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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심리학은 과학으로 포장된 자본주의 인간학

밀그램의 복종실험(Milgram experiment)이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1961년, 예일대 사회심리학자였던 스탠리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라는 명목으로 실험 참가를 모집했다. 참가자에겐 교수 역할을 시켰고, 학생 그룹은 미리 섭외한 배우(가짜)로 구성했다. 학생은 의자에 묶여 암기문제의 답을 대야 했고 틀릴 경우 교수는 전기충격을 주도록 했다. 15v에서 시작해 450v까지 충격을 강도를 높여야 했다.

전기충격장치는 다행히 가짜였지만 450v라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치다. 교수 역할을 맡은 참가자가 더 높은 전류스위치 앞에서 갈등할 때마다 뒤에 앉은 흰 가운의 책임자가 재촉했다. “더 높여도 괜찮습니다. 절대 죽지 않아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집니다.” 흰 가운은 바로 학문 또는 조직적 권위를 의미했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밀그램은 실험 전, 단지 0.1%만의 참가자만이 450v까지 올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려 65%의 참가자가 450v 스위치를 눌렀다. 밀그램은 왜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권력에 복종하는지, 나치에 부역했던 인간의 심리적 근원이 궁금했다고 했다. 소위 ‘악의 평범성’에 대한 발견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설득력 있는 상황 앞에선 반윤리적 지시에 복종한다는 주장이다. “내 안에 나치 있다.”는 뜻이다.

밀그램의 복종실험
밀그램의 복종실험ⓒ영화 밀그램프로젝트 스틸컷

10년 후, 이보다 더 잔학한 하드코어 스릴러가 연출된다.
이른바 ‘스탠퍼드 감옥실험’.
스탠퍼드대 심리학부 지하실에서 참가자를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눠 진행한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되었다. 끔찍한 체벌유형이 연일 업그레이드되었다. 참가자는 진짜 교도관으로 빙의하여 가혹한 고문을 가했고 수감자는 고통에 겨워 반란을 하고 탈옥을 준비했다. 이 실험은 이후 영국 BBC 방송으로 다소 완화된 내용으로 방영되었다.

이런 사회심리주의 계열의 ‘인간실험’은 지금도 유행을 탄다. 한국의 SBS도 창사특집 <출세만세 –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를 방영했다. 7명의 남자에게 깔깔이만 입힌 채 폐가에 집어넣어 완장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리더십을 관찰한다는 기획이었다. (‘깔깔이’는 황토색 군용방한내피용 슬림패딩이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새로운 실험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밀그램의 실험결과가 불편했던 것일까? 밀그램의 복종실험을 소개하며 EBS [지식채널]은 65%인류의 ‘잠재적 복종성향’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나머지 35%에 주목하라고 한다. 권위자의 명령을 거부한 35%의 숭고한 영혼들 말이다.

홀로코스트나 난징학살, 731부대의 생체실험 같은 것들이 어쩌면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일까? 그렇다면 전쟁도 살인적인 착취와 독점적 소유 역시 오래된 인간 DNA의 발현일 뿐이다. 결국 인간 이성은 별로 신뢰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꽤 팔려나갔던 심리학 서적 『이기적 유전자』가 하나의 예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자못 숭고해 보이는 ‘사랑’과 ‘희생’의 행동조차 이기적 유전자의 전파를 위한 것일 뿐, 인간은 결국 DNA가 프로그래밍한 매개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구 심리학은 “동물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사회이므로 인류사의 새로운 희망 따위를 말하는 건 희망고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김태형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현대심리학이 자본과 제국주의의 부역자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내가 알기에 그는 주류심리학에 도전하는 소장파 심리학자다.

“왜 행동주의가 한국 심리학의 대세가 되었나? 현대자본주의에서 심리학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봐야 해요. 역사에 대해 모르면 신비주의로 포장된 현대심리학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좀 빨라졌지만 예전엔 미국에서 유행한 학문이 20년 후 한국 심리학의 주류가 되곤 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 받은 분들이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면 자신이 배운 것 그대로 학생들을 가르쳤죠. 구성주의, 행동주의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미국에선 퇴조하고 비판을 받은 이론을 한국에서 가르칩니다.”

