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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화 칼럼]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 안심할 때가 아니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탄핵안 가결 소식에 일제히 환호했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탄핵안 가결 소식에 일제히 환호했다.ⓒ민중의소리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 10분.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주권자인 국민이 ‘제1차 승리’를 한 날이다. 수백만개의 촛불이 국회로 하여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의를 하도록 했고, ‘질서 있는 퇴진’, ‘2선 후퇴’ 운운하던 국회의원들은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따랐다. 2016년 11월 시민혁명은 ‘탄핵열차’를 출발시켰다.

광장의 촛불이 국회를 움직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2만명의 국민이 모여든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 때만 해도 야당은 ‘박근혜 퇴진’이나 ‘탄핵 발의’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못했다. 광장에 모인 국민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음에도 야당은 ‘탄핵을 주장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광장의 촛불이 20만(11월 5일 제2차 촛불집회), 100만(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 100만(11월 19일 제4차 촛불집회), 190만(11월 26일 제5차 촛불집회), 232만(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으로 점점 거세게 타오르면서 정치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야당은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여당의 일부 의원들도 가세했다. 2016년 12월 9일 마침내 국회가 탄핵소추를 결의했다. 광장민주주의가 국회를 견인해 낸 쾌거이다.

촛불은 그 동안 ‘작은 전투’에서 승리해왔다. 수사의지가 없던 검찰을 움직였다. 촛불의 숫자가 거듭될수록 검찰의 수사대상은 넓어졌고, 수사강도도 높아졌다. 검찰은 시민단체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고발사건을 고작 4명의 검사로 구성된 형사부에 사건을 배당한 후 20일 동안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거세게 타오르자 검찰은 뒤늦게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켰다. ‘불소추특권을 가진 대통령에 대해서는 수사할 수 없다’며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이던 검찰은 ‘조직보전’을 위해 대통령에게 대면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소환에 불응하던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지목했다. 검찰의 수사는 촛불민심이 일구어낸 것이고, 수사 성과가 없었다면 국회의 탄핵결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의 한계는 분명했다.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3대 핵심의혹은 박근혜 - 최순실 일당의 삼성, SK, 롯데 등 재벌로부터의 뇌물수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직무유기’이다. 검찰은 이 3대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검찰의 이러한 한계는 예견됐던 것이다. 촛불은 정치권에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도입하라고 명령했다. 국회는 특별법을 만들어 ‘박영수 특검’을 출범시켰다. 검찰이 수사를 하지 못한 3대 의혹에 대한 규명은 특검의 몫이다. 박영수 특검은 종전의 11차례의 특검과는 다르다. 이번 특검은 촛불민심이 만든 특검이다. 국정농단세력과 그 부역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심판대에 올려달라는 것이다. 특검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 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삼성 등 재벌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낸 돈의 성격이 뇌물임을 규명해야 한다. 최순실 등 일당이 국정을 전횡할 수 있도록 조장하고 방치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직무유기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도 특검의 몫이다. 특검과 특검보는 대부분 검찰 출신이다. 이들은 촛불이 사그라들면 제대로 수사할 지 의문이다. ‘11월 촛불’을 시민혁명으로 승화시키려면 책임자 처벌이 필수적이다. 촛불은 박영수 특검에 역사적 사명을 부여했다. 박영수 특검이 그 사명을 다하는지 끝까지 감시하고 격려해야 한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 사건 주심 이정미 재판관 등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청구와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관련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선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 사건 주심 이정미 재판관 등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청구와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관련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선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권력과 ‘내통’한 전력 있는 헌법재판소, 독립적 재판할 수 있을까?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에 따라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에게 맡겨졌다. 헌법재판소가 과연 이 탄핵심판 사건을 독립적으로 판단할까? 수백만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고 국민의 91%가 탄핵 또는 하야에 찬성을 했다. 국민은 벌써 박근혜에 대해 ‘대통령이 아님’을 선언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도 78%에 해당하는 234명이 탄핵 가결에 가담해 ‘정치적 탄핵’을 했다. 기관 구성의 측면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헌법재판소가 국민과 국민의 대표기관의 의사와 다른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미덥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재판관 구성이 이명박 -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 일변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임명한 박한철 소장, 서기석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과 여당 추천한 안창호 재판관은 극우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그중 박한철 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공안검사 출신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정미 재판관, 여야 합의로 지명한 강일원 재판관도 비교적 보수적성향을 보여온 사람이다. 야당이 지명한 김이수 재판관만이 유일하게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말까지이고,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는 내년 3월 14일까지이다. 탄핵심판 사건의 재판이 3월 중순 이후로 길어지면 7명의 재판관 중 2명이 탄핵반대 의견을 내면 탄핵결정을 불가능해진다. 과연 재판관들이 임명 내지 지명권자의 의사에 독립하여 재판을 할 것인지를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청와대와 ‘내통’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비망록 중 몇가지만 살펴보자.

