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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굼벵이 걸음처럼 더디 오는 혁명

‘종편 (방송)’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조선과 중앙과 동아가 텔레비전을 낸다고?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나!” 그런데 채널을 돌리다가 (중앙일보가 물주로 똬리 틀고 있는) jTBC의 ‘썰전’ 방송 화면을 우연히 봤는데 거기 유시민과 전원책이 앉아 있다. 후자가 이회창과 같이 놀았던, 조선일보 계통 사람임을 쬐끔 알고 있던 터라 얼른 채널을 돌려버렸다.

“에이, 재수 없어라!” 그렇지만 탄핵 정국에 접어들었을 때, ‘썰전’이 뜬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 찾아갔더니 전원책이 좀 달리 보였다. 박그네를 놓고 시원시원하게 잡도리하는 거다.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걔 얘길 들어줬다. “아, 이른바 보수파 중에도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나오나?” 하지만 경주 지진 났을 때 걔가 정우택이의 설레발을 빌어서 ‘북한 핵실험 연관설’을 슬쩍 끄집어냈을 때 기분이 싹 가셨다. “개 꼬리 3년 둬봤자 황모黃毛 못 되는구나.” 최근에는 유시민이 ‘4대강 사업 의혹’을 제기했을 때 걔가 “증거 대 보라고!”하고 사납게 대드는 것을 보고, ‘이젠 썰전을 찾지 말아야겠구나’ 싶었다. 고작해야 “재벌 치부를 위해 그런 일, 벌이지 않았는지 <합리적 의심>은 내놓을 수 있다.”고 미적지근하게 맞받는 유시민의 맥빠진 대꾸를 왜 열렬하게(?) 듣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데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정치뉴스에 폭 빠져서 사는 와이프 때문이다. “우리 잘 생긴 유시민이 말을 듣겠다는데 왜 그래?”하고 화를 버럭 냈던 거다.

JTBC 이슈 리뷰 토크쇼 ‘썰전’
JTBC 이슈 리뷰 토크쇼 ‘썰전’ⓒJTBC 제공

굼벵이도 혁명할 줄 안다

박근혜 탄핵을 국회에서 고민하고 있던 때에는 전원책이도, 유승민이도, 능구렁이 김무성이조차도 괜찮게 보였다. 촛불 민심에 따라준 것을 놓고서 칭찬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탄핵 가결 다음날부터는 국면이 숨가쁘게 바뀌었다. 국정 교과서 고수固守작전이 가관佳觀으로 치달았고, (정권이 바뀌기 전에) 사드를 서둘러 알 박으려는 두 나라 집권배執權輩의 짓거리가 오사리 잡놈의 수준을 넘어섰다. “감히 안보에 토를 달려고 하다니, 무엄하도다!” 사드 문제를 놓고 유승민이 문재인과 이재명을 서슬퍼렇게 꾸짖는 얘기를 ‘썰전’ 방송에서 듣고 있자니 속이 다 뒤집혔다.

우리가 단군 이래 최대의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야 그럭저럭 내쫓았다만 그 ‘적폐 청산’의 앞날은 아직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를테면 엊그저께는 대구 경북의 사회운동단체들이 평화운동가 정욱식을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겠다는 것을 경북대 총장이 가로막고 나섰다. 고작해야 강의실 공간 하나 내주는 것인데 그걸 훼방 놓는다. ‘사드’ 발언을 깡그리 막겠단다. 교육부 장관만이 아니라 대학교 총장들까지 박근혜-아바타 정권의 꼭두각시로 나서는 판이니 블랙리스트 문제를 양승태의 사법부가 어찌 판결할지도 솔직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적폐 청산’의 그런 굼벵이 걸음을 감히 <혁명>이라 일컬어야 한다. 4.19때 간절하게 터져나온 민중의 목소리가 그뒤 민주화 운동으로 꾸준히 이어진 것이 (낮은 단계일망정) 엄연한 혁명이라면 지금의 촛불 외침도 자랑스런 혁명이다. 그때 초중학생들이 데모에 앞장섰듯이, 이번에도 초중학생들이 당당하게 집회장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진도가 얼마나 많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민심이 간절하게 동참하느냐가 중요하다. 1년 전만 해도 국정교과서에 대해 색안경을 (별로) 끼지 않았던 문명고 학부모들이 지금은 그것의 강요를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저변에 흐르는 민심이 어떠한지를 말해준다. “(우리까지 싸잡혀) 박사모 취급받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워요!”