“인류역사나 사회현상의 원인은 결코 개인심리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실험실에서도 재현할 수 없죠. 철학의 곁방살이를 하던 심리학이 과학성을 획득하기 위해 조작 가능한 실험을 강조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이 과도해져 철학이나 사학, 사회학 등과 협력해야 할 역할을 심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단독으로 규명하겠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미국은 건국 시기부터 철학적, 심리학적 토대가 없었어요. 유럽의 지성적 풍토에 열등감을 가지곤 했죠. 이때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이 바로 실증주의와 프로이트주의입니다. 실증주의는 인간심리 연구 중 의미 있는 것은 실험적 조작으로 입증 가능한 인간행동 밖에는 없다고 주장했고, 이 이론은 미국 자본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것이 이후에 사회심리주의, 행동주의로 발전합니다. 프로이트주의는 한때 유럽에서 유명해졌다가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몰락한 것을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수용해 치료분야에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현대심리학은 자본의 지원으로 태동했어요. 기업의 후원을 받는 대학의 심리학과에선 인간심리를 분석하는데 사회나 계급은 모두 제거해야 했지요. 현실로부터 격리당한 채 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 그런 시각에서 인간을 봅니다. 사회계급적 터전에서 숨 쉬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고립된 생물학적 유기체죠. 원숭이에게 가하는 ‘보상실험’ 같은 것을 끊임없이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적 범주들을 모두 사장시킨 채 인간을 실험실로 집어넣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본가나 제국주의 입장에선 이런 심리학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이들에 따르면 착취도 전쟁도 경쟁도 모두 인간본성의 발현이니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인간에 부합하는 항구적 체제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미국 실증주의 심리학의 원조인 왓슨은 ‘어떤 아기도 조건과 자극을 통해 대통령도 예술가로도 범죄자로도 만들 수 있다’고 단언했어요. 즉, 인간은 환경과 조건을 통해 100% 통제 가능한 조건반사체일 뿐이라는 것이죠. 자본가나 권력이 이런 이론에 환호한 것은 당연했어요. 노동자나 국민을 통제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어느 날 문득, 생각할 틈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밀그램의 실험처럼 이루어졌습니까?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으로 수행되었어요. 그들에게는 매일 생각할 시간이 있었어요. 그들은 격리된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속한 나치당과 지배적 사회이념을 봐야죠.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과 민족성에 대한 신화, 당시 맑시즘의 대항마로 등장한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봐요. 인종마다 지적 능력, 윤리성과 생물학적 수준이 다르며 생물의 진화과정과 마찬가지로 열등한 인종 역시 도태되거나 청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이비 이론이죠. 이걸 당대의 교수요 박사라는 작자들이 논문으로 주장했습니다. 침략전쟁의 첨병역할을 한 사상입니다. 인간이 특정 환경에 따른 조건 반사식 행동을 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사회적 인간의 동인은 개인적 체험보다는 오히려 사상과 계급관계, 사회적 관계 같은 것입니다.”

“인간심리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심리학을 선택하는 새내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류역사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방법론을 기대하고 진학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뉴런(neuron)이나 뇌 구조,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과 같은 생리학 개론서입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본성에 대한 냉소적 관점만 쌓이죠. 심리학과 4학년이 되면 인간의 생체적 특징 말고, 인간심리는 아예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심리학 본연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치유’와 ‘대안’은 기대하기조차 힘들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심리에 가장 잔인한 상처를 안긴 자본주의를 극복하자고 한 심리학자가 있을까요?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이 유일해요. 그래서 주류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했죠. 한국사회에서 분단체제를 다루지 않고 한국인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올바른 치유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심리학자는 이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쌍용차 사건으로 자결한 노동자를 아빠로 둔 가족과 아이들을, 공황장애를 앓는 감정노동자를 지금 한국의 심리학은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럴 능력조차 없고요.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치유능력을 완벽히 상실한 무능력자가 지금의 심리학입니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주간경향에 실린 기사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된 당사자 중 한 명은 이 일을 겪고 정신적인 충격과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그러나 담당 의사가 당신 같은 사람과 얽히기 싫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공포스러운 고립감이었다.”

물론 이를 특정인의 직업윤리나 사회적 분위기 탓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심리를 다루고 치유하는 심리학의 현주소일수도 있다.

<이산아카데미> 2호 강좌를 소개한다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한울

김태형 소장의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이다. 모두 20강이다. 심리학의 태동에서부터 들어봄직한 심리학자는 모두 등장한다. 강좌는 엄청난 속도감으로 진행된다. 김 소장 특유의 ‘자기검열 없는 거친 입담’도 재미있다. 편집영상에 가미된 각종 자료화면은 덤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교재(『심리학을 만든 사람들』한울. 2016)를 참고하면 더 좋다. 참고로 20강 강좌를 몰아치기로 촬영하던 촬영감독조차 단 한순간도 졸지 않았다. 심리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던 그조차 이렇게 품평했다. “심리학, 참 재밌다.”고.

김태형의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 동영상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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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재 이산아카데미 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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