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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학로 게릴라극장 폐관이 ‘블랙리스트’를 향해 던진 메시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이 지난 16일 폐관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2004년 동숭동에 짓고, 2006년 대학로가 있는 혜화동으로 옮겨 다시 문을 연지 11년만이다. 이곳은 대학로 극장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외각에 터를 잡았지만 대학로의 수많은 극단과 작가·연출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며 ‘한국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불렸다. 연희단거리패 뿐 아니라 극단 코끼리만보 김동현, 극단 골목길 박근형,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김재엽, 극단 걸판의 오세혁, 극단 해적의 황선택 등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돈이 없는 극단에게는 대관료 대신 수익의 절반만 받고 극장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동안 무대에 올려 진 작품만 해도 216편에 이른다.

이렇게 연극인들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던 게릴라극장은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극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 정부의 각종 지원금이 지난 3년 동안 끊기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됐다. 지원이 끊기게 된 이유는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예술감독이 박근혜 정권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지원 배제로 인한 적자로 극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연희단거리패는 게릴라극장을 매물로 내놓고 지난해 10월 종로 명륜3가에 ‘30스튜디오’를 새로 개관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계는 정부의 지원 배제가 게릴라극장의 문을 닫게 했다며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박근혜 정권 인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국가 보조금을 특정 단체나 개인에게 지원하는 걸 중단하거나 줄였다는 것”이라며 “안 주면 (예술의 자유) 침해냐, 못 받으면 예술 활동을 못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상품 혹은 기업이 사라지는 일은 흔하다. 때문에 “안 주면 (예술의 자유) 침해냐, 못 받으면 예술 활동을 못 하느냐”는 김 전 실장 변호인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예술가들도 지원금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6일 열린 게릴라극장 폐관식에서 이윤택 예술감독도 “갈수록 연극하기가 힘들어진다.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연극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인데 지원금을 안 받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먹고 자고 연습하고 커피와 책을 파는 30스튜디오를 구상했다”며 관련한 고민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은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의료나 교육과 같은 공공재다. 과거 예술은 귀족과 부유층 등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을 위한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각국은 국가적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리고 대중을 위한 공공재이기 때문에 ‘지원은 하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세워지게 된 것이다. 게릴라극장의 폐관은 우리 모두의 공공재인 예술과 이를 위한 국가의 지원이 왜 필요한 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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