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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촛불의 광장에서 음악은 무엇이었나?

지난 10월 29일부터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가 벌써 6개월째에 이르고 있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선고일을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는 곧 승리의 축제로 일단락 짓게 되거나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을 이어나가게 될 전망이다. 지금으로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지난 6개월간의 촛불집회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촉발되었는데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만으로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연인원 1,50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해방 후 최대 규모의 시민항쟁으로 폭발한 이유는 더 이상 이러한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라, 아이를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 엄청난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나라,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나라, 단지 여성/장애인/성소수자/청소년/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숱한 차별을 감당해야 하는 나라,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이 없고, 한 번 밀려나면 모욕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나라에서 도저히 살 수 없고,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비롯한 중요 사건마다 국가는 한결같이 무능했고,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뻔뻔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지 못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능과 무책임을 반복함으로써 권위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럼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반성하지도 않았다. 오직 편가르기로 일관할 따름이었다. 그 결과 어설프게 존재했던 공동체는 완전히 무너졌고, 삶은 각자도생의 몫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사회’가 아니었고, 국민들은 국민으로 당연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철저히 버려졌다. 촛불집회는 숱한 절망과 분노의 행동에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향한 최후의 안간힘 같은 인간선언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비명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다고 해도 끝은 아니다. 탄핵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가수 이승환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노래하고 있다.
가수 이승환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노래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콘서트에서 전인권과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콘서트에서 전인권과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콘서트에서 전인권과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콘서트에서 전인권과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그런데 6개월에 이르는 촛불집회 정국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처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을 때 일군의 음악인들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하고 조롱하는 창작곡을 만들어 인터넷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민중가요와 힙합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창작곡들이 신속하게 발표되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발빠르게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광범위하고 컸다는 의미였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기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래에 담지 않았던 음악인들조차 금세 노래를 만들어냈고, 그 노래들로 인해 분노는 더욱 확산되고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8일에는 음악인 2,300여명이 참여한 [민주공화국 부활을 위한 음악인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2016년의 음악인 시국선언은 과거 2009년 음악인 시국선언의 700명 규모에 비하면 3배 이상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동안 시국선언은 대부분 지식인들이 주도했고, 예술인들 중에서는 문학과 영화 장르가 항상 선도했던 사례를 감안해보면 다소 이채로운 일이었다. 이처럼 많은 음악인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유는 그동안 꾸준히 이어진 집회와 시위 등에서 다양한 음악인들이 참여하면서 공감대를 넓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민중가요라는 조직적 문화예술운동으로 현실 참여 예술의 흐름을 주도한 바 있으며, 민주화 이후 합법화되고 예술행동의 비중이 커진 집회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음악은 짧은 시간 안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울림으로 형상화시키는 힘이 있는 장르였다. 또한 복잡한 장치가 없이도 재현 가능한 장르라는 장점이 있었다. 2008년 이후에는 뮤지션유니언, 자립음악생산조합 등 음악인들의 자발적인 조직이 결성되어 운동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음악인들 가운데 다수가 안정되지 못한 삶을 이어가면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자기 인식이 커졌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이후 보편화된 문화제 형식의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음악인들이 늘어났다. 기존의 운동사회와 시민사회 역시 사회적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음악까지 적극적으로 포괄함으로써 더 많은 음악인들이 사회 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연대, 민예총을 비롯한 문화예술운동진영의 노력과 설득이 큰 역할을 했다.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정태춘이 노래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정태춘이 노래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집회에 참가한 가수 양희은이 공연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집회에 참가한 가수 양희은이 공연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던 음악인까지 불러낸
박근혜 최순실 사태

