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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재용은 미전실에 분노했나? - 경제학으로 풀어본 ‘예스맨의 경제학’

이재용이 특검의 구속 영장 청구를 앞두고 미래전략실 핵심 간부들에게 “내가 이번에 구속될 것 같냐?”라고 물었다고 치자. 연봉 수억 원에서 수십 억 원씩 받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변호사들이 이재용의 옆에 있다.

과연 그들이 이재용에게 뭐라고 답을 했을까? 우리는 실제 그들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에 관해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하나 있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미전실 핵심 팀장들(사장 또는 부사장급) 7명에게는 상담역·보좌역 자리가 일절 주어지지 않았다”는 14일자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그 단서다. 보통 삼성은 미전실 고위간부를 해임해도 보좌역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에게 일정의 급여를 주면서 미래를 대비하도록(!) 여유를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배려가 일절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승강기를 타고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승강기를 타고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보도에 따르면 해임된 미전실 전직 임원들은 그야말로 ‘백수’가 됐다. <한겨레신문>은 이를 두고 “삼성 안에서는 이 같은 미전실 전격 해체, 팀장 전원 사임과 전직 임원 예우 배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이재용의 분노’가 꼽힌다”라고 해석했다. 구속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이재용이 자신에게 그릇된 정보를 전달한 간부들을 향해 분노의 총질을 해댔다는 이야기다.

이제 앞에서 던진 가상의 질문에 대한 답이 비교적 분명해 진다. 미전실의 변호사들은 이재용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회장님. 절대 구속 안 되니 걱정 마세요!”

박근혜, 이재용이 저지른 똑같은 오류

이런 오류는 이재용만 저지른 것이 아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된 10일 청와대 참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용된 게 사실이냐?”며 재차 확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흘 동안이나 청와대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무슨 대단한 불복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해석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단지 삼성동 자택에 보일러가 안돌았고 TV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근혜 역시 이재용과 마찬가지로 측근들에게 똑같은 답을 들었던 것 같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각하. 절대 탄핵 인용 안 되니 걱정 마세요!”라는 답 말이다.

박근혜의 변호사들이건 이재용의 측근들이건 모두 나름대로 전문지식들이 있는 변호사들이다. 그들 모두가 일치해 이런 잘못된 정황을 보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에서는 이를 두고 ‘예스맨 이론(A Theory Of Yes Men)’이라는 정보경제학 모델로 분석한다.

보통 고객과 변호사가 계약을 맺을 때 정보경제학에서는 돈을 지불하는 고객을 ‘주인’, 돈을 받고 주인을 위해 일 해주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본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대리인 관계가 형성됐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돈을 내는 주인은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일을 대신해주는 대리인은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 ‘정보불균형’ 상황이 발생한다. 정보를 독점한 대리인이 돈값을 못하고(혹은 안 하고) 주인을 속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주인이 추구하는 최대 이익과 대리인이 추구하는 최대 이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치과 환자와 악덕 의사 사이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돈을 내는 주인(환자)은 최대한 싼 값에 치아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대리인인 의사가 돈만 밝힌다면 주인의 치아 건강보다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관심이 크다.

주인은 치아 치료에 대한 상식이 없다. 반면 대리인은 이 분야의 전문가다. 이런 정보불균형 상황에서 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금 이 이빨, 저 이빨, 아랫니, 어금니 다 치료 안 하시면 큰 일 납니다”라고 말한다면 정보가 없는 주인은 속을 수밖에 없다.

이재용과 미전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해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이재용은 구속을 안 당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법 지식이 없다. 그런데 미전실 변호사들의 관심은 자신의 연봉이 더 높아지고 승진이 더 빨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를 독점한 변호사들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신의 출세에 유리한 대답만을 한다. 그 대답이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회장님. 절대 구속 안 되니 걱정 마세요!”라는 답이었다.

예스맨이 득실거리는 이유는 리더 탓이다

예스맨 이론을 발전시킨 경제학자 캐니스 프렌더개스트 시카고 대학교 교수는 2003년 발표한 논문 <예스맨에 관한 이론(A Theory Of Yes Men)>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대리인이 주인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주인이 평소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간파한 대리인은 주인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사탕발림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즉 주인이 주관적 평가지표에 의해 대리인을 평가할수록, 대리인은 주인에게 아부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프렌더개스트의 이론을 이재용에게 적용하면 사태는 매우 분명해 진다. 수 십 억 원 연봉을 받는 미전실 거물급 변호사들 중 이재용에게 “구속 위험이 큽니다. 구속 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합시다”라고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평소 이재용이 평소에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대리인들을 좋아하고 승진시켰기 때문이다.

박근혜 변호인단도 마찬가지다. 누가 봐도 탄핵 인용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그들 중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박근혜가 평소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참모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서석구 변호사
서석구 변호사ⓒ출처 : 화면캡쳐

예스맨 이론의 핵심은, 주인이 대리인으로부터 진실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리더 탓이라는 대목이다. 애초부터 주인이 진실을 추구하고, 쓴 소리 하는 참모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면, 수 십 억 원 씩 연봉을 받는 유능한 참모들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리더 주변에 “주인님 말씀이 옳습니다”라는 간신이 득실댈수록 조직은 병들어가고 진실이 사라진다. 그리고 언젠가 난무했던 거짓은 주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다. 박근혜와 이재용은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는 물론, 평소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했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도 함께 치러야 할 때가 왔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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