‣ 재판진행 내용 미리 알고 있었다

없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2014년 6월 25일자 업무일지에는 ‘RO 사건 공판기록 등사 후 송부’라고 기재되어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신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에서 ‘서울고등법원이 7월 8일 이후에 헌법재판소로 기록을 넘긴다’고 말했다. 이 무렵 내란음모사건을 심리하던 서울고등법원은 재판기록을 언제 헌법재판소로 넘길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바가 없다. 법원과 ‘내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말한대로 7월 20일 재판기록을 헌법재판소에 송부했다.

이날 메모에는 또한 ‘8월 중순경 서증조사 완료 등 절차 사실상 마무리 예정’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8월 중순경 서증조사 완료 등 절차 사실상 마무리 예정’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와 긴밀히 협의를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 주장과 입증 전략도 상의했다

없음

이 비망록의 2014년 8월 25일자 메모에는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방안 마련 시행, 재판진행상황 법무부 TF와 접촉” 기재되어 있다. 청구인인 법무부가 정당해산청구를 하면서 ‘이른바 이석기 전 의원이 지하혁명조직 RO의 수괴이고 이 RO가 통합진보당을 장악하여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내란음모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 도중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내란음모사건은 2014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내란음모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지하혁명조직 RO는 존재하지 않고 내란음모는 없었다’며 내란음모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정부측의 정당해산청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법무부는 갑자기 ‘RO가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는 종전 주장을 ‘민혁당 잔존세력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는 내용으로 변경했다. 법무부측은 변경한 주장을 입증할 이렇다 할 증거가 없자 민혁당 활동을 하다가 느닷없이 전향한 ‘강철’ 김영환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사전에 이와 같이 청와대와 협의를 하였기 때문에 주장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증인신청을 하였는데도 그대로 증인을 채택했던 것이다.

‣ 소송대리인도 모르는 선고기일 알고 있었다

없음

이 비망록의 2014년 10월 4일자 메모에는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 연내 선고”라고 기재되어 있다. 청와대 김기춘 실장이 2014년 10월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이 연내에 선고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무렵에는 정부와 통합진보당측에서 제출한 서증에 대한 증거조사를 아직 마치지 않았고, 핵심 증인 4명에 대한 증인신문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소송대리인조차도 선고가 언제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이 선고기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2014년 10월 4일 이전에 박한철 소장을 만나 선고기일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는 선고가 연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기춘 비서질장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은 현실화됐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25일 변론을 종결했다. 2014년 12월 17일 이틀 후에 선고하겠다고 소송대리인에게 통지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이 되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선고내용 미리 알았다