지난 3월 4일 토요일까지 총 19차에 이른 범국민행동에서 음악인들은 그 어느 장르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과 예술인들의 농성이 이어진 광화문 광장 캠핑촌이 음악인들의 주요 무대였다. 대개 토요일 오후와 저녁에 열린 19차례의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는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시민사회운동단체 활동가들의 발언, 박근혜 최순실 사태 이후 시시각각 달라지는 투쟁 상황을 다룬 짧은 영상과 음악 공연 등으로 채워졌다.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프로그램 가운데 예술장르중에서는 음악의 역할이 단연 독보적이었다. 음악언어의 신속성과 대중성 덕분이자 그간 여러 문화제와 집회에서 음악인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해온 결과였다.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 주관했는데 이 중 무대 연출팀이 공연 파트를 담당했다. 그동안 민중가요 진영의 활동과 진보적 문화예술운동 및 문화제 등을 기획해온 전문가들로 꾸려진 연출팀은 매주 자체 논의를 통해 무대에 오를 음악인들을 선정하고 섭외하면서 집회를 함께 연출했다. 음악인을 선정하고 섭외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광장에 어울릴만한 메시지와 라이브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였다. 촛불시민들이 특정 세대와 젠더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시민들을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과 라이브 퍼포먼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대중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했지만 광장에서 다수의 촛불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역시 중요했다. 이제는 인디 신에서 실력을 쌓은 음악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좋은 음악과 뛰어난 라이브 능력을 갖고 있다면 굳이 제외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과거의 음악 어법만을 반복함으로써 편협하고 고루한 집회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새로운 음악 어법을 선보이는 음악인들을 과감하게 무대에 올릴 필요가 있었다. 다만 광장에 모인 촛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파격성이 지나치게 도드라진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이 부분은 연출팀 내에서 늘 고민이 되는 지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동안 광장과 거리를 지켜온 민중가요 음악인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과거에 비해 활동하는 민중가요 음악인들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현실은 연출팀을 고민스럽게 했다.

무대 연출팀 성원들의 경험과 활동 공간, 취향이 조금씩 달라서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연출팀은 균형감각을 가지고 뮤지션을 섭외하고 집회를 기획/연출하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려고 노력했다.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참여하겠다고 자청한 이들이었고, 다수는 연출팀의 논의를 거친 섭외에 응한 이들이었다. 당연히 퇴진행동의 집회기획팀을 비롯한 실무단위와의 논의를 거쳤는데 그동안 연출팀이 참여한 여러 문화행사와 계속된 범국민행동 집회를 통해 신뢰가 쌓여 의견이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집회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를 별도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점은 특기할만하다. 기존의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집회를 진행할 때 발언을 중심으로 구성하려고 하는 편인데, 연출팀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발언 사이의 양념처럼 추가되지 않고 집회에서 동등한 무게를 갖기를 바랐다. 그 결과 음악공연을 중심으로 한 콘서트 물러나Show가 4회에 걸쳐 본집회와 별도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는 문화제 형식의 집회가 꾸준히 이어진 결과로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수가 동의했다는 증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집회에 참가한 가수 안치환이 공연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집회에 참가한 가수 안치환이 공연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8차 시국촛불대회 정리집회에서 가수 손병휘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이날 손병휘는 ‘풍선’ ‘불나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아빠의 청춘’ ‘아침이슬’ ‘나란히 가지 않아도’ 등을 열창해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8차 시국촛불대회 정리집회에서 가수 손병휘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이날 손병휘는 ‘풍선’ ‘불나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아빠의 청춘’ ‘아침이슬’ ‘나란히 가지 않아도’ 등을 열창해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김주형 기자

이러한 논의 과정을 거쳐 다수의 음악인들이 광화문 무대에 올랐다. 꽃다지, 김원중, 류금신, 박창근, 손병휘, 안치환, 연영석, 우리나라, 인기가수, 임정득, 정태춘, 조성일, 지민주, 최도은 등 민중가수들이 노래했고, 구텐버즈, 갤럭시 익스프레스, 김반장과 윈디시티, 노브레인, 넘버원코리안, 넥스트, 단편선과 선원들, 두번째달, 뜨거운 감자, 브로콜리 너마저, 모노톤즈,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스카 웨이커스, 신나는섬, 실리카겔, 아시안체어샷, 에브리싱글데이, 전범선과 양반들, 크라잉넛, 타카피, 허클베리 핀, 해리 빅 버튼을 비롯한 밴드들이 화려한 밴드 음악의 향연을 펼쳤다. 가리온, 슬릭x던말릭, 조PD, 제리케이, 피타입 등의 랩퍼들도 무대에 올랐고, 강산에, 권진원, 김창기, 마야, 신대철, 양희은, 이상은, 이승환, 이은미, 이한철, 장필순, 전인권 밴드를 비롯한 유명 뮤지션들이 기꺼이 함께 했다. 국악인들 중에서는 김용우, 최용석, 한충은과 황호준 등이 함께 하면서 장르의 균형을 맞췄다. 말로, 전제덕, 코리안 리버레이션 재즈 앙상블과 서울재즈빅밴드는 재즈를 광장으로 옮겼다.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강허달림, 권나무, 김동산, 김목인, 더숲트리오, 백자, 사이, 솔가와 이란, 심재경, 자전거탄풍경, 정민아, 조동희, 하이미스터메모리, 최고은, 한동준 등도 무대에 올랐다. 광장에서는 합창단의 참여가 특히 도드라졌다. 4.16 합창단, 노동자 노래패 연합, 대학생 노래패 연합, 뮤지컬 화순팀, 서희중창단,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배우들, 이소선 합창단, 지보이스, 참여연대 노래패 참좋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무대를 든든하게 했다. 압도적인 팝페라를 선보였던 루이스 초이와, 레게의 진수를 보여준 코리아레게올스타즈, 풍자 트로트로 웃음을 선사한 권윤경의 무대는 개성 넘쳤다. 전인권과 신대철이 함께 꾸민 ‘아름다운 강산’ 무대는 대중음악사에 깃든 독재의 역사를 감동적으로 되새기게 했다. 이밖에도 마임이스트 조성진, 문동만 시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등도 무대에 올라 저항의 언어를 풍성하게 했다.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가운데 '7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열려 가수 이은미가 노래하고 있다.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가운데 '7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열려 가수 이은미가 노래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출연료도 없이, 강추위의 무대에 기꺼이 오른 음악인들

