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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표창원 의원 징계를 철회하라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2015년에 발행된 장강명의 장편소설 <댓글부대>. 작년 제주 4⋅3평화공원에 방문했다가 구입했다. 제3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이 댓글 여론조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야기에는 거액의 돈을 받고 의뢰자의 요구에 맞게 온라인 여론조작을 수행하는 팀의 구성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내부 고발 인터뷰 녹취록으로 첫 장이 시작된다. 치밀하고 풍부한 자료조사와 우리사회 구조를 꿰뚫고 있는 작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가독성과 흡입력이 굉장하다.

장편소설 ‘댓글부대’
장편소설 ‘댓글부대’ⓒ인터넷 갈무리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의 온라인 카페를 분열시키는 과정에 대한 묘사였다. 여론 공작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신문 광고를 게재하거나 집회에 단체로 참여하는 등의 공동 활동으로 정치적 발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온라인 카페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의뢰자의 요구였다.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소속감이 높고 단결이 잘 되는 온라인 카페일수록 가입 절차도 복잡하고 게시판 규칙도 엄격하다. 이 온라인 여론공작단은 초기에는 온라인 카페의 구성원으로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내 틈새를 공략해낸다. 분열을 조장할 수 있었던 열쇠는 바로 “PC하지 못함”. Political Correctness을 줄여서 쓰는 이 말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글이나 외모 비하 글 밑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놓고 입방아 잘들 찧으시네요. 저열합니다.’, ‘이 글 저만 불편한가요?’와 같은 식의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는 PC한 지적이다. 연예인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인이 아니다.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가십으로 소비되거나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이 PC함은 그저 옳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조리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내면화된 차별과 편견이 한 두 가지인가. 아 ‘내가 생각이 짧았다’, ‘그 부분은 미처 몰랐다.’ 인정하고, 함께 공부하고, 성찰하는 성숙한 토론을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욕심일까. ‘뭘 그렇게 까지 비판을 하냐. 불편하다.’, ‘공부 좀 하세요’, ‘너는 얼마나 똑똑하냐.’ 논점과 멀어진 서로를 비웃고 헐뜯는 댓글들로 이내 온라인 카페는 논쟁으로 불이 나고 불길이 줄어들어 잠잠해질 때가 되면 서로 상처만 입은 채 말하기 불편한 곳으로 전락한다. 의뢰인의 요구대로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시민들의 조직 하나가 그렇게 소멸한다. 장강명 소설 <댓글부대>의 한 부분이다.

너무나 인상깊게 읽었던 <댓글부대>를 떠올린 건 지난 31일. MBC 에서 “가짜를 팔아드립니다” 편이 방영되었다. 인터넷 강의 등 입시학원과 성형외과에서 진행하는 ‘입소문 마케팅’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다. 마케팅 실행 업체가 천 개에 달하는 온라인 계정을 보유하며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보여 졌다.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고등학생인척 타임라인을 꾸미고 고등학생들과 친구를 맺어 교류하다가 자연스럽게 스타 강사를 홍보하는 사례, 실제 성형외과 경험담처럼 꾸며진 가짜 블로그의 가짜 후기들. <댓글부대>의 등장인물들이 해 온 일들이다. 자본(권력)은 원하는 대로 여론을 형성해 간다. 방송을 본 후 네이버 계정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생전 보지도 않던 쪽지함을 우연히 열어보았다. 마케팅 회사에서 온 수십 통의 쪽지가 있었다. 모두 내가 운영장으로 있는 온라인 카페를 매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새누리당 의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새누리당 의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뉴시스

(드디어) 이제 본론이다. 설 연휴 전 페이스북에 접속하니 여러 정치적인 이미지가 합성된 그림이 타임라인에 도배되고 있었다. 고경일 만화가가 기획한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 <곧, bye! 展>에 출품된 “더러운 잠”이었다. 며칠 동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지켜봤다. “더러운 잠”에 대한 미학적 가치에 대해 논하는 글들이 흥미로웠다. 동시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열렬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었던가. 다양한 입장과 엇갈린 평가의 기사들이 쏟아졌고 댓글들이 무수하게 달렸다. <댓글부대>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어제 표창원 의원은 논란이 되는 작품이 포함된 전시에 공간을 협조했다는 이유로 소속된 당의 징계를 받았다. 분리되어야 할 두 가지 논점이 뒤엉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첫 번째 논점은 표현의 자유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법으로 그것을 보호하고 있다. 작품이 불쾌하다. 하지만 불쾌하기 때문에 찢어버려도 되는가? 이는 폭력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무수히 많이 반복된 비극이 아닌가.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학살자들의 사고방식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때문에 국민들은 조윤선의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분개한 것이다. 작품이 불쾌하다. 그때 우리는 불쾌함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협의 지점을 찾으면 된다. 징계는 표창원 의원이 아니라 전시 중인 작품을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은 새누리당 당원들이 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민주당의 대응은 매우 잘못되었다. 새누리당의 섬뜩한 사고방식에 동조한 것이다. 표창원 의원의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두 번째 논점은 논란이 된 작품에 작가의 여성 혐오 시선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과열된 논란에 대응하는 작가의 입장과 태도가 궁금했다.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우려하는 지점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참담하다. 의식적인 혐오보다 무의식적인 혐오가 더 위험하다. 여성 혐오가 내면화된 민주화 세대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 전시됐던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을 비판하며 표 의원의 부인을 벗기겠다는 성희롱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 전시됐던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을 비판하며 표 의원의 부인을 벗기겠다는 성희롱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더러운 잠”에 대해 ‘여성혐오’를 지적한 시발점이 새누리당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작품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으로 훼손시켜버렸다.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이 뒤엉켰다.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하는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혐오를 옹호하는 것으로 매도되었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를 비판하는 것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님에도 대립하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표창원을 타깃으로 움직였다. 지금도 징계를 넘어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은 <곧, bye! 展>의 주최도 아니고 기획자도 아니다. 전시와 작품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논쟁의 중심에 서야 할 사람은 표창원 의원이 아니라 전시 기획자 고경일 만화가와 이구영 작가 본인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우리사회가 ‘여성혐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혐오’ 문제의식에 공감하거나 전사회적으로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정치적으로 여론을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이 똑같은 혐오의 언어인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는 피켓을 버젓이 들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그 증거다. 혹시나 노파심에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분리해서 생각하자. 1.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 표창원 의원은 잘못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징계를 철회하라. 새누리당 당원들이 행한 폭력을 징계하라. 2. 새누리당도 알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민심을 간과한 전시관계자들은 반성하라. 시민들은 본래 파렴치한 수구보수세력보다 성찰하지 않는 진보, 발전하지 않는 진보에 더 분노한다. 자정 능력의 상실은 배신감과 패배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박민희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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