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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림의 대화 - 김선동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서 있는 데가 바뀌지 않는 정치가 필요하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 송곳의 대사다. 이 명대사는 어쩌면 여의도에 가장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경향 각지에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치1번지 여의도로 모인다. 그리고 ‘정치인’이 된다. 그 때부터 많은 정치인들은 서 있는 곳이 바뀐다. ‘여의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간혹 ‘서는 데’를 바꾸지 않는, 혹은 바꾸지 않으려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아직까지 이런 정치인들은 정치적 성공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변화’다. 많은 정치인들이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겠다고 밝힌다. 정치인들이 만들 ‘변화의 방향’은 어쩌면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을까.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발언대에서 연설하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발언대에서 연설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연합당 대선후보로 나선 김선동 전 국회의원은 ‘서는 데’를 바꾸지 않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 전 의원이 이 문제의식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노동자 출신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국회의원 자리에서 내려와서 (박탈되고 나서) 다시 현장 노동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하기 직전까지 그는 건설현장에서 망치를 잡고 일을 하는 현장노동자였다. 그의 직업은 ‘배관공’이기도 하고 ‘정당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장에 서서 여의도를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다.

왜 다시 현장노동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의원의 대답은 두 개였다. “한국 정치가 현장의 아픔, 희망에 함께 할 수 있는 정치가 되려면 여전히 정치인들이 더 현장에 가야 한다.” 이런 말은 이미 많은 정치인들이 했고 지금도 하는 말이다. 두번째 대답은 이렇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기도 합니다.” 잠시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에 있었지만 그가 서있는 곳은 현장이었다. 노동현장은 그에게 ‘경험’을 위해 혹은 서민의 삶을 ‘공부’하기 위해 잠시 찾는 곳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며 그 자신이 노동자다. 그는 서있는 곳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김 전 의원이 이번 대선에서 주장하고 싶은 첫번째 정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희망일 뿐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 차별”이 이 시대의 가장 깊숙하고도 근원적인 모순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청년들에게는 비정규직 밖에 없게 되고, 결국 청년들은 미래를 포기하는 악순환이 돌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동일임금이면 동일노동을 받는’ 것이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우리사회를 70년간 짓눌러왔던 ‘적폐’의 정점에 있던 박근혜 세력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주권자’ 국민이 단결한 결과다. 김 전 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만드는 힘도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에게 단결할 수 있는 권리, 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잘 보장해주면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다고 했다. 꿈같은 말로 들린다. 그냥 책 속에 있는 원론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변화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 ‘변화’를 만드는 힘은 아닐까. 헌법에 존재했지만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던, 어쩌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할까 의문을 품었던 주권자의 단결과 행동이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김 전 의원은 ‘물리학도’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의 대학시절은 ‘물리학’이 아니라 ‘반독재’로 꽉찼다. “이게 다 전두환 때문입니다.” 김 전 의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87년 6월 항쟁의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5월 23일 종로 연와시위에 참여하고 1988년 미문화원 점거투쟁에 나섰다가 구속됐다. 대학에서는 제적됐다. 1989년 그는 노동현장으로 갔다. 많은 학생운동 출신들이 잠시 ‘서는 곳’을 노동현장으로 택했다가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는 흔들림과 번뇌없이 신념을 지킨 사람일까? 아니다. 그도 번뇌했고 흔들렸으며 심지어 수배생활 끝에 가족을 찾아가 ‘이제 노동운동 그만하고 돈을 벌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를 현장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그 후로도 그는 많은 흔들림을 마주했지만 30년 전 어머니의 말은 그의 삶에 ‘좌표’가 됐다.

대선후보로 나서고 그가 찾는 곳도 현장이다. 그는 노동문제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자는 주장에 이어 ‘농업농촌농민을 살리는 농업대혁명’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희생만 당해온 농민들을 위해서도, 기후이변이 일상이 되어가는 미래에 제기될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진보정치의 양대 축이었으나 지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대선에서 가장 호소하고 싶은 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민중연합당 대선 후보 김선동 전 의원과의 ‘정혜림의 대화’ 전문이다.

