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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의 범인은 CJ? 삼성과 CJ의 질긴 악연 이야기

한 동안 탄핵이 워낙 큰 이슈로 떠올라 검찰이 CJ그룹을 압수수색한 뉴스가 세간에 잘 안 알려진 모양이다. 3월 13일 검찰은 CJ 본사와 CJ대한통운, CJ제일제당, CJ헬로비전 등 주력 계열사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번 압수수색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압수수색을 담당한 곳도 검찰 특수본이 아니고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였다. 검찰이 내세운 압수수색의 명분은 지난해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을 CJ가 사주해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문제의 동영상 제작한 사람은 전직 제일제당 직원 선 모 씨(구속)였다. 이 동영상을 찍은 시점도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CJ 이재현 회장의 부친)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상속 분쟁이 극에 달했던 2012년과 일치한다. 검찰은 이맹희-이건희 상속 분쟁 때 CJ가 이맹희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성매매 동영상을 찍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듯하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와 3남 이건희. 검찰의 추정이 맞는다면 이 형제는 서로의 성매매 치부까지 들춰내며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인 셈이 된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일까?

형을 쫓아낸 동생의 뒤끝

원래 삼성그룹 후계자는 장남인 이맹희였다. 그런데 1966년 그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이맹희는 그룹에서 사실상 축출됐다. 이건희는 중앙일보 공동 창업자 홍진기(홍석현 회장의 부친) 등의 지원을 받아 1976년 사실상 그룹 후계자 자리를 확정했다.

고 이맹희 제일비료 회장
고 이맹희 제일비료 회장ⓒ제공 : 뉴시스

아무리 대권을 차지했다 해도 이건희 입장에서 맏형의 존재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이맹희는 그룹으로부터 축출된 이후에도 이건희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다. 이맹희는 동생이 자신을 끊임없이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고 주장했다.

1984년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지내던 이맹희의 거처에 삼성 비서실 출신 건장한 사내 둘이 들이닥친 일이 있었다. 이맹희는 이들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끌고 가려는 삼성 측 직원으로 확신했다. 이맹희는 이들을 향해 브라우닝 6연발 소총을 갈겼고 이들은 결국 쫓겨났다. 이맹희는 이 사실을 버젓이 회고록에 적어놓는데, 한국은 민간인의 총기 발포는 물론 총기 소유도 금지된 나라다.

1987년 이병철이 세상을 떠났고 본격적인 이건희 시대가 열리자 삼성그룹은 계열분리를 단행한다. 이병철의 유지에 따라 기업을 형제자매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을 한 것이다. 1991년 계열사 1차 분리 때 이인희(이병철의 장녀)에게 한솔그룹의 전신인 전주제지가, 이명희(이병철의 막내딸)에게는 신세계가 각각 넘어갔다. 하지만 이때에도 장남 이맹희의 몫은 없었다.

이맹희 가문이 CJ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을 얻게 된 때는 1993년이다. 이미 전자와 금융을 축으로 그룹을 재정비한 삼성에게 제일제당은 당시로서는 별 볼일 없는 식품 회사였다.

그런데 이건희는 이조차도 형에게 쉽게 넘겨주지 않았다. 회사 주식을 형이 아니라 형수(손복남)에게 매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맹희는 아들인 이재현이 CJ의 회장에 오른 이후에도 CJ에서 아무 직함을 갖지 못했다. 2015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의 직함은 제일제당과 아무 상관없는 ‘제일비료 전 회장’이었다.

제일제당을 넘긴 이후에도 두 그룹 사이에는 크고 작은 해프닝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의 이재현 감시 사건’이다. 1995년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당시 상무)은 서울 한남동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삼성그룹이 이재현의 이웃집 옥상에 고성능 원격조정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이재현 집 정문을 감시한 것이다.

이미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두 가문 사이를 감안하면 삼성이 이재현의 집에 도둑이 드는 것을 지켜주기 위해 CCTV를 설치했을 리는 만무했다. 당연히 제일제당 측은 “이번 일 말고도 삼성이 줄곧 이재현 상무를 감시했다. 미행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분개했다. 삼성은 “제일제당 측이 괜한 피해의식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반론했지만, 며칠 뒤 “오해의 소지를 없애겠다”며 허겁지겁 CCTV를 철수했다.

