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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의한 권력의 예술 검열을 청산하라
정세훈 시인, 민예총 권역상임이사장
정세훈 시인, 민예총 권역상임이사장ⓒ민중의소리

인류는 예술을 먹고 발전해 왔다. 음식이 인간에게 육체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어 왔듯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육체만 있고 영혼이 없는 인간은 짐승과 다름없다. 음식이 육신의 양식이라면 예술은 영혼의 양식이다. 음식은 인류를 지탱하는 역할에 머물렀지만, 예술은 인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오는 역할을 했다.

예술은 인간이 탐식으로 인해 짐승으로 전락할 때마다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하기에 오직 탐식에만 열중하고 욕심을 내며 한낱 짐승이 되고 싶은 인간들은 예술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박근혜 권력은 탐식에만 과욕을 부렸다. 영혼 없는 짐승이 되어 탐식에만 열중했다. 예술이 짐승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라고 무진 애를 쓰며 손짓을 했지만, 오히려 짐승으로 가는 길을 막는 저항이라며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검열하고 억압하고 탄압했다.

불의한 권력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사회 구성원과 공유해야 할 것들을 독점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세상 모든 것이 권력의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예술의 본능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보다 더 나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권력은 예술을 휘하에 놓고 통치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권력에 굴복하여 권력의 통치 수단이 된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과거 일제를 찬양한 예술들과 군사 독재 권력을 찬양한 예술들은 예술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건국이후 보수 세력 친일권력이 독점해 왔다. 잠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권력을 갖기도 했지만 친일권력이 곳곳에 심어놓은 친일세력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으로 권력을 다시 잡은 친일세력은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오며 그 권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불의한 통치수단인 독재를 선택했다.

박근혜 독재 권력이 최우선으로 한 것은 ‘문화융성’이란 말로 흉계를 꾸며 민중의 입을 막고 귀를 막는 것이었다. 아울러 최선봉에 서서 민중의 입과 귀가 되어 온 예술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미 통치수단이 된 일부 예술들을 철저하게 권력유지 수단으로 삼는 반면에 통치수단이 되길 거부하는 또 다른 예술들을 철저하게 억압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박근혜 독재 권력이 예술에게 저지른 그 검열과 억압과 탄압은 집요했으며 교묘했으며 악랄했으며 졸렬했으며 치사하고 염치없고 뻔뻔하고 비굴하기까지 했다. 특검 수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정책적이었으며 제도적이었으며 조직적으로 이행되었다. 그 결과 건국 이후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그리고 그 대통령과 사적친분이 있는 민간인이 공모해 저지른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낳았다. 아울러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 블랙리스트 사태를 저질렀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특정 예술가들이 정부로부터 창작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여러 장르의 다양한 담론을 담아낸 예술 작품을 향유해야 할 민중의 권리를 권력이 차단하고 방해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예술인이 아니라 예술향유 권을 박탈당한 민중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예술 활동은 늘 기존의 정치권력보다 앞서는 이야기를 해왔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권력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것이 예술의 속성이다. 박근혜 권력이 권력의 입맛대로 민중이 즐겨야 할 예술 작품을 취사선택했다는 것은 과거 봉건왕조시대에서조차 없던 일로 민중을 '세뇌'하려한 무모한 짓이었다. 어떠한 권력도 민중의 문화향유 권을 뺏으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재발 방지를 위한 ‘예술가권익위원회’를 설립, 예술 지원 차별 시 신고접수·형사처벌 요청 업무 등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헌법 제22조의 ‘예술가의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가칭)’을 제정, 예술 지원의 차별 금지 및 예술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금지 원칙을 어길 시 신고 접수 및 시정조치, 형사처벌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국회나 사법부로부터 위원들을 추천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아울러 블랙리스트 사태로 폐지된 우수문예지 발간, 공연장 대관료 지원, 특성화 공연장 육성 등 문학, 연극 분야에서 3개 사업을 복원하고,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 지역문학관 활성과 출판 등 5개 신규 사업을 추진할 긴급자금 85억 원을 편성했음을 밝혔다.

또한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심의 전 과정에서 투명성을 제도화해 부당한 외부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위원장의 선임절차를 개선, 조직구조를 개편할 계획이다. 해당 공무원이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도록 직무수행에서의 차별금지 원칙과 상급자의 위법지시 거부에 따른 인사 상 보호 규정을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에 추가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선방안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 현 사태의 치유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외부 전문가와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전면적인 진상조사부터 해야 한다. 그 결과에 근거하여 본질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본질적인 개선방안의 핵심중 하나가 지원제도 일 것이다. 불의한 권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의 일환으로 지원심의에 있어 예술지원 사업 지원자들이 직접 토론하고 심의하는 지원제도의 도입이 요구된다.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개선방안의 대부분은 이미 진행되었어야 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정상적인 상식들이 그동안 적용되지 못했던 원인을 찾는 것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무엇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상조사와 정상화, 개선방안 수립과 혁신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고위직과 기관 위원장 등이 추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도 엄연히 불의한 박근혜 권력의 부역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책을 내 놓을 자격이 없는 인적청산의 대상자들이다.

부역자로 가담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조윤선 전 장관, 김종덕 전 장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많은 또 다른 부역자들이 조직의 요소요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과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 등이 그 대표적인 부역자다. 이들은 즉각 사퇴 사직해야 한다.

이러한 조직의 인적청산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향후 대책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해야만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검열 받고 억압받고 탄압받는 예술의 불행이 반복되지 않는다.

정세훈 시인:1955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옴.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등과 포엠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등이 있음. borihanal@hanmail.net

정세훈 민예총 권역상임이사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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