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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님, 빌딩에서 떨어져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10월 31일 <동아일보>의 온라인 잡지 <매거진 D>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아버지 뛰어넘으려는 조급증, 화 부를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난해 중반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34층 집무실에서 삼성전자 A 임원으로부터 ‘사업 현안’을 보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A 임원은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모범 답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집요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던 A 임원을 안경 너머로 쳐다보던 이 부회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뛰어 내리세요.”

여의도에서 나도는 재벌 총수 출신 정몽준 전 국회의원에 관한 소문, 즉 업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승했던 비서관을 “너, 내려!” 한 마디로 고속도로에 버리고 왔다는 그 소문이 연상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건 정도가 더 심하다. 고속도로에 버려져도 히치하이킹을 하면 생환이 가능하지만, 34층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부회장실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려 살아남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참고로 <매거진 D>의 저 기사는 포털과 동아닷컴에서 이미 삭제된 상태다)

‘도대체 한국의 재벌들은 왜 저럴까?’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이 장면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부하 임원에게 “뛰어내리세요(라고 쓰고 “나가 죽어버려”라고 읽어야 마땅하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냉혈한 재벌 치고 6일 청문회 장에서 보여준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은 너무나 어리바리했고 순진해 보였기 때문이다.

집권 2년 반, 이재용의 성적표는 어땠나?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렇다면 임원의 성과를 물어 “빌딩 밖으로 뛰어내리라”고 호통을 쳤던 이재용 부회장의 성적표는 과연 어땠을까?

아무리 자료를 뒤져봐도 그 2년 반 동안 삼성그룹에게 나타난 긍정적 변화는 없다. 굳이 꼽자면 이 부회장이 주도해 바이오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정도인데, 그마저 성과가 나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성패 여부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잘못한 일을 꼽자면 역대급이다. 고작 2년 반 지났을 뿐인데, 이재용 부회장은 벌써 커다란 사고를 네 번이나 쳤다. 가장 먼저 메르스 사태. 삼성서울병원의 방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메르스의 진원지 노릇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때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라는 것을 했다.

둘째, 갤럭시 노트 7 사태. 스마트폰이 폭발물로 둔갑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삼성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앞에서 인용한 <매거진 D>의 보도도 이재용 부회장의 조급증 탓에 갤럭시 노트 7 사태가 벌어졌다는 분석이었다.

셋째, 이번 청문회에서 집중 포화 대상이 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패션회사 및 놀이동산이 건설회사 및 무역회사와 합병을 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 황당한 코미디는 모두 이재용 시대를 열기 위한 삼성의 꼼수였다. 그리고 그 꼼수 뒤에 누가 숨었는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고 이 부회장은 결국 청문회 장에 불려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넷째, 정유라 지원 문제. 한국에 재벌이 삼성 하나가 아닌데 왜 그 삼성만이 독일에 직접 돈을 보내 이 사태를 벌였는지 대부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이 궁금증에 대한 청문회 장에서의 이재용 부회장의 대답은 “나도 모른다”였다.

70년 가까운 삼성그룹의 역사에서 이병철, 이건희 등 앞선 회장들이 사고를 친 일도 적지 않았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게는 그 유명한 사카린 밀수 사건도 있었고, 용인 자연농원 땅 투기 사건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2대 회장 이건희도 자동차 사업을 추진하다 국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고, 비자금 사건과 X파일 사건이라는 굵직한 흑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집권 2년 반 만에 역사에 기록될 사건을 네 건이나 저지른 오너는 이재용 부회장이 유일하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이 부회장은 청문회 장에서 “저보다 훌륭한 분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혹시 “내가 해도 이재용보다는 잘 하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페이스북 글을 먼저 옮기자면 이렇다.

“이재용 씨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 경영권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이 말 때문에 ‘그럼 내가?’라고 하시는 분 계실 텐데… 이 씨가 말하는 ‘능력’에는 ‘부모 잘 만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부모) 돈도 능력’입니다.”

최선을 다 했으나 성과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물 밖 투신을 권하는 비인간적 노동환경 조성에 우리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소신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것이라면, 지금 삼성이 겪고 있는 수많은 추문의 책임자인 이 부회장은 그 말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한다. 도대체 실질적 총수에 오른 지 2년 반 만에 이렇게 다양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재벌이 누가 있었단 말인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에서 반올림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에서 반올림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해 이재용은 안타까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날 그는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짜증스러워 했다.

이 문장은 삼성의 내부 고발자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런 이재용과 청문회 장에서 보여준 이재용의 모습을 한 번 비교해보라. 이 부회장이 청문회 장에서 보여준 겸손한 척, 어리바리 한 척 한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편의 잘 짜인 쇼였다.

지금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는 반올림 활동가들이 수백일 째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그들은 6일 청문회 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는데 그 중 한 명인 이종란 노무사가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독성 화학물질로 76명이 사망한 책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년째 싸우고 있다. 이재용 집무실이 있는 삼성 앞 노숙농성도 427일째인데 이재용 부회장 얼굴을 오늘 처음 봤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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