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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의 전사, 캘리그라퍼 이상현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그 일을 몹시 사랑한다면 좋은 것이고, 가치 있는 일이 밥벌이까지 된다면 더욱 행복하겠죠.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없음

전통서예를 넘어 ‘캘리그라피’의 세계를 처음으로 연 ‘1세대 1호작가’. 영화 <타짜>,<복수는 나의 것>,<아라한 장풍 대작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을 작업한 최고의 꾼이다. 이리저리 물으니 전업 작가들은 이상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상현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가치관도 많이 배웠다 한다. “글은 예술인데, 인품은 더 예술이야.” 이상현 작가를 캘리그라퍼 ‘대표 꾼’으로 추천하길 주저하지 않던 작가의 평이었다. ‘이상현 캘리그라피 연구소’에서 인터뷰했다. 연구소는 학생들이 언제 와도 글을 쓸 수 있도록 죄다 검은 천으로 감싼 작업대로 꽉 차 있었다. 묵향(墨香)이 배어있다.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품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품ⓒ이상현

입문기(入門記):“먹은 검은 색이 아니다.”

엄마 속을 무척이나 썩였던 악동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건반 위에서 춤을 춰 피아노 줄을 끊었고 주산 학원에 보내자 주판을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서 주판을 박살 냈다. 알알이 부서진 주판알을 밟고 한 여자아이가 넘어져 크게 다쳤다. 사고 칠 때마다 학원 원장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괴발개발 글을 써 갈기던 악동을 이번엔 서예학원에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붓을 들고 한지 대신 흰 벽에 죽죽 검은 먹물을 입혔다. 아이는 그저 이 학원에서도 쫓겨나길 바랐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은 달랐다.

“늘 흰 벽이라 식상했는데 새로운 걸? 네가 이 모든 벽을 까맣게 입혀줄래?”

선생님이라는 어른에게 들은 첫 칭찬이었다. 다음 날부터 매일 죽어라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작은 붓으로 작업했기에 벽의 흰색은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붓질하면 깔끔한 검정 벽으로 바뀔 줄 알았지만, 벽은 거무죽죽 흉측해졌다. 아이의 작업을 묵묵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말했다.

“상현아, 먹은 검은 색이 아니야. 오늘 간 먹색이 다르고 내일 간 먹색이 달라. 힘을 어떻게 주냐에 따라 색도 달라져. 지금 이 벽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그래,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는 건 아냐. 그리고 자신 한 일에는 그 결과가 있고 결과는 책임질 수 있어야 해,”

다목적 훈육이었다. 먹을 갈고 화선지에 선을 긋는 지루한 작업을 못 견뎌 할 악동에게 동기를 부여해 먹색과 붓의 감각을 익히게 하셨다. 매일 고르게 먹을 갈고 붓끝에 집중하니 앉아있는 힘이 붙어 성적도 자연스레 올랐다.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자 깨달았다. ‘무언가에 온 힘을 쏟아부으면 1등도 할 수 있다.’ 매일 2시간씩 먹을 갈고 3시간 넘게 글을 썼는데 이때가 초등학교 4학년, 서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한때 경험으로 스칠 뻔했던 서예의 매력을 심어준 사람은 덕이 깊은 은사님이었다.

금영재30년 넘게 붓을 잡아오셨는데, 선생님을 캘리그라퍼라고 불러야 합니까? 서예가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상현우리 서예가 천대받던 시절엔 캘리그라피를 알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전 늘 캘리그라퍼로 소개하곤 했죠. 지금은 서예학원에서도 아이들에게 캘리 수업을 병행합니다. 캘리그라피 작업은 우리글에 새로운 감성을 입히는 창작활동인데 반해 전통서예는 비교적 고정화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은 서예입니다. 필법(筆法)의 기초가 모두 서예에 있습니다. 지금의 캘리그라피가 확고한 문화로 자리 잡으면 저는 서예에 더 집중할 계획입니다. 유행과 문화는 다릅니다. 지금은 캘리그라피가 주목받고 있지만, 한시적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금영재국내 1호 캘리그라퍼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서예나 붓글씨, 손글씨라는 용어도 있는데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이상현2000년도, 대학을 나와 선배들과 ‘필묵’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었어요. 동양서예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죠. 그땐 서예, 붓글씨라는 이름으로 도전했어요. 시장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기업은 당시 유행을 타던 ‘타이포그래피 (활자 디자인)’에 대해선 알아줬지만 ‘서예’라고 하면 문전박대했죠. 아시겠지만,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모든 거리의 간판을 폰트가 점령했어요. 그 이전 사람이 직접 썼던 소박한 간판들이 사라졌을 때에요. 기업 홍보담당자가 그래요. “차라리 고려인삼이나 신토불이, 농협 같은 곳으로 가보시죠?” 우리 기업문화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건 거절당하면서 알게 됐어요. 우선 이름을 바꿨죠. 서예를 영어로 번역하면 ‘캘리그라피 calligraphy’입니다. 물론 정확한 개념은 다르죠, 동양에선 붓글씨를 예술로 대접했지만, 서양에선 펜글씨를 기술로 취급했거든요. 이름을 ‘캘리그라피’로 바꾸니 사람들이 궁금해했습니다. 결국, 농심이 물꼬를 터줬습니다. ‘농심 춘면’이 첫 출시작이고, 그다음에 소설가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가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독특한 북 커버 디자인이 알려졌어요. 그리고 당시 아이돌이었던 ‘태사자’의 음반 자켓을 하면서 시장이 조금씩 열렸어요.

