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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국에 속고, 중국에 무시당한 한국 외교

역내에서 영향력을 아예 상실해버린 한국외교의 현실이 드러난 사건이 최근 연이어지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출동 소동이 그 하나고, 시진핑 중국 주석의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 발언 논란이 또 하나다. 두 사건의 이면에는 미중 양 강대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북핵 위협에 맞서 한반도 해역으로 보냈다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실제로는 한반도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한미동맹의 현실을 보여줬다. 한국과 미국은 그 동안 한미동맹이 ‘철통’같은 관계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중요한 관련 정보를 우리에게 숨겨왔으며, 심지어는 거짓말까지 했다. 백악관은 이를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그것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라고까지 둘러댔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발언 논란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자신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 습관을 감안하면 실제 시 주석이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또 양국 지도자가 한 대화를 언론에 흘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은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에 앞서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워 온 중국 지도부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계속 존재해왔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우리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변 강대국이다. 북핵 등 안보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미국,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우리를 속이고, 무시하는 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대처는 놀라울 정도로 안이했다. 칼빈슨호 사건에 대해서 우리 국방부는 “한미간의 정보 공유는 긴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하나마나한 말로 무마하려 한다.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는 게 외교부의 입장이다. 그것도 실무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일뿐 장관급 인사들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이 시작된 이래 우리가 이렇게 외교적으로 곤궁한 처지가 된 건 지금이 처음이다. 그러니 미국에 속고, 중국에 무시당하는 건 단순히 우리가 영토도 작고 인구도 많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오직 강대국만 쳐다보는 사대주의적 외교만 거듭하다보니 이젠 아예 존재감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당장 북핵 문제가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다. 관계가 없으니 영향을 끼칠 방법도 없어졌다. 남은 것은 미국과 중국을 찾아다니면서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무 지렛대로 없이 오직 남의 손에 기대는 나라를 존중해줄 국제사회는 없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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