일본의 평화헌법이 (비록 ‘해석 개헌’으로 빈 껍데기가 됐을망정) 지탱돼온 것에 대해 가리타니 고진이 날카롭게 짚어낸 것도 참고할만한 일이다. 일본의 보수 지배세력이 줄곧 ‘평화헌법 파기’를 다짐하면서도 막상 선거철이 되면 이를 의제로 들어올리지 못한 까닭은 시민운동의 저항 실력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신들 손으로 ‘평화’를 부정하라!”는 요구와 맞닥뜨릴 때 일본 민중이 고개를 돌릴 거라는 두려움에서다. 일본인들이 의식의 차원에서는 호전적인 정치담론에 솔깃해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는 ‘그럴 수 없다’고 뒷걸음질을 칠 터인데 역사적인 기억에 따른 무의식적인(!) 거부 심리가 작동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퇴짜 놓을 수 있는 것도 사회운동세력의 든든한 실력 덕분이 아니라 민중의 머릿속 한켠에 완강하게 자리잡은 거부 심리 덕분이 아닌가.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 입학식에서 학부모와 신입생들이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 입학식에서 학부모와 신입생들이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정당/정치 배제는 놀라운 시대착오

이제 혁명의 출발이다. 걸음이 더디다고 초조해 하지 말자. 큰 요구든, 작은 변화든 꺼낼 수 있는 거리는 다 꺼내자. 가령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봤더니 어느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등록자격 조항에 대해 문제 제기한 글이 떠 있다. 정당원으로 가입해 있거나 심지어 (그게 아니라도) 정치활동을 한 사람조차 받아주지 않는다는 희한한 조항이 아직 남아 있어서 분노가 치밀었단다. 이것, 진보교육감들한테 얼마든지 들이댈 일이다. “지금이라도 얼른 고치시오! 그런 케케묵은 조항 하나 못 뺀다면 말이 안 되오.”

모든 정치활동을 싸잡아 금지하는 웃기는 조항이야 삭제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정당원 배제’는 좀 간단치 않을 수 있다. “정당은 빠져라!”하는 얘기를 우리가 워낙 오랫동안 듣고 살아서다. 그렇다면 정당들한테 전화를 걸자. “당신들이 나서시오. 요즘 탄핵정국이 된 덕분에 정당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에 대한 불신이 정말 짙지 않았소? 왜 정당들을 찬밥 취급하느냐고 당신들이 교육부/교육청과 싸워야 하는 것 아니오?”

학교운영위원회에는 여러 당 당원들이 (서로 쌈박질할 마음으로) 죄다 들어와도 괜찮다. 학운위에 한번이라도 들어가본 사람은 안다. 서로 얼굴 붉힐 주제가 토론될 일이 거의 없고, 그렇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문제다. 다시 말해, 학사 일정의 진행을 추인해주는 일 말고 학운위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야 할 것 아닌가.

심지어 학운위를 (수구꼴통으로 판명난)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죄다 차지해도 걱정할 일 아니다. 걔네가 파토 놓을 일이 딱히 없는데다가 이상한 얘기를 늘어놓으면 촛불을 겪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걱정할 일은 학운위에 참여하려는 능동적인 시민이 아직도 많지 않다는 사실 아닐까?

필자는 작년 봄에 서울 양천구에서 첫 삽을 뜬 나눔교육 협동조합에 얼마 전, 조합비를 내고 이름을 올렸다. 촛불을 바라보며 세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키운 학부모들이 거기, 참 많았다. 양천구의 한 귀퉁이 동네가 그럴진대 나라 전체의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드로 하여 주권국가의 허상이 깡그리 드러났다. 미국이 잇따라 금리를 올릴 거라는 소식도 들려 온다. 가계 빚에 더더욱 허덕일 민중이 무엇에 헛헛해할지, 또 무엇을 갈망할지, 구태여 입에 올릴 것도 없다. 200만 촛불의 뒷면에는 어쩌면 심상치 않을 세상의 소용돌이가 놓여 있다. 그러니 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서 우리가 도무지 배기겠는가.

정은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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