없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2014년 12월 17일(수)자 비망록에는 ‘月(월),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 - 소장 의견 조율 금일 중,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으로 기재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4월 12월 17일 청구인과 피청구인 소송대리인에게 이틀 후인 2014년 12월 19일에 선고를 할 것이라고 통지했다. 이틀인 2014년 12월 15일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과 관련한 재판관들의 평의내용을 미리 알고 이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말한 것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이 무렵 정당해산과 비례의원의 자격 상실에 대해서는 이미 결론을 내렸고, 지역구 의원에 대한 자격 상실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선고 당일에 최종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헌법재판관 중 누군가와 내통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 번 째는 박 대통령의 만만치 않는 공작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가 되기 한 시간 전에 조대환 변호사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직무정지가 되는 박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은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탄핵사유이자 특검에서 수사대상인 .‘세월호 7시간’ 문제에 대해 사선 변호사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의하면 청와대가 ‘정치지망생’인 그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새누리당 몫 위원(부위원장)으로 임명하여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도록 했다. 그는 청와대의 희망대로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특조위를 ‘세금 도둑’ 운운하면서 사사건건 방해했던 인물이다. 그는 세월호 진상조사를 방해하면서 ‘세월호 7시간’ 문제에 대해 반대이론을 마련하여 ‘궤변’을 펼칠 공산이 매우 높다. 다음으로 그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연수원 동기(13기)이다. 박 대통령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장과 국무총리를 물밑 접촉하여 탄핵심판사건을 유리하게 이끌도록 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키려고 할 것이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박근혜 정권 끝장내는 날' 7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더불어 '구속'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박근혜 정권 끝장내는 날' 7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더불어 '구속'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촛불만이 헌법재판소를 견인할 수 있다

탄핵사유는 총 13가지이다. 크게는 헌법위배행위와 법률위배행위이다. 헌법위배행위는 ① 대통령이 최순실 등의 사익을 위하여 대통령 권력을 주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사한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위배, ② 청와대 간부 및 장․차관 등을 최순실 등이 추천하거나 최순실 등을 비호하는 사람으로 임명하여 이들이 최순실 등의 사익추구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직업공무원 제도 및 공무원 임명권 조항 위배, ③ 세월호 참사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배 등이다. 법률위배행위는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및 모금 관련한 뇌물수수, 직권남용, 강요죄 등이다. 이중 세월호 7시간과 뇌물수수를 제외한 탄핵사유는 모두 검찰이 수사하여 관련자들을 공소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입증은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탄핵심판은 개별 범죄의 성립문제를 다루는 형사재판과는 다르다. 세월호 7시간 문제는 대통령의 행적을 일일이 증명할 필요는 없다. 사고발생 당일 대통령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 이 점은 이미 언론의 취재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통해 더 이상 사실관계를 밝힐 필요는 없다. 뇌물수수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검찰이 최순실을 기소하면서 이 부분을 기소는 하지 못했지만 상당부분 수사를 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수사한 사실관계를 통해 그것이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심판은 비록 탄핵사유는 많지만 이미 검찰수사와 언론의 취재를 통해 대부분 밝혀져 헌법재판소가 빨리 탄핵결정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헌법재판관들의 성향과 의지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들은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인식보다 보수적이고, 이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해산 심판사건에서 이미 청와대와 ‘내통’한 전력이 있는 자들이다. 성난 촛불이 사그라들면 언제든지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촛불은 국회로 하여금 탄핵소추를 의결하도록 만들었지만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할 때까지 활활 타올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이 ‘제1차 승리’라고 한다면, 특검의 ‘대통령에 대한 3대 의혹’을 밝히는 것이 ‘제2차 승리’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은 ‘제3차 승리’이다. 탄핵결정 후 검찰의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소가 ‘제4차 승리’이고,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적 정권교체가 ‘제5차 승리’이다. 민주적 정권교체 후 이명박 -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해소하고,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 선거연령을 18세로 내리는 법안 마련, 국민의 의사에 합치하는 선거제도 개편, 재벌개혁, 성과연봉제 노동악법 폐지, 복지확대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 2016년 11월 혁명은 완성될 것이다. 그때까지 분노의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이재화 변호사(민변 박근혜 정권퇴진 및 헌정질서회복 특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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