그분들에게도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에 더 많이 담아내야겠다는 욕심이 폭발했던 것 같아요."

"동네 게시판에 '당신의 집을 기록합니다'라는 전단지를 하나하나 넣어두거나 SNS를 이용해서 신청자를 받았어요. 신청하신 분들 대부분이 재건축으로 인해 내가 살았던 집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더라고요. 지금의 이 모습을 기록해놔야겠다는 마음으로 신청해주셨어요."

"12곳 중 6곳은 오래 거주한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정주'라는 제목으로 엮었어요. 나머지 6곳은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거주 기간이 10년 미만인 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주와 적응이 연결돼있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적응해서 살다 보면 정주하게 되니까요.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다 보니 오히려 지금 둔촌주공아파트에 어떤 모습들이 살고 있는지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둔촌주공아파트와의 마지막 1년, 고향에 인사를 건네며 이별을 준비할 때

둔촌주공아파트의 상징 ‘놀이터 기린미끄럼틀’이 철거되기 전 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불꽃놀이를 하며 이별했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상징 ‘놀이터 기린미끄럼틀’이 철거되기 전 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불꽃놀이를 하며 이별했다.ⓒ이인규 편집장 제공

지난 9월에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임시총회에서 관리처분 협의안이 통과됐다. 이제 주민들이 이주할 시기를 결정하는 일만이 남았다. 길게 내다봐도 앞으로 1년이 남았다. 이 씨도 고향에 '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여기를 떠나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둔촌 축제를 열고 싶어요. 90년대 초에 시작된 마을 축제인데,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자 사라졌다고 해요. 트로트도 부르고 장기 자랑하면서 '별의별 사람이 다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마을주민 모두가 하나가 되는 축제였거든요. 그 축제를 동네 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열고 헤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마지막입니다. 아마 마지막으로 기록하는 모습은 모든 주민들이 이주하고서 남게 되는 썰렁한 풍경이 클로징이 되겠죠. 진짜 떠나보내는 그림이 되겠네요. 저는 이곳이 살아있는 모습을 가장 남기고 싶어요. 보통 재건축 아파트를 기록한다고 하면 철거되는 모습을 남기잖아요. 저는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지금의 모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헤어짐을 기다리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럴수록 이인규 씨는 더 많은 둔촌주공아파트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이인규 씨의 사무실 한 켠에는 얼마 전 철거된 놀이터 기린 미끄럼틀의 콘크리트 조각이 놓여 있었다. 이제 놀이터가 아니라 아파트 한 동이 철거될 것이고 나아가 동네 전체가 철거될 것이다. 하지만 둔촌주공아파트의 살아있는 모습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는 이 씨가 있기 때문에 그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 책을 만들었을 때는 혼자 감정이입을 너무 많이 해서 울면서 쓴 기억이 있어요.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이 사라질 수 있나 해서. 그런데 지금은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프로젝트를 하며 만나게 된 어떤 분은 제가 진행하고 있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에 대해 설명하니까 멈칫하면서 굳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분의 고향은 댐을 만들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됐다고 합니다. 고향을 잃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느껴지니 숙연해지더라고요. 흔적도 없이 고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하는 일들이 의미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으로 이곳이 철거되기 전까지는 기운 내면서 동네 곳곳을 기록해야겠죠."

이인규 편집장이 자랑하는 둔촌주공아파트의 봄
이인규 편집장이 자랑하는 둔촌주공아파트의 봄ⓒ이인규 편집장 제공
아파트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자랑, 메타쉐콰이아
아파트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자랑, 메타쉐콰이아ⓒ이인규 편집장 제공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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