이들은 거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 기꺼이 무대에 올라 강추위 속에서 공연을 펼치며 촛불의 마음을 대변하고 촛불의 시간을 더 환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모든 공연이 다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음악인들의 노래와 공연은 시린 겨울 광장에 앉은 촛불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음악 자체로 감동하게 했으며, 우리에게 참 좋은 음악이 많다는 사실, 국민 다수가 한마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더 나은 내일을 낙관하게 했다. 이미 많은 집회와 문화제에서 다양한 음악인들이 참여했지만 이렇게 단기간 내에 이렇게 많은 음악인들이 이렇게 많은 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펼친 사례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광화문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음악인들이 많았고, 먼저 출연의사를 밝힌 음악인들도 많았다. 먼저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섭외 요청을 했을 때 다수의 음악인들이 선선히 응했다. 물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음악인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소한 수만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일은 음악인들에게 기쁘고 행복한 일인 동시에 떨리고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큰 음악페스티벌도 3만명 이상의 관객이 모이지 않는데 광장에는 늘 수만명이 모였고, 많게는 100만명 앞에서 공연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의 공연은 자신의 팬들 앞에서 펼치는 공연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름과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여느 공연처럼 음악만 선보이는 무대가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간절한 열망으로 모인 역사의 최전선이었고, 광장 밖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였다. 말과 음악 모두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숱한 공연 경험을 가진 음악인들도 공연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고 상기된 얼굴로 무대에 오르곤 했다. 연출팀에서는 대기실에 난로를 놓고, 간식과 식사를 제공했으며, 음악인들의 요청에 최대한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응했다. 공연 전에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보장해 자신들의 진면목을 다 보여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많은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여러 세대/젠더/취향을 비교적 고르게 만족시킬 수 있었고, 음악만으로 감동적인 순간들을 자주 만들어냈다. 촛불이 모이지 않았다면 어떤 음악도 감동적이지 못했겠지만 좋은 음악은 함께 있는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순간은 음악 자체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뿐 아니라, 음악과 음악인이 삶과 세상으로 나아가 뿌리내리고 확장되는 또 다른 순간이었다. 저항의 언어가 음악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다채롭게 갱신되는 순간이었고, 음악의 무궁무진한 역할이 사람들 속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은 광화문 광장 범국민행동 무대에서만 울려퍼지지는 않았다. 광화문광장의 예술인캠핑촌에서 매일 저녁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 속에도 음악이 있었다. 캠핑촌에서는 문학, 음악, 미술, 춤, 연극, 영화 등 거의 전 장르를 포괄한 예술인들의 공연과 강습, 체험 프로그램이 계속 되었다. 범국민행동 무대가 일시적이었다면 캠핑촌의 프로그램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 가운데 ‘하야하롹’을 비롯한 프로그램은 대중음악인들만을 특화해서 진행했고, 넉살, 노선택과 소울소스, 던밀스, 딥플로우, 로맨틱 펀치, 루드 페이퍼, 불한당크루(MC 메타, 마이노스, 키비, 피타입, 나찰, 넋업산 등), 스카웨이커스, 안녕바다, 전국비둘기연합, 크래쉬, 킹스턴 루디스카, 허클베리 피, 허클베리 핀 등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갖춘 음악인들이 다수 참여했다. 하야하롹은 광화문 캠핑촌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제주, 춘천 등 지역 도시들의 촛불집회에서 동시에 진행되어다. 하야하롹을 제외하고도 각 지역의 촛불집회가 열릴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중음악인, 대중음악인, 전통음악인들이 다수 참여했다. 어느 촛불집회에서도 음악은 빠지지 않았다.

