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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너풀너풀 가벼운 거인의 음악
로다운30
로다운30ⓒ붕가붕가레코드

괄목상대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소설 삼국지에서 나온 말이다. 오나라의 왕인 손권이 총애하는 부하 여몽의 무식을 지적하자 여몽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훗날 달라진 여몽의 모습에 놀란 노숙에게 여몽이 말한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삼일이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야 한다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주목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해도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훌륭한 작품을 내놓았다 해서 늘 좋은 작품을 내놓는 법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명성에 못 미치는 작품으로 아쉬움을 주는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그리고 특정 장르와 스타일로 주목받았다고 해서 늘 똑같은 장르와 스타일만 구사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 뮤지션이 특정 장르와 스타일로 빼어난 작품을 남기면 그 다음 작품도 비슷할 거라고 지레짐작해버리곤 한다. 괄목상대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 3월 15일에 출반된 로다운30의 정규 3집 [B]를 들으면서 괄목상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로다운30 이라고 하면 다들 기타리스트 윤병주와 베이시스트 김락건의 얼굴을 생각하고, 그들의 전작들을 기억하며 당연히 블루스와 하드록이 교배된 음악을 내놓을 거라 단언한다. 예스럽고 묵직하고 찐득찐득한 음악. 담배 연기 자욱한 지하의 클럽에서 독한 술을 마시며 들어야 할 것 같은 음악. 이제는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줄어든 아재들의 록 음악 말이다.

하지만 로다운30의 3집 [B]는 우리가 알고 있고 예상하는 로다운30의 음악으로부터 살짝 비켜선다. 그렇다고 록음악이 아니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3집의 수록곡들은 여전히 고전적인 록 음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이미 2집에서도 힙합과 팝을 넘나들었던 로다운30은 이번 음반에서도 록 음악의 안팎을 설렁설렁 기웃거린다. 로다운30은 록 음악의 전통성과 정통성에 원리주의자처럼 충직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로다운30은 고전적이고 묵직한 드러밍과 도드라지는 베이스 기타의 리듬감, 투박해보이는 듯한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의 톤을 일견 유사하게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음악의 무게감을 훨씬 가볍고 날렵하게 변화시켰다. 이를 위해 연주하는 악기의 톤은 좀 더 가볍고 투명하게 하면서 여백을 많이 주었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는 각자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울림을 서로 침범하거나 압도하지 않고 충분한 거리룰 둔 채 배려하듯 연주함으로써 언플러그드에 가까운 질감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리듬 역시 가볍고 펑키해졌다. 음반 전반에 흐르는 가볍고 펑키한 리듬감은 로다운30의 음악을 훨씬 경쾌하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윤병주의 보컬 역시 잽을 날리듯 툭툭 치고 빠지면서 자유롭다. 이렇게 함으로써 헤비한 록음악의 올곧은 수호자처럼 보였던 로다운30의 음악은 몰래 감량을 하고 나타난 이처럼 눈과 귀를 함께 비비게 만든다.

로다운30 3집 ‘B’
로다운30 3집 ‘B’ⓒ붕가붕가레코드

다채로움으로 변화한 ‘로다운30’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세 멤버의 연주력과 아우라로 채워졌던 직선적인 음악은 세션 뮤지션들의 다채로운 연주로 아기자기해졌다. ‘일교차’에서 선보이는 전상민의 키보드 연주에 이어 곡의 후반부에서 건반과 일렉트릭 기타가 잼 연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순간은 로다운30에게 기대하는 사운드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일교차’에서는 “더 차갑게”를 외치다가 ‘더뜨겁게’에서는 “더 뜨겁게”를 부르짖는 윤병주의 보컬도 재미있다. 하지만 간주의 일렉트릭 기타 솔로와 후주 부분에서 선보이는 김오키의 농염한 색소폰 연주야말로 이 음반이 지향하는 잔재미와 여유로운 유머감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가파른길’ 역시 로다운30의 역사와 힘을 재확인시키는 연주를 들려주면서 다양한 변주를 감행함으로써 이번 음반이 감행한 변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가볍게 치고 빠지는 호흡은 ‘그땐왜’에서도 동일하다. 헤비한 블루스 사운드를 전면화하면서 날렵한 리듬감을 놓치지 않고 여백의 여유로움까지 횡단하는 ‘검은피’ 역시 허허실실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는 좋은 곡이다. 지직거리는 사운드에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로 밀고 들어가는 ‘네크로노미콘’은 오래된 로다운30의 팬들을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곡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곡에서도 로다운30은 속도를 늦추고 유려한 멜로디를 부각시키면서 다시 한 번 괄목상대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에 이어진 변화가 생동감 넘치고, 각 부분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술서처럼 하나의 곡으로 훌륭하게 통일된 ‘네크로노미콘’은 이번 음반을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을만하다. 로다운30의 펑키함을 이어가는 ‘바늘’은 깔끔한 구성에 재치 있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더함으로써 윤병주의 싱싱한 감각을 다시 한 번 은근하게 과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인용하는 곡 ‘저빛속에’에서도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는 곡에 충분한 긴장과 잔재미를 불어넣는다. 아울러 ‘저빛속에’의 노랫말에서 확인되는 윤병주의 단단한 시선은 음악에 더 많은 서사와 무게를 부여한다. 마지막곡 ‘그대가 없었다면’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윤병주의 편안한 보컬이 잘 어울린 곡이다.

로다운30
로다운30ⓒ붕가붕가레코드

로다운30의 음반 [B]는 로다운30이 추구해온 록의 전통적인 무게감과 강렬함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조율해,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사운드 안에서 흘러가게 함으로써 편안하다. 그러나 이 편안함은 느슨함이나 게으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 좋은 멜로디가 흘러다니는데다, 아기자기하고 인상적인 사운드 연출을 하고도 이 역시 똑같은 자연스러움 안에서 배치함으로써 부담스럽지 않게 하면서, 그 섬세함조차 예민하게 인식하지 못할만큼 원숙한 자연스러움으로 빚어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의 성취는 로다운30의 어떤 음반보다 뛰어나다. ‘더 차갑’고 ‘더 뜨’거우면서도 무척 따뜻하게 느껴지는 음악. 하는 것 같으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 다 해내는 경지. 허투루 만든 소리와 움직임은 거의 찾을 수 없고, 곱씹어 볼수록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정확하게 있으나 하나도 부족하지 않고 하나도 넘치지도 않는 경지를 우리는 대가라고 했던가. 하드록이나 블루스가 예전 음악이라거나, 이제는 더 이상 록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은 이 음반 앞에서는 잠시라도 헛되다.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조화롭게 연결하고 순간에도 역사가 깃들게 했으나 낡지 않고 고집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다양한 장르로 확장해 재미있으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평화롭기도 결코 쉽지 않다. 너풀너풀 가벼운 거인의 음악이 빙그레 웃고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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