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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공장에서 몸으로 쓴 노동의 시편
없음

몸이 아담한 아내가
매달려 가듯 운전대를 잡은
4.5톤 트럭이 차선을 바꾸자
운전석 뒤편에 매달린
링거 팩이 흔들거린다

밤낮 없는 35년의 세월
트럭을 몰다 덜컥 신장병에 걸린 남편
시속 100킬로미터 트럭 안에서
복막석투석을 하고 있듯
가을 찬비 부슬부슬
하염없이 차창을 타고 내리는
심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후략)
- 정세훈 시인의 ‘4.5톤 트럭의 잠’ 중 일부

가슴 한편이 ‘찡’해진다. 그저 읽었을 뿐인데 아프다. 평소 시에 관심은 없었지만 그냥 눈길이 끌린다. 마치 내 이야기인양 안타깝기까지 하다. 아름답고 따뜻한 글로 감동을 주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며 가슴을 찌른다. 그리고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노동시집을 읽으며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노동시집에 더욱 몰입하고 시인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노동시집을 쓴 저자가 오랜 시간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떨까. 

노동시집 ‘몸의 중심’의 저자인 정세훈(63) 시인이 바로 그런 이력의 소유자다. 열일곱 살의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 노동자로 살았고. 서른세 살의 나이에 시인이 돼서도 생계를 위해 노동자로 삶을 이어갔다.  

정세훈 시인을 만난 건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였다. 첫 만남에도 그는 반갑게 인사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줬다. 보기 좋게 접힌 주름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문득 노동자에서 시인이 된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정세훈 시인, 살아온 역사를 풀어내는 건 역시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의 표정에서 지난 과거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세훈 시인, 살아온 역사를 풀어내는 건 역시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의 표정에서 지난 과거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민중의소리

인생을 바꾼 '진달래꽃'

"어린 시절이요? 집안형편이 좋지 못했죠.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죠. 항상 가슴 한편에는 시인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정세훈 시인의 어린 시절은 그 시절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전 6·25전쟁 통에 아들 둘을 잃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속병을 얻어 앓아누웠다.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며 돈을 벌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약값과 두 아들의 생계까지 꾸려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문학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나? 그때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던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그 집 마당에 책 한권이 버려져 있었죠. 그 책이 바로 ‘문학사상’이라는 문학잡지였어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과 그 평이 실려 있었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열두 살이던 그의 마음에 깊숙이 와 닿았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일까. 어린 나이에 어려운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진달래꽃'은 가슴깊이 와 닿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준비했었죠. 생계가 우선이었죠. 그래서 원서까지 다 사둔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때 일이 터진 거예요."

그가 졸업을 앞 둔 시기에 문제가 생겼다. 어려운 살림 탓에 다친 발가락을 방치했던 아버지의 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발가락에 생겼던 염증이 골수염으로 악화돼, 병원에서는 발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17살의 나이에 취직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죠"

정세훈 시인, 친일의 적폐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가 뜨겁다. 썩은 환부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지금 무엇을 들어낸들 제자리도 돌아갈 수 있을까.
정세훈 시인, 친일의 적폐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가 뜨겁다. 썩은 환부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지금 무엇을 들어낸들 제자리도 돌아갈 수 있을까.ⓒ민중의소리

"내 삶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다시 시를 쓰고 싶어졌어요"

그가 서울에 상경해 처음 취직한 곳은 전자석선을 만드는 영세한 공장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중랑천에 위치한 이 공장은 그 시절 영세공장들이 그렇듯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동선을 이용해 전자석선을 만드는 곳이기에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밀폐된 공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죠. 겨우 전자석선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어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1년 내내 40도 이상의 온도에서 작업을 해야 했죠. 실내는 물을 뿌려도 금방 입술이 바싹 마를 만큼 건조했어요."

힘든 환경에도 그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은 결국 그의 몸을 망가트렸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온몸이 문둥병처럼 짓무르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아는 병원은 없었죠. 의사들은 피부병이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어요.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생황은 더욱 궁핍해졌고요.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공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문학에 대한 끈을 놓지 못했다. 2교대로 진행되는 고된 생활에도 틈만 나면 청계천 헌책방들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이유모를 병을 앓는 상황에서도 그는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병이 더 악화되는 건 막을 수 있었죠. 서른 세 살 때쯤인가. '이렇게 내 삶이 끝나는가'라는 고민을 하다가 다시 시를 공부하자는 마음을 먹었죠. 어차피 내 인생이 다 망가졌는데 다시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시에 대한 강한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는 틈나는 대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종이를 가지고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한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버려진 포장에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뒤 그렇게 적은 글들을 다시 옮겨 적었다.

"제가 노동자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시로 옮겼어요. 그렇게 1년 쯤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됐죠. 용기를 내 몇몇 잡지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한 잡지사에서 공장으로 연락을 해왔어요. 정식 문학잡지는 아니었는데 제 시를 싣고 싶다는 거였죠. '그동안 내가 쓴 시가 전혀 생뚱맞은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용기가 생겼죠."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 전도사의 소개로 인천 지역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인상 깊게 본 기자의 도움으로 서른다섯의 나이에 첫 시집을 냈다. 더욱 용기가 생긴 그는 그동안 쓴 시들을 전부 모아 '노동해방문학', '풀빛', '창작과 비평사(창비)' 등의 출판사에 보냈다.

"다행히 출판사들에서 제 시를 좋게 봐 줬죠. 그래서 창비에서 시집을 내게 됐어요. 시집을 내기 전 창비 여름호에서 제 시 다섯 편을 발표해주기도 했죠. 그렇게 등단을 하고나서야 '이제 내가 시를 써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등단을 하고 난 뒤에도 그의 시인으로서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서른 네 살의 나이에 등단한 그였지만 마냥 시만 쓰고 있을 살 수는 없었다. 정말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면 시를 써서 먹고 살기란 요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망가트린 공장에서 서른아홉 살이 되던 해까지 일을 해야 했다.

정세훈 신작 몸의 중심
정세훈 신작 몸의 중심ⓒ민중의소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습니다”

2006년 쉰두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병원에서도 수술을 성공하기 힘들다고 할 만큼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유고시집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죠. 수술을 앞두고 삭발까지 했는데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쓴 시들이거든요. 물론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정 시인은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에 김포로 내려가야 했다. 시인으로서 민예총 활동을 해오던 그는 모든 대외활동을 중단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건강을 위해 휴식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런 그가 2011년부터 다시 노동시인으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쉬었다는 생각 때문에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투쟁현장을 찾았죠. 대우자동차, 콜트콜텍, 재능교육, 유성기업, sk브로드밴드, 쌍용자동차 등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이라면 거의 다 갔죠. 제 시로 그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자신이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직업병까지 얻었기 때문일까.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볼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쟁 현장을 찾을 수밖에 이유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낸 시집 ‘몸의 중심’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에 비롯됐죠. 제게 ‘몸의 중심’은 바로 ‘가장 아픈 곳’이거든요. 우리사회에서 가장 아픈 부분도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생각하죠. 우리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인 거예요."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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