캘리그라퍼 이상현
캘리그라퍼 이상현ⓒ이상현

금영재캘리그라피를 뭐라고 정의해야 합니까? 가령 많이 알려진 신영복 선생님의 서체도 캘리그라피인가요?
이상현글씨에 표정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서예와는 분명 다릅니다. 서예에선 운도(運度), 필법(筆法)등이 고정화되어 있다면 캘리그라피는 글에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와 감성을 구현하는 디자인 작업입니다. 쌀가게는 쌀가게답게, 충남상회는 가게 아줌마의 감성을 담고, 한우집 간판은 한우집다워야 합니다. 타이포그라피나 서예로는 표현이 제한적이죠. 제가 캘리그라퍼로 대중적으로 알려지자 제일 먼저 달려와 그만두라며 말린 분이 은사님이셨습니다. 서예 쪽에선 전통적 필법에서 벗어나면 이단아 취급을 했으니까요. 서예가에서 나름 적통 취급을 받던 제가 제일 먼저 도마에 올랐습니다. 세미나나 좌담회를 열어 어르신들 설득시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은사님들이 캘리그라피 특강을 요청하곤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도 서예가에선 서예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름의 글체가 붓을 만나 이루어진 독특한 서체죠. 하지만 분명한 캘리그라피죠. 선생님의 글과 그림, 문구가 어울려 하나의 미적세계를 구축합니다. 그런데, 만일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말이 치열하고 깊지 않았다면 대중들이 신영복 선생님 서체를 좋아했을까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글씨는 그 사람을 닮는다는 뜻인데 나이 먹어갈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문구입니다.

금영재이 길을 선택하면서 밥벌이 걱정은 안했습니까? 부모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이상현우선 서예가 너무 좋았습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미대를 알아봤는데 서예과를 둔 대학이 없더라고요. 부모님은 옳다구나 싶어 서예는 그냥 취미로만 하라고 하셨죠. 이공대로 진학하려고 공부하던 어느 날 뒤늦게 원광대에 서예과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 단번에 결심했고 부모님은 지방대 서예과라니 펄쩍 뛰셨어요. 원광대 교수님을 직접 찾아갔어요. 작가님은 이대로는 안 되고 더 큰 스승님께 배우라며 유천(攸川) 이동익 선생님께 추천서를 써주셨죠. 유천 선생님은 지금 전통동양서예의 맥을 잇는 원로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인사드렸지만 고3 여름방학이 지나도록 저를 부르지 않으셨어요. 발만 동동 구르다 선생님을 뵙고 말씀드렸죠. 선생님은 저를 한참 보다 말씀하셨어요.

“여긴, 너 대학 보내는 곳이 아니다. 대학에 가고 싶거든 다른 곳을 알아보고, 진정 서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배우겠다면 가르치마. 서예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서예를 아끼는 사람이다. 너 어쩔 셈이냐?”

멍했죠. 스승님은 서도(書道)의 근원을 말씀하셨고 전 대학 못가도 좋으니 배우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원광대에 합격하고 더 수련했습니다. 하지만 졸업하니 당장 밥벌이가 걱정이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돈을 쫓지 말고 정성스레 이 길을 가면 돈이 따라올 수 있다”고만 하셨는데…, 사실 젊어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답답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회사를 차려 캘리그라피 디자인회사 경영자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클 수 있었을까? 동료들과 함께 했던 회사 ‘필묵’을 나와서 개인전을 하고, 창작활동에 전념했을 때 지인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했어요. 개인전 한 번에 들이는 돈도 만만치 않았고, 또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개인작가(프리랜서)로 어떻게 먹고 사냐는 거죠. 제가 아마 우리나라 프리랜서 작가 1호일 겁니다. 요즘은 관이나 기업, 예술계에서도 순수작가의 손을 거친 작품을 더 선호합니다. 큰 패키지 작업을 위한 입찰에서도 오히려 큰 디자인회사가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전업 작가에겐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캘리그라피 작가를 하겠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치열한 창작활동을 거치지 않은 작업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이내 시장이 외면합니다.

