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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미술이야기] 제주 4.3을 미술로 기억하는 법

역사는 역사적 가치를 자각한 사람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기록된다.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태어난 작품 중 일부만이 미술사로 남는다. ‘제주 4·3미술제 아카이브’ 작업은 ‘제주 4·3미술제(이하 ‘제주’ 생략)’를 한국미술사의 한 페이지로 밀어 넣는데 보탬이 되기 위한 작은 시도다. 4·3미술제로 접속하면 현재진행형으로 기록되는 4·3미술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쟁 시기를 제외한 한국 근현대 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 제주 4·3에 대한 가치 평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대한민국이 섬으로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사상을 통제하려드는 이념의 감옥을 벗어나기 어렵다. 더불어 진실을 왜곡하는 역사 전쟁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진실을 추구하며, 하나의 사건을 주제로, 해마다 새로운 미술작품을 생산해내는 4·3미술제. 4·3미술제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4·3미술제를 만나게 된 건 2015년이었다. 22회 4·3미술제 <얼음의 투명한 눈물> 부 큐레이터를 맡으면서다. 당시 담당한 일은 아카이브 전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직책이 ‘아키비스트’로 변경되어 있었다. 20여 년의 역사를 걸어 온 미술제였지만 관련한 내용을 구독할 수 있는 매체가 딱히 없었다. ‘WWW’에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랜 기간 미술제를 주최해 온 탐라미술인협회(이하 탐미협)를 기반으로 수소문을 통해 도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회부터 21회까지 목록을 작성하고 빈칸을 표시해가며 한 해 한 해 자료를 채워 넣는 재미가 마치 비어있는 냉장고를 채우는 것과 같았다. 그 냉장고에서 어떤 요리가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상당부분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1회, 2회, 5회, 7회는 지금까지 빈 칸이다. 이는 당시의 출품작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탐미협 및 개인에게 인수받은 도록, 팸플릿, 단행본, 디지털 파일 등을 검토하며 날짜, 시간, 장소, 참여 작가 등 기본적인 개요부터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정리했다. 다음 단계는 그 내용과 사진 자료를 연결 짓는 일이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당시 예술감독)의 감독에 따라 ‘제주도 민중미술의 태동’, ‘현장에서 시작되는 미학적 실천’, ‘4·3 Art Shaman’ 세 가지 소제목으로 내용을 분류했고 투박한 얼개로 가제본 책 한 권을 엮을 수 있었다.(전시용과 보관용 두 권이 제작되었다) 세 가지 내용 분류는 웹페이지 목차 구성에 적극 반영되었다.

22회 4·3미술제  아카이브 전시 일부
22회 4·3미술제 아카이브 전시 일부ⓒ탐라미술인협회

생각지 못하게 나에게로 왔던 직책 ‘4·3미술제 아키비스트’. 어떤 인연인걸까. 내가 동참했던 아카이브 전시는 2015년에 종료되었지만 아직 그 이름을 놓지 못하고 있다. 처음 방문했던 4·3유적지의 공기와 촉감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겨울 지나고 봄 오기 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4·3유적지(학살터)를 찾으러 다니기에 딱 좋다던 이야기들. 4·3 생존자들의 증언 따라 산 속을 헤매는 이들, 카메라며 통기타를 들쳐 맨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더랬다. 현장에서 쓰인 시와 노래들, 4·3을 생생하게 폭로한 사진 한 장과 유해 발굴 현장에서 그려진 그림들. 숙명처럼 4·3에 천착하는 예술가들의 존재가 가슴 깊은 곳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2016년 23회 4·3미술제 운영위원회로부터 SNS 홍보 역할을 제안 받았고, 이후 나는 웹페이지 제작 기획안을 제출했다. 아카이브 전시를 위해 수집하고 정리한 기초자료를 공유함으로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연구를 독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더불어 4·3미술제를 만들어 온 작가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웹페이지는 부재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홍보수단이기도 하다. 4·3미술제에 출품된 작품 도판을 작가의 동의를 구한 뒤 수록 중이다. 한 명의 작가가 출품한 시대별 작품들을 한 눈에 관람할 수 있어 흥미롭다. 참여 작가 페이지를 야심차게 기획했으나 연락망에 물리적 한계가 있어 현재 51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1회부터 23회까지 참여한 연인원 작가 수는 162명인데, 1994년 1회부터 1998년 5회까지 참여했던 작가들에게 연락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자료는 수집 되는대로 웹페이지에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더불어 올 해에는 (선택적) 작가 인터뷰를 통해 4·3미술제에 대한 구술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본 글에 한국현대사, 한국미술사, 제주미술사, 아카이브 이렇게 네 가지 태그를 달았다. 참여를 원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 둔다.

올 해도 어김없이 제주에서는 4.3미술제가 열린다. 24번째 4.3미술제 <회향, 공동체와 예술의 길>은 제주도립미술관과 탐미협의 공동주최로 개최된다. 4월 한 달 동안 제주시 원도심 일대와 제주도립미술관(월요일 휴관)에서 관람 가능하며 8일(토)와 14(금)에는 예술감독과 함께하는 원도심 전시투어가 진행된다. 15(토)부터는 세 차례에 걸친 좌담회가 아트스페이스C에서 열리며, 다가오는 7(금)에는 학술심포지엄 "1부 4·3미술 30년, 미술사적 위치와 의미. 2부 4·3 70주년을 준비하는 4·3미술제의 향방과 전망"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올 봄 제주 4.3과 이를 기억하기 위한 미술행위,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를 아낀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제주섬의 어여쁜 얼굴 뿐만 아니라 그 내면, 아픈 역사까지 사랑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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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미술제
제주 4·3미술제ⓒ제주 4·3미술제

박민희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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