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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난 3개월, 특히 좋았던 음악 안에 잠길 수 있는 자유를 위해
3호선 버터플라이
3호선 버터플라이ⓒ오름 엔터테인먼트

어느새 2017년의 1/3이 지나갔다. 왜 지나간 시간 앞에서는 항상 어느새 라는 표현을 쓰게 될까.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나갔다고 화들짝 놀라지 않는 날들이 찾아오기는 할까.

지나간 3개월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히겠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만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된데 이어,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되었고, 급기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는 범죄혐의자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한겨레신문, JTBC 등의 끈질긴 보도 이후 2016년 10월 29일부터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한지 다섯 달 만의 일이었다. 지난 5개월간 많은 이들의 관심은 광장과 정치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오던 일을 계속했다. 직장인은 출근했고, 자영업자는 가게를 열었으며, 학생들은 학교에 갔다. 그리고 음악인들은 준비했던 새 음반을 내놓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만 듣고 있을 수는 없는 시간이었어도 음악은 어디서든 음악의 일을 했다.

그 중 이성과 감각을 예리하게 두드린 새 음반들이 있다. 오직 이 뿐만은 아니겠지만 나 자신을 만나게 했던 음반들을 호명해본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Divided By Zero], 김준범의 [Human Emotions],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 디 앨런의 [Allen's Alien], 로다운30의 [B], 스카웨이커스의 [The Great Dictator],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 안녕의온도의 [사랑에 관한 각자의 기억], 예서의 [No City For Love], 와비사비룸의 [Vibe], 이부영의 [Songs of Michel Legrand], 웨스 에이치큐의 [Clayheart], 코드쿤스트의 [Muggles' Mansion], 쿠마파크의 [New Type], 태연의 [My Voice]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록, 일렉트로닉, 재즈, 팝, 힙합 음반이 고르게 포진했다. 어떤 음반은 나를 가라앉게 했고, 어떤 음반은 들뜨게 했으며, 어떤 음반은 돌아보며 그립게 했다. 어떤 음반은 아프게 했고, 어떤 음반은 평화롭게 만들었다. 음반에 담긴 이야기와 자극한 감각은 다 달랐지만 이 모든 음반들은 한결 같이 음악을 만든 뮤지션들의 노력과 재능과 감각에 감탄하게 했다. 듣는 이의 취향에 따라 더 끌리거나 덜 끌린 음반이 달랐다 해도 이 음반들 모두 2017년 1/4분기에만 듣고 말기에는 아쉬운 작품들이었다.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무심히 다시 들으며 그 때마다 음악이 만드는 파장과 음악의 파장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사실 한국에서는 맘 편히 음악에 몰입하기 어렵다. 사회는 불안하고, 사건은 계속된다. 눈 닫고 귀 막으면 될 일이지만 들리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는 힘들다. 들리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도 어렵다. 번번이 화가 나고 슬퍼지고 답답해진다.

태연 첫 정규 앨범 티저 메인 이미지
태연 첫 정규 앨범 티저 메인 이미지ⓒSM엔터테인먼트

탄핵 정국 중 감각을 예리하게 두드린 새 음반들

세상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힘들게 하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힘들게 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고 삶에 개입해서 직장에 대해, 결혼에 대해, 출산에 대해, 미래에 대해 잔소리하고 훈계한다. 모르는 사람은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고, 큰소리로 통화하고, 내리기 전에 타서 짜증나게 한다. 여성들을 훔쳐보고 몰래 찍고 직접적인 폭력을 가한다. 거리에서 차들은 클락션을 울려대고,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진다. 여전히 걸으며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이 있고, 자주 가던 단골 가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무신경과 이기주의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존중받지 못하고, 배려 받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해 예민해지거나 무신경해지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세계 최장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은 숨 돌릴 틈도 없게 조이고 또 조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들이 불문율처럼 정해져 있는 나라 아닌가. 나이와 할 일이 법칙처럼 정해져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듯 살아야 하는 나라에서는 사회의 속도로부터 탈주하기 쉽지 않다. 한 번 밀려나면 낭떠러지다. 안전망도 없고 보호도 없다. 자신은 오직 자신이 지켜야 한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취향과 관심이 발현될 수 있는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돈이 될 수 있는 일,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만 좇아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일을 선택하면 쓸데없는 일,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다못해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자신의 교양과 안목과 감각을 자랑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꾸준히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고 돋보이게 관리하는 일도 피곤하기만 하다.

확인해야 할 정보와 컨텐츠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TV 채널은 하루종일 숱한 프로그램을 쏟아낸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역시 하루만 확인하지 않아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어차피 하루에 허용된 시간은 24시간 뿐인데, 이러다보니 음악을 듣는 일은 한참 뒤로 밀린다. 요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온전히 음악만 들어본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음악에만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고 음악 안에 완전히 잠긴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음악을 틀어둔 채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소셜미디어를 확인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만큼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우리의 마음도 불안하다.

그래서 이제 음악을 듣는 일은 단지 음악을 듣는 일이 아니라 삶을 비우고 기다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야 하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세상에서 음악을 듣는 일마저 음악으로 나를 채우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음악을 위해 자신을 비워야 하고 자신을 덜어내야 한다. 음악을 위해 가벼워져야 한다. 틈과 여백이 있어야 음악이 기웃거릴 수 있고, 음악이 두리번거릴 수 있다. 우리 역시 틈과 여백이 있어야 음악에게 가서 기웃거리고 두리번거리다가 뛰고 돌고 멈추고 주저앉을 수 있다. 해가 뜨고 지고 밤이 되는 풍경,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풍경을 온전히 지켜볼 때 시간과 공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듯 음악 역시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다가, 그저 무심해지기도 해야 음악을 온전히 또 완전히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3호선버터플라이의 [Divided By Zero], 김준범의 [Human Emotions],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 디 앨런의 [Allen's Alien], 로다운30의 [B], 스카웨이커스의 [The Great Dictator],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 안녕의온도의 [사랑에 관한 각자의 기억], 예서의 [No City For Love], 와비사비룸의 [Vibe], 이부영의 [Songs of Michel Legrand], 웨스 에이치큐의 [Clayheart], 코드쿤스트의 [Muggles' Mansion], 쿠마파크의 [New Type], 태연의 [My Voice]을 듣는 일이 또 다른 숙제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쓸데없어도 좋은 시간이기를. 아니 쓸 데 없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기를.

도재명
도재명ⓒ오름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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