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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배우 없는 연극, 장영혜중공업

무대도 없고, 배우도 없다. 당연하다. 내가 방문한 곳은 전시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연극 세 편을 관람한 기분이었다. 현장에 10명의 관람객이 있었다면 전혀 다른 종류의 드라마 10개가 동시 상영되었을 것이다. 각각의 상상 속에서. 각 드라마에 몇 명의 배우가 출연했는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소환되어 겹쳐졌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체험에서 온 것인지, 간접체험에서 온 것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비슷한 기, 승, 전, 결의 드라마를 알고 있다.

지금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장영혜중공업이 소개하는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이 전시 중이다. 국내에서 7년만에 개최되는 단독 전시다. 아트선재센터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층마다 하나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두 개 채널이 동시 상영되는 미디어아트다. 공간 활용이 너무 탁월하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1층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2층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3층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와 건물 외관에 설치된 작품 두 점 그리고 아트선재센터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작품 하나를 더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발행한 후에는 한 점의 작품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종로구청에서 '글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거다.

장영혜중공업,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시 전경
장영혜중공업,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9일 아티스트 토크(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보려고 했던 전시였고, 기왕이면 작가도 만나보자 정도. 충분히 일찍 방문했는데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꽉 찼다.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찾아보지도 않고 왔군.' 스스로의 게으름을 질책했다. 난 장영혜중공업을 알지 못했다. 한 명인지, 다수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그저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각각 한 번씩 작품을 본 기억이 있을 뿐. 하지만 나의 게으름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 번도 사람들 앞에 공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객석 300개 소극장이 꽉 찬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을 소개한 진행자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장영혜중공업 아티스트 토크입니다!

현장에서는 사진 촬영도, 동영상 촬영도, 녹음도 허용되지 않았다. 장영혜중공업은 현장에 직접 방문한 관객 300여명과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 사회와의 접촉은 작품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영혜중공업이 결성된 1999년 이후 수많은 인터뷰와 만남, 강의 요청을 받았지만 언제나 그들의 대답은 "NO". 혹시라도 메일을 보내려고 다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답장은 기대하지 마시라. 장영혜중공업의 CEO 장영혜는 말했다. "그냥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공개된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 무엇이든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작가의 성별, 나이, 사상, 사생활 그 무엇도 알아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작품을 보면 된다. 작품엔 그 어떤 군더더기도 없다. 아티스트 토크의 제목은 "우리는 할 말이 없고 그것과 싱크가 맞아떨어진다"다. 그렇다. 이미 작품으로 할 말을 다 한 장영혜중공업은 할 말이 없고, 그것과 딱 맞아떨어진다.

http://artsonje.org

위 링크에 접속하면 작품 하나를 감상할 수 있다. 일단 보고 이야기하자. 최근 몇몇 채널에서 하나의 문장을 토막내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TV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편집자가 장영혜중공업 작품을 봤구나.' 빈 화면에 토막 난 문장들 그리고 비트가 강한 배경음악. 글자로만 구성된 화면 앞에 사람들은 멈춘다. 그리고 읽는다. 짧은 문장 몇 개를 읽었을 뿐인데 긴장감이 넘친다. 똑같은 문장이 인쇄된 종이 혹은 배너와 비교해보라. 그들은 문장들을,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아주 쉬운 영상편집 기술과 배경음악으로 관객의 감각을 깨운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독보적인 화법을 구축했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장영혜중공업을 떠올릴 것이니까.

동시대의 흔적은 아주 소소한 일상 곳곳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은 예술가의 미덕이다. 더불어 감각을 갖췄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한국사회는 대기업이 국민들의 삶에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국민들도 대기업을 좋아한다. 대기업과 같이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장영혜중공업'을 권한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다.

장영혜중공업,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
장영혜중공업,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촬영 박민희

박민희 |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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