금영재두 번째 만난 스승님도 대단한 분이셨군요. 스승님 복이 있습니다.
이상현그렇죠. 지금도 저는 좋은 서예가가 되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을 제대하고 다시 스승님을 뵈었을 때, 스승님은 거국적인 운동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당시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가 6종이었는데 그중 4종이 ‘서예’를 빼겠다고 했죠.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에겐 서예시간이 곤혹스러웠겠죠. 은사님이 앞장서서 100만 서명운동을 주도하셨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동양서예가 아닌 서양미술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오히려 서예를 독립적인 과목으로 채택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때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서예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거리에서 학 학부모가 던진 말을 잊지 못해요.

“서예 한다고 애들 옷에 먹물 묻으면 지워지지도 않는데, 이걸 왜 하겠다는 거예요?”

서예라고 하면 고루한 서당의 훈장선생님을 연상했던 게 당시 문화였습니다. 순간 분격심이 들기도 했지만 결심을 했어요. ‘내가 좋아 전공한다고 서예가 대중화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서예의 좋은 점을 직접 체험하게 해야 한다.’ 서예를 우리 현대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하겠다고 결심한 때이기도 합니다. 스승님은 임정 초대국무령을 지내신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 문중의 종손이신데, 애국심과 우리 것에 대한 사명감이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초등학교 은사님이 나에게 ‘인성’을 가르치셨다면 지금의 은사님은 ‘서예문화’와 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캘리그라퍼 이상현
캘리그라퍼 이상현ⓒ이상현

금영재수련을 오래하면 자신만의 새로운 서체가 생기지 않습니까? 동양 서예에 큰 충격을 준 김정희의 추사체(秋史體)나 김현봉 선생의 국정체(菊井體)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캘리그라퍼에겐 팔색조의 필체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상현맞아요. 작가들에겐 자신만의 18번이 있고 서예가들은 좋은 작품을 수련하다 일정 수준이 되면 자신만의 서체를 가지게 됩니다. 이를 바꾸기란 쉽지 않죠. 저도 가장 어려운 과정이 바로 표정을 바꿔 써야하는 창작과정입니다. 그래서 전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새로운 느낌의 서체가 나올 때까지 나를 계속 몰아 부칩니다. 그 느낌을 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자료를 조사하고 호흡을 바꾸죠. 칼바람 겨울 한기를 느끼며 봄날의 여리 여리한 연두 빛 새잎과 집 마당에 스며든 햇살을 담아 쓸 순 없으니까요. 나만의 특정 서체를 고수하고 작품세계가 고정된다면 아마 전 캘리그라퍼가 아닌, 서예가겠지요.

금영재영화 ‘타짜’ 포스터를 위해 도박장에서 지냈다던데, 그런 체험이 실제 창작과정에 도움이 됩니까? 작품의 영감을 어떻게 얻습니까?
이상현이건 저의 방법인데, 한 작품을 위해 전 모든 작업환경을 그 작품에 맞춰 바꿉니다. 새로운 영감을 얻을 대상을 찾죠. 이별을 노래하는 슬픈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대한독립 만세’를 쓸 순 없습니다. 도박판의 거친 숨소리와 뿌연 담배연기, 한 판에 모든 것이 걸린 팽팽한 긴장감 등을 통해 제 호흡을 바꾸고 필법도 바꿉니다. 대본은 모두 꼼꼼히 보고 배우들의 리딩작업이나 촬영장에 가서 느낌을 담으려 합니다. 영화 포스터라 그저 사람의 눈길만 끌면 되는 게 아니라 영화를 다 보고난 관객이 포스터를 보고 ‘참 어울린다.’고 느껴야 제대로 된 작품입니다.

금영재캘리그라피 인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수련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고 처음 시작할 때 본인의 풍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를 수련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이상현아까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했는데, 수련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글을 보고 제자의 성품이나 기질도 읽습니다. 성격이 소심하고 여린 사람에겐 활달하고 호방한 풍을 가르치고, 성격이 조급하고 활달한 이에겐 여린 선을 만드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캘리그라퍼는 연출가, 연기자입니다. 웃다 웃을 수 있는 감성적 전환이 있어야 서풍의 전환이 있습니다. 취미가 아닌, 정말 좋은 작가로 성장하려면 좋은 선생님께 배워야합니다.