DJ DOC가 10일 열린 ‘박근혜 퇴진’ 7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현시국을 비판한 힙합곡 ‘수취인 분명’ 무대를 펼치고 있다
DJ DOC가 10일 열린 ‘박근혜 퇴진’ 7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현시국을 비판한 힙합곡 ‘수취인 분명’ 무대를 펼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촛불집회 무대 바깥에서 펼쳐졌던 버스킹도 있다. 필자가 진행한 버스킹에는 곽푸른하늘, 김대중, 김동산, 김창기, 레인보우99, 사이, 소히, 솔가와 이란, 슬라이드 로사, 야마가타 트윅스터, 연영석, 정민아, 정밀아, 하이미스터메모리, 황푸하 등이 참여했다. 이소선합창단 등은 자체적으로 버스킹 공연을 펼쳤고, 몇몇 시민들은 나팔부대로 활동했다. DJ 디그루 등은 DJ 트럭을 끌고 촛불시위 대열 안에서 디제잉을 하기도 했고,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멤버들은 타악연주자들을 모아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했다. 라퍼커션과 페스테자를 비롯한 타악팀들도 자발적으로 타악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촛불집회에 리듬을 더했다.

음악이 늘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DJ DOC가 발표한 ‘수취인분명’은 표현의 자유와 여혐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첨예한 논란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계적인 옹호와 당연히 엄격해져야 할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인식이 부딪친 사건으로 문제적 현실이 오직 광화문광장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였다. 한편 터울림을 비롯한 풍물패들은 새해 대보름 이후부터 촛불집회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대동놀이로 신명나게 승화시켰다. 이밖에도 더 많은 음악과 음악인들이 광장의 안팎을 채웠을 것이다. 수많은 음악인들이 헌신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으며, 곳곳에서 음악이 울려퍼졌다.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8차 촛불집회에서 김반장과 윈디시티가 공연을 하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8차 촛불집회에서 김반장과 윈디시티가 공연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다시 만날 광장에서 음악은 무엇을 할까

촛불집회 초기에는 박근혜 최순실을 비판/풍자/조롱하는 곡들이 빠르게 발표되었지만 촛불집회가 계속 진행되면서 새로운 곡은 그다지 발표되지 않았다. 시민항쟁의 소용돌이가 용솟음치면서 그 열기 안에서 객관적인 분석과 거리두기를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이 인용된다면 각자의 경험과 생각과 느낌을 차분하게 음악으로 만들어 볼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음악인이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촛불을 든 음악인이건 상관없다. 자신이 촛불을 들었던 이유와 6개월간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 아니 그 이전부터 이 나라의 일부로 살면서 느꼈던 감동과 희망과 절망과 분노와 간절함에 대해 진실하게 기록하듯 음악으로 담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항적인 음악을 만들고, 진보적인 음악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우리의 삶과 일상을 온통 뒤바꿔버린 거대한 사건으로서 촛불집회는 한 사람의 예술가라면 충분히 기록하고 고백하고 분석함으로써 응답할만한 예술 소재이자 주제이다. 이미 광장의 무대에서도 많은 이야기와 음악이 울려퍼졌지만 개개인 각자 각자의 이야기와 표현방법은 모두 다르다. 더 많은 이야기, 더 다른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형상화되고 공유될 때 촛불집회는 더 다양하고 깊게 사유될 수 있고,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탄핵과 함께 끝날 일이 아니고, 예술을 통해 계속 기록되고 사유되고 표현되어야 할 현재이다. 오히려 너무 빨리 다른 사건으로 잊혀지고 지나가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촛불집회는 한 사람의 예술가, 한 사람의 시민이 국가라는 공동체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서로의 손을 맞잡아 희망의 공동체를 회복한 사건이고, 수많은 언어와 담론이 폭발한 사건이다. 예술은 단지 폭발의 현장에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촛불이 꺼지고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예술은 시작되어야 한다. 진솔한 고백과 질문과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연 촛불집회에서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특히 음악이 좀 더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는데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음악 언어와 집회 언어는 어떻게 만나고, 광장에서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음악은 모두의 열망과 차이를 어떻게 대변하고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된들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 때 음악은 다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천천히 고민해보면 어떨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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