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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전태일 동생’ 전태삼 씨 “내 나이는 20살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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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의 연세대 캠퍼스에서는 한 청년의 떠나감을 기억하는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1996년 3월 '김영삼 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 및 대학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유명을 달리한 연세대 법학과 노수석(당시 20세) 학생. '열사'라 불리는 그의 21주기 추모식은 소박하고도 비장했다.

그리고 이곳에 또 한명의 '청년'이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검게 탄 얼굴을 한 그의 눈동자에서는 소년처럼 맑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청년' 전태삼(66) 씨는 추모식이 끝난 뒤 연세대 캠퍼스를 한바퀴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 걸어가는 저 학생들이 다 역사의 주인들이야. 오천년 역사의 이음새가 빠짐 없이 이어져 온 동기와 과정과 결과물들이라고 저 젊은이들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열사들이 그 이음새 역할을 해온 거야. 한열이도 마찬가지고. 그걸 잊지 않고 매년 기억해주니 얼마나 기특해?"

"내 나이는 '20살'에 멈췄다"

전태삼 씨
전태삼 씨ⓒ민중의소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인 전 씨는 자신의 나이를 20살이라고 소개한다. 1970년 11월 13일, 그가 아직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형'이라고 부르는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불길 속에서 스러졌다. 전태삼 씨는 "내 나이는 그때 멈췄어"라고 말했다.

그는 형이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다. 전 씨는 당시 대학교에 꼭 진학해야 한다는 주변의 강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형의 친구들과 노동운동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형과 함께 일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조 조직부장을 하면서 밤에는 야학 교사를 했다. 그것은 그가 좇은 형의 발자취이기도 했다.

"형이 가고 나서 김문수, 장기표, 김근태 이런 사람들이 나한테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권유했어. 나는 한사코 뿌리쳤지. 그런데 문수는 곧 나를 따라 2개월 정도 신평화복장학원에서 같이 재단일을 배우더라고. 대학도 휴학하고. 그 사람 작년에 선거에서 떨어졌잖아? 이젠 돌아올 때도 됐는데 말야."

전 씨는 이후 한 번도 노동투쟁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몸이 편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그의 아내는 형편이 어려워 자식들에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비롯해 그의 가족은 언제나 뜻을 함께 나누는 '동지'였다. 전 씨는 가족 얘기를 할 때는 한없이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다가도 금세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전두환 계엄 시절, 한겨울에 어머니와 내가 성동 구치소에 수감이 돼서 포승줄에 묶여서 재판을 받으러 다녔을 때 집사람이 면회를 왔어. 그런데 벌겋게 꽁꽁 언 얼굴로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면회실에 들어오는 집사람 머리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더라고. 그 모습에 가슴 아팠던 것은 내가 아직도 잊지를 못 해."

전 씨는 어머니가 눈을 감기 한 해 전인 2010년 가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대회날을 회상했다. '우리 모두가 전태일이다' 구호가 거리를 뒤엎은 그날, 전 씨는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형의 유언을 모두에게 이양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식으로 여기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어나가지 않는 세상을 향한 간절함이 그 고된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 어머니가 바로 달려가셨어. '진숙아, 진숙아, 너 거기 왜 올라가 있냐. 또 장례식을 하라는 말이냐. 내려와라, 내려와라. 내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너와 함께 싸울테니 내려와서 같이 싸우자' 소리를 지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에서 어떻게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 뿐이었어. 그 길에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했어.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나갔어.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고."

"소외되는 사람 없는 세상 만드는 게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하는 것"

전태일 동상과 함께한 전태삼 씨
전태일 동상과 함께한 전태삼 씨ⓒ전태삼 씨 제공

전 씨가 동지들과 함께 걸어온 길은 끝없는 죽음의 길이기도 했다. 생명의 죽음, 존엄의 죽음, 가치의 죽음이 끝없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럴 때마다 깨어있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죽음의 행렬에 맞서 이겨보길 간절히 소망했다. 더 이상 누굴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절박감을 모아 분명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것을 '노동자 주권'으로 표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날, 그는 신이 나서 광화문 광장을 휘젓고 다녔다.

"기륭전자, 코오롱, 쌍용차 등 100여개의 현장에서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끝질기게 자기 자리에서 투쟁하고 자기 주권을 지켜내려고 했던 것의 결실이야. 다 현장 투쟁이야. 그게 우리를 깨어있게 한 거라고. 저절로 된 게 아니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현장에서 광장에서 모두가 공유하게 되고 주변을 돌아보고, 그러면서 서로의 존엄과 아픔을 인정하고 헤아리게 된 거야. 거기서 생긴 힘으로 박근혜도 끌어내릴 수 있었던 거지."

전 씨는 '오늘 없는 것은 내일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봄이 왔는데 봄이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쳐서 그 귀한 '씨'도 잃고 봄마저 잃어버리면 어떡하겠어"라며 웃어보이던 그는 지금 현재 서 있는 곳 자체가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중심지라는 낙천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는 정말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돼. 그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거야. 그래서 노동의 가치가 인정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거고, 세월호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똑같아. 찢기고 부서지고 참혹한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뼈와 살을 다시 모아야지. 그게 바로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전 씨는 지난 2012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한 이치우 '할배'를 기리기 위해 썼다는 시를 보여줬다. 먼저 떠난 형을 비롯해 열사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

밀양 겨울새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객지인 듯
하루 품삯에 하루를 담아
비상하는 날개

하루에도 몇 번씩 점검을 하듯
오늘인듯
문득 문득 겨울 하늘을 날아오른다
날아야 할 날에 날기 위한
오늘을 산다

내일은 내일 살 듯이
창공에 하얀 날개는
새의 삶이다
허공을 차고 올라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생의 날개
고향을 향한 날개짓
애처롭다

나마저 새들의 고향이 그립다
버들 강아지가
얼음 밑 냇물 속 송사리떼를 내려다 본다

냇물이 시내가 되어 그저 흐르는 것은 아니다
바다가 그리운 것도 아니다

하나됨보다 높은 길을 간다
여명을 씻는
아침이슬 저 너머
꿈꾸며 간다
새들의 고향으로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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