피하라고 말하는 방법은, 캘리그라퍼 작품 책을 사서 베껴 쓰는 것입니다. 붓의 운법과 조형원리와 같은 기본을 배우지 않고 그저 베끼다 보면 모방한 작가처럼 되지도 않을 뿐 더러, 다른 문구가 주어졌을 때 이도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작품이 나옵니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을 그저 예쁘다고 베끼기보다는 전통서예 어른들의 작품을 보고 연습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좋은 글엔 필법과 필력 같은 탄탄한 기본기가 녹아 있거든요.

기본기가 없으면 10년이 지나도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붓의 모양에 따른 필법의 원리와 조형에 대한 기본기를 배워야 합니다. 선생님 스스로 직접 반복적으로 쓰는 것을 보여주며 원리적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 좋은 스승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혼자 집에서 쓰지 말고 한 달 한 번이라도 스승님께 직접 배워야 합니다.

금영재캘리그라피 수련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흘림에서 ‘실획‧ 허획’을 쓰는 법인데요. 일부 강사님은 아예 허획을 쓰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이상현고정된 법칙은 없습니다. 실획, 허획 모두 다 필요하면 써야줘. 특히 허획은 자연스러운 리듬감이나 율동감을 표현할 때 요긴합니다. 그런데 운필법과 자모에 대한 이해 없이 허획을 남발하면 가독성을 해치게 되니까요.

금영재요즘은 붓글씨 폰트도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국향체, 만월체, CJ 패키지 폰트 등을 개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폰트가 사람이 직접 쓰는 캘리그라피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느낌이 다르던데요?
이상현아무래도 제한적일 수 있죠. 하지만 캘리그라피가 현대의 디자인문화로 확고히 정착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가령 작가에게 줄 비용이 없지만 우리 붓글씨 맛을 좋아하면 디지털 폰트가 대단히 유용하죠. 문서작업은 물론이구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디지털 폰트로 그 느낌을 의뢰인에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캘리그라피의 본연은 창작입니다. 거친 느낌과 운율을 보며 느끼는 맛이 따로 있죠.

캘리그라퍼 이상현
캘리그라퍼 이상현ⓒ이상현

금영재인사동에서 서예가가 커다란 붓을 들고 글을 쓰는 장면을 본 적 있습니다. 작가님의 퍼포먼스 공연모습도 사진으로 보았는데, 이런 공연의 목적이 궁금합니다.
이상현큰 여백에 대붓으로 글을 쓰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공간에 대한 구상을 미리 해 현장에선 직관적으로 해야 하는데, 제가 하는 작업은 ‘휘호’와는 좀 다릅니다. 대중에게 진한 묵향을 맡게 하면서 선율에 맞춰 붓의 운행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죠. 우리나라 대북공연과 함께 한 적도 있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적도 있습니다. 복장도 그때마다 달라지죠. 사람들은 단순히 글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붓에 먹을 입히고 표현하는 그 모든 행위 자체를 보게 됩니다. 이 역시 캘리그라피의 대중화, 묵향을 널리 퍼뜨리겠다는 목적이죠. 서예학원에서 글을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화죠.

금영재작가의 길을 꿈꾸는 많은 지망생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이상현우리가 쓰는 글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줄 수도, 상처도 줄 수 있습니다. 말도 뱉으면 주워 담지 못하지만 글은 더 그렇죠. 우리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 작품에는 높은 책임성을 가지고 썼으면 합니다. 요즘은 드라마 타이틀 작업이 각광받는데, 하지만 이를 목적으로 하면 그건 타이틀 작가지 캘리그라퍼가 아닙니다. 캘리그라피가 지금 바람을 타곤 있지만 아직 확고한 문화는 아닙니다. 캘리그라피를 우리 생활 저변에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이상현 작품
이상현 작품ⓒ이상현

이상현 작가는 전통서예를 대중예술로 승화시켜 캘리그라피라는 대중예술장르를 시작한 개척자입니다. 한글과 아리랑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초‧중‧고 미술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ㅡ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
ㅡ소울샵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ㅡGoogle에서 선정한 한글 아티스트로 2015년 '구글' 한글로고 발표
ㅡ위스키 발랜타인 스카파에디션 콜라보레이션 한국작가 선발
ㅡ서울스퀘어 미디어파사드 초대전시
ㅡ뉴욕타임스퀘어 아리랑 퍼포먼스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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