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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우리 이야기하자. “2017년 봄,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라고.

1842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나폴레옹 3세는 항상 ‘혁명의 공포’에 벌벌 떨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구체제(앙시엥 레짐)를 무너뜨린 프랑스 시민들은 숱한 반동의 역풍에도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를 타도했다. 대통령에 오른 나폴레옹 3세조차 1848년 시민들이 일으킨 2월 혁명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 직업은 혁명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나폴레옹 3세는 어떤 반동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에 혁명을 이어가던 프랑스 시민들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파리 시내의 길을 크게 넓히는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촉구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촉구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시내에서 혁명이 벌어지면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기마대가 출동해야 한다.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파리 시민들은 좁은 골목길마다 가구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구축해 진압군 기마대의 기동력을 크게 저하시켰다. ‘바리케이드’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이를 막기 위해 길을 넓혔고, 대로 주변에 가로수를 심었다. 가로수는 혁명 지도자를 원거리에서 저격하기 위한 저격수 배치용이었다.

프랑스 시민들은 대통령 나폴레옹 3세를 이토록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들의 혁명은 끝이 없었다. 시민혁명의 정신은 1968년 68혁명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바리케이드로 시작된 청년들의 68혁명은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앞세워 자유로운 영혼들의 뜨거운 혁명 정신을 재현했다.

마틴 셀리크만의 ‘학습화된 무기력 실험’

무엇이 프랑스 시민들을 역사적으로 그토록 끈질긴 혁명가로 만들었을까? 숱한 혁명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 텐데, 그들은 서로를 “시또양!(시민동지!)”이라고 부르며 혁명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마 그 힘의 원동력은 ‘희망’이라는 유전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학습화된 무기력’이라는 유명한 실험을 통해 희망과 절망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셀리그만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눈 뒤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A방에는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이 있었고, B방에는 전기 충격을 멈추는 어떤 장치도 마련해 두지 않았다. C방에는 전기 충격 자체를 가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고통에 A방과 B방의 개들은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고통에 몸부림치던 A방의 개들은 우연이었건 무엇이건 고통을 멈추는 스위치를 발견했다. 실험이 반복될수록 A방의 개들은 쉽게 버튼을 찾았고, 고통을 멈췄다.

24시간이 지났다. 이번에는 A, B, C 세 방 모두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A방에 주어졌던 ‘고통 멈춤용 스위치’가 제거됐다. 대신 세 방 모두에 담벼락을 만들어 놓고, 그 담벼락을 넘으면 전기 충격이 멈춰지는 새로운 장치를 설치했다.

여기서 질문. A방의 개들은 과연 담벼락을 넘어서서 고통을 멈췄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당연히 A방의 개들은 처음에 버튼부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첫 번째 실험을 통해 ‘희망’이라는 유전자가 아로새겨졌기 때문이다. ‘이 고통을 멈출 방법이 반드시 어디엔가 있을거야’라는 희망 말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C방의 개들은 담벼락을 넘어서서 고통을 멈췄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다’이다.

이들에게는 전기충격이라는 고통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지만 A방의 강아지가 첫 번째 실험에서 버튼을 찾아냈던 것처럼 우연이건 뭐건 어쨌든 고통을 멈추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B방의 개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B방의 개들은 두 번째 실험에서 전기 충격이 가해지자마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 극심한 고통을 온 몸으로 다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절망이다. 그들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 ‘이 고통을 없앨 방법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아’라고 절망했을 뿐이다.

2017년 봄, 대한민국에 심어진 희망의 유전자

장장 19차에 걸친 길고 긴 촛불집회가 마침내 절대권력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혁명으로 승화됐다. 1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은 서로를 동지로 여기고 격려했다. 프랑스 시민들은 서로가 ‘시또양(시민동지)’임을 확인하기 위해 자유, 평등, 연대를 상징하는 삼색기 모자를 착용했다. 2016~2017년 대한민국 시민들은 서로가 시민동지임을 확인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무엇보다 위기에 강했다. 국회 탄핵(12월 9일)이 이뤄지기 직전이었던 지난해 12월 3일 전국에서는 무려 232만 명이라는 기록적 인파가 촛불을 들고 광장을 메웠다. 연말연시를 맞아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던 촛불은 이재용 불구속으로 다시 결집해 삼성 총수의 사상 첫 구속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를 ‘전직 대통령’으로 만들어 냈다.

이 끈질김의 동력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4개월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숱한 반동적 시도가 이어졌지만, 19차 집회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시민들은 한 순간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위대한 경험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얼마나 눈부시게 바꿀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촛불의 도전과 승리는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승리의 유전자를 시민들의 가슴에 아로새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에 극심한 반동적 국면이 다시 시민들을 짓눌렀을 때, 시민들은 “그래, 헬조선이 다 그렇지 뭐”라며 절망하고 포기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A방의 개들이 희망의 유전자를 아로새기는 데에는 많은 승리가 필요치 않았다. 단 한 번만 고통을 멈추는 스위치를 찾아낸다면, 희망은 저절로 구성원들의 심장에 새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망의 스위치를 2017년 3월 10일 마침내 스스로의 손으로 눌렀다. 앞으로 어떤 반동적 국면이 와도 시민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2월 혁명, 7월 혁명, 6월 혁명, 대혁명, 68혁명 등 이름 암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혁명을 반복하며 전진했던 프랑스 시민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촛불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일이 한국을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로 만드는 데 폭발적인 기폭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정말로 살만한 나라에서 살게 되어 2017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자.

“2017년 봄, 우리가 바로 그 광장에 있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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