제일제당은 1997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으로 공식적으로 삼성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됐다. 2002년 사명을 CJ로 바꾸고 이재현이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CJ는 삼성과 전혀 다른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길을 걷는다.

형제지간에 벌어진 볼썽사나운 유산 분쟁

한동안 잠잠하던 두 형제 집안의 관계는 2012년에 다시 폭발했다. 이맹희가 이건희를 상대로 7100억 원 대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에는 이맹희의 동생이자 이건희의 누나인 이숙희 씨까지 가담하며 싸움이 커졌다.

참고로 이맹희 편에서 소송에 참여한 이숙희는 이병철의 차녀다. 이숙희가 소송에 가담한 이유는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한 푼의 재산도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병철은 이숙희에게 “너는 삼성의 라이벌인 LG 집안에 시집을 갔으므로 삼성 주식을 가질 수 없다”며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숙희 입장에서만 보면, 이병철의 태도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숙희가 LG가문의 구자학(현 아워홈 회장)과 결혼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결혼은 1950년대 한 골프장에서 LG창업주 구인회와 이병철이 골프를 치다가 성사된 정략결혼이었다.

이후 삼성이 LG가 진출해있던 전자 사업에 따라 진출하면서 두 사돈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시집가라고 한 것도 아버지였고, 두 가문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아버지였는데, “LG가문에 시집을 갔으니 유산은 없다”는 아버지의 주장을 이숙희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소송에서 이맹희-이숙희 남매의 주장은 “선대 회장(이병철)이 차명으로 관리한 주식은 모든 형제가 나눠 상속해야 하는데, 이건희 회장이 2008년 단독으로 처리했으므로 우리 몫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아비가 남긴 정당한 유산을 갖고 싸웠던 게 아니고 아비의 불법 차명재산을 “내가 더 가져야겠다”고 싸운 꼴이다.

실제 이병철은 비자금 계좌로 상당한 금액의 삼성생명 주식을 관리했고 이는 모두 이건희가 챙겼다. 이 때문에 삼성 측에서는 사실 이맹희의 공격에 매우 난감해 했다. 왜냐하면 문제가 커질수록 이건희의 재산 자체가 불법 차명 주식이었다는 사실을 홍보하듯 떠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이 조용히 처리하고자 했던 이 사건은 이건희가 분노를 참지 못하면서 눈덩이처럼 커져버렸다. 이건희가 먼저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한 푼도 못 준다”고 공표한 것이다.

다음날 이맹희는 “건희가 어랜애 같은 발언을 했다. 건희는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그런 탐욕이 이 소송을 초래했다”며 반격했다.

이튿날 이건희는 기자들 앞에서 큰 형을 ‘이맹희 씨’ ‘그 양반’ ‘그 사람’ 등으로 바꿔 부르며 맹폭을 가했다. “이맹희 씨를 누구도 우리집의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여러분들은 이맹희 회장과 나를 일대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큰 오산이다”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그러지만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이 제사에 나와서 제사 지내는 꼴을 내가 못 봤다” 등의 거친 발언이 이어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맹희 씨에 대해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이 우리집에서 제사 지내는 꼴을 내가 못 봤다"고 주장하는 장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맹희 씨에 대해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이 우리집에서 제사 지내는 꼴을 내가 못 봤다"고 주장하는 장면.ⓒMBN캡쳐

압권은 이건희가 “(이맹희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안 된다.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양반이다. 지금도 아마 그럴 거다”라고 한 대목이었다. 보통 고등학생들끼리 1진 다툼할 때 첫 대화가 “눈 깔아, 이 XX야”로 시작하는데, 이건희도 “이맹희는 눈을 깔았기 때문에 나보다 아래”라는 유치함을 폭발한 것이다.

이맹희가 2014년 소송을 철회하고 2015년 세상을 떠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은 바로 이 상속 분쟁이 한창이던 2012년에 CJ제일제당 직원의 사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지면 삼성과 CJ 두 가문의 질긴 악연이 재연되고 말았다.

이 긴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패륜 집안의 막장 드라마’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창피함도 모르고, 부모형제도 못 알아본다. 형제지간에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지금, 한국 재계 1위와 14위의 재벌을 경영하고 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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