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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한 여성이 거울 앞에 있다

한 사람이 거울 앞에 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은 퀭하다. 웃음기 하나 없이 거울을 쳐다본다. 눈은 충혈되어 빨갛고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 검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이렇게 완성된 자화상들은 보기 좋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거칠고, 투박한, 날 것 그 자체다.

한 여성이 거울 앞에 있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름답고, 단정하고, 화사한, 미소, 따뜻한, 상냥한 (익숙하게 요구받는)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울 앞에서 나체로,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는, 무표정한 여성.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은 퀭하다. 눈은 충혈 되어 빨갛고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 검다. 인사동 사거리, 갤러리 밈에서 진행 중인 이은경 개인전 <위로하는 자화상>의 풍경이다.

이은경 개인전  6층의 전시풍경. 왼쪽부터 “노마드1”, “노마드2”, “노마드3”
이은경 개인전 6층의 전시풍경. 왼쪽부터 “노마드1”, “노마드2”, “노마드3”ⓒ사진촬영 박민희

미술은 문자가 생겨나기 전, 문명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인간의 원초적 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자화상이 등장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화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기술자 아닌 창조자, 부속물 아닌 주체로서 인식된다. 타자의 필요에 의한 제작에서 벗어난 자발적 창작. 감정의 표현과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사회성을 갖게 된 것은 모두 근대의 산물이다.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근대 미술사에서 역시 여성주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남성주체로부터 그려지는 객체(대상)이었고 남성들에게 소비되어왔다.

전시를 보며 느낀 낯섦과 불편함이 무엇인지 이내 깨달았다. 여성주체가 그린 여성이 타인 혹은 남성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은 없다. 그림 속의 여성은 정면을 바라본다. 아니, 노려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물감을 찍어 바르는 속도, 거침없는 붓놀림, 과감한 색의 대비. 벽에 걸린 한 장의 그림이 온 힘을 다해 화를 내고 있는 듯하다.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인가, 그림이 홀로 마주하게 될 세상인가. 기억을 곱씹어 보자. 자화상이나 초상화 속에서 이런 여성을 본 적이 있는가? 자화상을 그렸던 몇몇의 여성작가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 어렵다.

“84일” 이은경, 2016.
“84일” 이은경, 2016.ⓒ사진촬영 박민희

굳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수백 점의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화상만으로 구성된 전시’와 ‘여성의 자화상만으로 구성된 전시’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다. 우리가 읽고 보아왔던 수많은 역사적 사료에서 여성의 서사, 솔직한 발화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관음의 대상인 여성이, 타인의 시선과 편견이라는 두려움을 견디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안다.

작가는 하루 평균 대여섯 장의 자화상을 쏟아냈다. 매일 같은 거울 앞에 앉아,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으리라. 2016년 거울시리즈는 총 103장. 모두 똑같은 구도지만 색과 붓 자국의 변화로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드러낸다. 아주 성실한 그림 일지다. 작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립된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마주하며 얻은 것은 어느 순간 찾아온 “괜찮다”는 위로. 나는 그이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가슴 속에는 어떤 비애가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와도, 지금의 시대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시 관람을 위해 찾은 주말의 종로는 1945년 해방기의 조선 같았다. 그 시대를 살아 본 적 없지만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발길 닿는 곳곳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엔 노란리본 물결이 눈부셨고,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조형물 구호들이 들썩였다. 보신각 앞에서는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고 외치는 페미니스트 광장이, 인사동 사거리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종로경찰서 옆 공터에 모인 노동자들은 재벌총수를 비판했다. 그들 옆에서 반대 의견의 캠페인을 하는 태극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문득 집회에서 마이크 잡은 사람들의 말투가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다 코끝이 찡해졌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광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그들이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그림들을 한자리로 모은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도 볼 수 있을 텐데.

전시 관람 전에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작품이 내는 소리를 먼저 듣고 싶어 굳이 인연을 만들지 않았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만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적 유희가 아닌 미적 체험을 하고 싶어서다. 시멘트벽의 황량한 전시장에 뚝 뚝 걸려있는 종이들. 종이 위를 지나간 붓 자국이,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얇은 겹의 물감이 만들어내는 기운들로 전시장은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작가를 만나러 가야겠다.

박민희 |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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