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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석 칼럼] 예술계를 졸로 보지 않고서야

2월 23일 예고도 없이 문예위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및 임직원 일동으로 댓글도 쓸 수 없는 홈페이지 공지 란에 사과문을 게시하였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드디어 이제야 발표했네요.” 하면서도 왜 이 시점에 발표했는지 알아보는 중이란다. 성명서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왜 이 시점인지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불현듯 예고도 없이 기자회견 형식도 아니고 지난 1월 23일에 발표한 송수근 차관을 비롯한 문체부 임원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광화문 광장에서 100여일을 넘겨 노숙과 예술행동을 하는 <박근혜 퇴진과 새로운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에서는 23일에 있을 블랙리스트 사태 관련 국정원 규탄 기자회견을 특검연장 집중 등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연기한다고 하였다. 한참 특검연장과 헌재의 변론기일 확정과 선고를 예측하며 여러 가지 변수에 온 국민들이 촉수를 세우는 민감한 이 마당에 말이다. 언론은 너도나도 문예위의 블랙리스트 운용 첫 공식 사과라고 써대고 있지만, 그 첫 번이란 것이 아무래도 버스가 떠나도 한참 떠난 후에 손을 흔들어 대는 헛짓거리가 아닌가? 그것도 위원장 한 명이 아닌 알지도 못할 숫자의 임직원 일동이니 떼거지로 흔들어 대는 꼴이니 가히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뉴시스

예술계를 더 분노하게 만든 사과문

사과문의 내용을 보면 사과는커녕 예술인과 예술계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염장 지르기 문장투성이다. 지금 예술계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분노하는 것이 어찌 지원금 배제 자체에 있겠는가? 이 사건의 본질은 민주공화국의 예술가로 자유롭게 펼쳐야 할 예술 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국정농단 세력의 불량한 기준으로 국가업무를 방해하고 알량한 기금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한 반헌법적인 검열에 있다.

또한, 그동안 예술계가 노력하여 일구어 온 문예위의 민간이양과 정부 지원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려 한 창작의 자율성을 스스로 훼손한 수치스러운 작태를 문예위의 역사에 깊게 새겨버린 분노와 어이없음에 빠진 절망감이다. 그런데 그동안 힘과 용기가 없다는 변명으로 그것도 특검의 수사가 거의 종결되고 블랙리스트의 주범인 김기춘의 공소장을 접수한 지도 한참이 지난 오늘에서야 사과문을 던지듯이 게시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문예위의 수장인 박명진은 힘없고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알량한 힘과 용기를 가진 부역자였다. 어찌 되었던지 검열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국정감사에 거짓으로 증언하고 회의록의 자료를 훼손하여 제출하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 것이다. 만약 이것도 힘과 용기를 운운한다면 이것을 지시한 윗선을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동안 박명진은 위원장으로서 문예위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무슨 노력을 했단 말인가 정말 생뚱맞은 변명으로 일갈하고 있다. 정작 부당한 간섭이 들어 왔을 때 예술계와 시민 사회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니 자신의 행적을 문예위 임직원 일동으로 물타기하듯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또 다른 술책을 부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돼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돼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그리고 재발 방지란 것을 왜 문예위가 일방적으로 하는지도 질타해야 할 일이다. 정말로 대화와 토론, 의견 수렴을 망각한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 아닌가? 이는 본 사건을 예술계의 지원 배재 문제만으로 축소하여 또다시 예술가들을 능욕하는 것이다. 기금에 굶주린 예술가로 취급하는 사탕발림 식 행정을 대책이라 내놓고 노력을 했다고 하니 문예위는 정말 심사의원 선정방식 때문에 예술계가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는가? 참으로 한심한 뇌가 아닐 수 없고 애초에 문예위를 맡을 자질이 없는 함양미달의 인사임이 분명하다.

지금 박명진이 문화예술계와 국민에게 하여야 할 참회는 당장 사퇴하고 당신들이 고백한 바 외압에 대한 범인을 양심선언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를 밝히지 않고 약자 코스프레로 모면하려 내민 사과 없는 사과박스는 걷어야 한다. 항상 권력의 자리에서 문제와 비리가 터지면 사건만 있고 책임자 없는 우리의 공직사회를 당연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 김기춘은 아마도 블랙리스트 운용에 대해 반헌법적인 경각심 없이 이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알만한 법꾸라지 영감이 말이다. 뇌가 노쇠해졌거나 매사에 불법에 젖어 자신의 행위를 맹신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엄청난 일을 이리 허술하게 저질렀단 말인지 참으로 의문일 뿐이다.

이런 엉터리 같은 사회에 예술가들이 저항하라고 국가의 시스템은 예술위를 만들어 그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고 한 것이다. 박명진은 수치스럽게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며 조롱거리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음흉하고 가식적인 연극은 이미 끝났다. 떠나야 할 때 떠나기가 어려우면 떠나라고 할 때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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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석 화가, 한국민예총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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