착한아이 선동이 장군의 별명을 얻게된 사연

정혜림 우선 시청자여러분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까요
김선동 19대 대선에 나온 민중연합당의 김선동입니다. 저 어렸을 때 별명은 선동 착한아이였고요. 커서의 별명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고 해서 장군이라고 많이 들었습니다.
정혜림 선동이 착한아이라는 뜻이군요.
김선동 네. 악동의 반대말입니다.
정혜림 대선 후보로 출마하시니까 개인적인 것도 여쭤볼까 하는데요. 김선동 후보님은 학창시절에는 정말 착한아이였는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선동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아주 평범한 모범생이었죠. 다만 남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 국어책에서 백범 김구선생님의 나의 소원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백범일지를 사서 보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대해서 이해하게 됐고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이 과학기술문명이 뒤쳐져있기 때문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자주권을 지키고 우리 민족이 행복하게 살려면 다시는 다른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물리학자가 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혜림 독특한 결론인데요. 독립운동에 감화를 받아서 물리학도로. 그렇게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셨는데 졸업을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학생운동을 어마어마하게 그 때 당시 학생운동사의 모든 일에 다 있었다고 들었어요.
김선동 전두환 때문이었죠. 전두환이 없었다면 제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돼서 과학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했을텐데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웃음).
정혜림 학생운동 하실 때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무시무시했을 때니까요. 얘기 듣기로는 살벌한 시대였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선동 87년 6월항쟁이 일어나기 전 4월 13일에 전두환씨가 헌법을 고치지 않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호헌선언'을 했어요. 5월 23일날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기로 했는데 학생들의 결연한 독재타도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화염병이나 쇠파이트 같은 무기를 하나도 들고 가지 않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서 맨몸으로 도로에 누웠어요.
정혜림 다 끌려갔나요
김선동 다 끌려갔죠.
정혜림 그런데 안 무서우셨어요?
김선동 아 무서웠죠.
정혜림 87년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번 촛불집회를 보는 소감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김선동 6월항쟁을 주도했던 세대들, 386세대는 그 후에 정치권에 진출하고 사회 곳곳으로 진출해서 일정하게 사회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봅니다. 이번에는 세월호 세대들이 촛불항쟁의 주역으로 나섰습니다. 바햐흐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를 보다 더 민주화된 나라, 보다 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주권자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동현장 출신 정치인은 있지만,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치인은 없다

정혜림 노동운동을 하셨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학생운동 하시다가 노동운동으로 넘어가셨는데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초반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머니한테 혼이 나셨다고…
김선동 저희 6월항쟁 세대들은 한국사회에서 독재정권을 물리친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이 민주화되려면 노동자들이 무권리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자기들의 생존권을 보장받아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동현장으로 가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이나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 등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현장으로 많이 갔었죠.
그런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많이 그만 뒀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동구사회주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변화였고 다른 하나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주는 막막함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학생운동 출신들이 현장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오래 가지 않아서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저도 어머니 아니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죠. 오랜 수배생활을 했었는데 고향을 찾아서 어머님 아버님 동생들 다 모인자리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쭉 해왔는데 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얘기 했더니, 동생들은 오빠가 형이 어련히 잘 생각해서 그러겠냐며 존중한다고 했어요. 아버님은 니가 철이 들었다 돈 벌고 기반잡고 나서 사회도 바꾸고 정치를 바꾸는 일을 해도 늦지 않다고 했죠. 그런데 어머님께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너 혼자만 그만두냐 아니면 다 같이 그만두냐'. 저 혼자만 그만둔다고 했더니 '너도 오죽 힘들면 그만 두겠느냐만 너가 혼자 그만두면 남은 사람들은 니 몫까지 해야하지 않겠냐, 그럼 얼마나 더 힘들겠느냐,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하시더라고요.
정혜림 그래서 어머님 말씀 듣고 다시 가신거에요?
김선동 그래서 바로 밤으로
정혜림 보통 가족들이 다 말리실텐데
김선동 그래서 저희 어머님이 요새 제가 50살이 넘어서도 변변한 재산 모은 것도 없이 돈벌이도 못하고 왜 그렇게 사냐고 말씀하셔서, 제가 '아 그러게 그 때 어머님이 왜 말리셨냐고'하죠(웃음).
정혜림 노동운동 하시면서 배관공으로도 일을 하셨다고 들었고 이것저것 일을 많이 하시면서 노동운동을 같이 하시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김선동 학교에서 제적되고 89년도에 울산에 갔어요. 현대중공업 지금은 사내하청이라고 하는데 그 때는 내주업체라고 불렀던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배를 만들 때 갑판이 50미터까지 올라가거든요. 갑판을 용접하는 분들이 딛는 발판을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 족장공이라고 하는데 1년을 채 못하고 그만뒀어요. 40미터 높이에서 족장공이 실수로 추락해서 바로 콘크리트 바닥에서 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다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그만두고 광주로 갔죠. 지금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있는, 당시에는 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의 하청업체에서 엔진커버를 만드는 일을 했었죠.
정혜림 배관공은?
김선동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하고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 선거운동본부장을 맡았는데 권영길 후보가 3%밖에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퇴했어요. 공장노동자가 되고 싶었는데 공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너무 알려진 인물인데다 진보정당 고위층 간부여서 그런지 채용을 안해줬어요. 결국 노동자들도 힘들어서 잘 가려하지 않는 플랜트 건설현장의 배관조공으로 일하게 됐죠.
정혜림 어떤 일인가요?
김선동 도시에서는 도시가스 배관 혹은 수도배관을 접할 수 있어요. 공장은 물이 가야하는 관이라던지 산소가 가야할 관이라던지 가스가 가야할 관들을 설치하는 일이죠.

노동자 정치인은 진짜 일을 잘 한다

정혜림 보통은 다른 일을 하다가 정치를 하게 될 수는 있지만 정치를 하다가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김선동 가끔씩 있었죠. 정말 현장 노동자로 망치를 드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죠.
김선동 지금도 제가 존경하는 이상규 의원, 저. 두 명 밖에 있지 않나.
정혜림 왜 그러셨어요? 정치를 하면 사람이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쉽지 않잖아요. 굳이 힘들게 내려가서 할 이유가 있을까요?
김선동 첫째는 정치인들이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생활현장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거에요.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 그들이 절실히 바라는 희망을 외면해서 한국 정치가 서민들에게는 배신의 정치아니곘습니까. 우선은 한국 정치가 현장의 아픔, 희망에 함께 할 수 있는 정치가 되려면 여전히 정치인들이 더 현장에 가야 한다. 둘째로는 가정 생계를 이어갈 생계수단이 없기도 합니다.
정혜림 슬프네요. 생계를 위해서… 주변 동료분들은 반응이 어떠신가요?
김선동 사무총장을 마치고 원내 3당의 사무총장을 마치고 돌아가니까 회사 관리자들도 부담스러워 했어죠. 회사동료들도 조공이면 일을 시켜야 하는데 부담스러우니까 같이 일을 안 하려고 했었죠. 정치인들의 쇼로 보고 하는 . 시늉만 하다가 조금 있으면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를 놓고 고참 선배들끼리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언제 그만두느냐. 한 달이면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3개월이 대부분의 예상이었어요. 저를 좀 높게 평가해준 분들은 6개월을 걸었고요. 1년은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한 분 계셨어요. 전국플랜트노조를 만드셨던 윤갑인재 위원장님이었습니다. 결국 내기에서 이겨서 그 돈으로 소주 한 잔 사주셨어요.
정혜림 노동현장에 계셨다가 다시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궁금해요.
김선동 처음 현장에 갔을 때는 노동자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서 노동자들이 헌법이 명시하는 노동3권을 행사하도록 돕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법인 법률과 정부의 시행령에 의해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사실상 봉쇄돼 있었습니다. 수많은 악법들이 노동자들의 권리행사를 가로막고 있죠.
노동관계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이 아니라 노동3권을 제한하는 법이고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부부처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재벌대기업 편에 서서 노동자를 옥죄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률을 바꿔야 하고 제도를 바꿔야 하고 행정부를 바꿔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을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정치 아닌가 생각했죠.
정혜림 본인이 생각하기에 내가 생각했던 국회의원의 일을 많이 하셨는지
김선동 2011년 4.2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1년 동안은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특별법도 발의했고 건설노동자들의 기능훈련 예산도 확보하고 왜관에 있던 미군기지에서의 고엽제 매립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했고, 한미FTA의 여러가지 독소조항들을 전체 국회의원들이 알 수 있도록 국회에서 끝장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한미FTA반대 범국민운동본부, 한미FTA 국회의원비상시국회의, 야당공동정책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서 한미FTA가 갖고 있는 독소조항들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여한없이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19대 국회에서는 순천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당선시켜줬는데 정작 통합진보당 사태가 발생하고 분당이 되고 박근혜 독재정권의 공안탄압, 공작정치에 대응하느라고 노동자 민중들을 위해서 하고 싶었던 서민들을 위한 의정활동은 제대로 못했죠. 그것도 2년만에 박근혜 독재정권이 최루탄 사건을 빌미로 부당하게 정치재판을 통해서 의원직을 빼앗아 버려서 저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준 순천 시민들에게 저의 당선을 통해서 기대를 가졌을 노동자 서민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최루탄 사건, 같은 상황이 온다면 김선동의 선택은?

정혜림 사실 국민들에게 김선동 국회의원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최루탄. 한미FTA를 막기 위해서 최루탄을 국회에서 하셨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계속해서 따라다닐 꼬리표처럼 이미지가 박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부담감이 있거나 괜히 그랬나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김선동 그 일이 2011년 11월 22일날 있었던 일이거든요. 그로부터 5개월 후인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을 했어요. 상대방이 민주당 후보이고 순천시장에 두 번이나 당선된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58%, 상대방 후보가 38% 압도적인 표차로 저를 당선시켜준 것을 보면, 순천 시민들은 저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할 국회의원으로 평가해 준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루탄 사건은 그런 상징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혜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김선동 보다 더 현명한 방법을 동원해서 하겠죠. 작년에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했을 때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 보셨죠. 온 국민들에게 생중계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처럼 그 때 당시에 시스템이 있었다면, 국회방송이 전국에서 볼 수 있었다면 제가 전국적인 스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제가 100분토론 30번에 해당하는 무제한 토론 끝장토론을 진행했어요. 그 토론이 있기 전에는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87명 중 70% 이상이 한미FTA 찬성했어요. 잘 모르고 찬성했다고 정동영 의원이 고백해줬죠. 그 분들이 (토론이후에) 당론으로 한미FTA 독소조항 10가지를 제거해야 하고 2가지는 보완입법을 해야 한다고 결론내렸어요. 이 조건대로 안 되면 당론으로 한미FTA를 반대한다고 했죠. 이런 내용들을 국민들이 안다면 제가 지지율 1위가 아닐까.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주고 농민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정부가 필요하다

정혜림 대선공약 1호로는 어떤 것을 내세우고 계신가요?
김선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차별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업들은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청년들에게는 비정규직 밖에 없게 됐습니다. 청년들은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고 인생의 미래가 암담해서 오죽하면 지옥같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하는 것이 제1과제라고 봅니다. 노동자들이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같은 일을 했으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즉 동일노동이면 동일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잘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인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해주면 됩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교섭하고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단체행동을 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고 생존권을 지켜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노동3권의 전면보장. 이것이 1호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무역규모로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수십년동안 일방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농민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돈주고 외국농산물을 수입해다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고 전 지구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집니다. 100년만의 가뭄, 100만의 홍수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향후 기상이변으로 식량사정이 어려워 질 때가 온다는 겁니다. 식량이 가장 중요한 안보가 되는 시절이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농업을 살려야 하고 농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농촌농민을 실리는 농업대혁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을 대선 기간 동안에 노동자들에게 서민들에게 적극 알려내고 이런 방향에서 힘과 지혜를 모으고 싶습니다.

동북아시아 긴장이 격화돼서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핵전쟁이 터지면 남쪽이든 북쭉이든 승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같이 멸망하는 공멸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민족이 외세의 싸움에 휘말려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꼴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이겨내고 물리치고 우리민족끼리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고 서로 손을 잡고 같이 살 수 있는 같이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후손들에게는 부강한 통일조국을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점을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에 꼭 국민들과 함께 민족의 꿈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데 힘을 쏟아 볼까 합니다.

정혜림의 대화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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