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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금 청춘들에게 보내는 가슴 찡한 편지
혁오의 새 음반 ‘23’ 커버 이미지
혁오의 새 음반 ‘23’ 커버 이미지ⓒ두루두루amc

사실 지나간 청춘의 날들이 어떠했는지 온전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가 대학에 다니고,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순간들은 분명 어설프고 서툴렀을 것이다. 자신이 어설프고 서투르다는 것을 알고도 어설프고 서툴렀을 것이며, 자신이 어설프고 서투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만큼 어설프고 서툴렀을 것이다. 몰라서 답답하고 몰라서 서글프며 몰라서 용감하고 몰라서 행복했을 것이다. 몰라서 순수하고 몰라서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나이. 그래서 뭐든 해도 되는 나이. 하지만 아직 사회에서 온전히 자리 잡지 못했고, 더 배워야만 하는 나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던 나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함에도 자기 자신조차 다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 어찌하지 못해 허둥댔던 날들을 모두 기억해내기는 어렵다. 다만 쓰라렸던 순간, 외로웠던 순간, 마냥 즐거웠던 순간은 어느새 아물어버린 생채기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다.

다만 어떤 노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위로하면서 청춘의 노래가 된다. 산울림의 <청춘>이라거나,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이장혁의 <스무살> 같은 노래만이 아닐 것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네”라고 노래한 이상은의 <언젠가는>처럼 모든 세대는 초라하고 부끄럽고 안타까워서 소중했던 청춘을 위무하는 노래의 힘으로 그 시간을 겨우 통과한다.

하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가당치 않은 위로를 들어야 하는 지금의 청춘은 오죽할까.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세상에서는 청춘의 패기조차 부질없다. 낙관보다는 좌절이, 시도보다는 타협이 더 익숙해진 세대들에게 노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마다 자신의 나이를 타이틀로 한 음반을 만들겠다 했던 혁오의 새 음반 [23]은 아직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남성 뮤지션의 자기 고백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뮤지션의 자기 고백

사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자기 고백이다. 그 고백의 진실성이 예술성의 척도가 되기도 하고, 진정성의 농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전 음반도 그랬지만 혁오의 새 음반은 뮤지션이 고백하고 기록할 수 있는 수많은 서사 가운데 바로 자신의 청춘을 기록한,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청춘송가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감상할 것을 요청한다. 음반에 수록된 곡은 총 12곡. 혁오는 자신이 직접 쓴 노래들에서 일관되게 청춘의 시간이 마주치는 격동과 그 흔적을 노래하고 있다. 음반의 첫 곡부터 ‘Burning Youth’, 불타는 청춘이다. 다른 곡들에서도 혁오는 청춘을 살아가는 자아의 설레고, 떨리고, 두렵고, 좌절하고, 막막한 순간들을 다채롭게 기록한다. ‘Tokyo Inn’에서는 ‘그냥 숨을래’라고 자신없는 마음을 드러내지만 ‘난 원래 숨어서 몰래 싸웠다’는 고백으로 두려움과 자존심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가죽자켓’에서 ‘흉진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도망치다 담을 넘어가니/날선 절벽이 끝도 없이 나를 안아주네“ 라거나 ”하필 걸터앉은 곳은 가시덤불이야“라고 얘기할 때 확인되는 것은 절망과 간절한 위로의 요청이다. 이번 음반의 수록곡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에 도달한 ’Tomboy’에서는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라면서 청춘의 절망을 시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이 음반 각각의 수록곡들에서 청춘이 어떻게 담겨있는지를 일일이 기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혁오는 청춘을 스쳐가는 수많은 감정들을 아우르고 있다. 감상과 치기 어린 절망과 무작정 들뜬 마음까지를 드러내면서 혁오의 청춘 서사는 핍진하게 완성되었다. 그 서사가 늘 방황으로 점철되지는 않았다. ‘상어가 다시 달려오면/절대 우리 손을 놓을 일은 없어야’ 한다고 용기를 다짐하는 마지막 곡에서 혁오는 그럼에도 더 의연해지고 더 성장한 모습으로 오늘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음반은 이렇게 일관된 청춘 서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만을 이야기하고 끝내도 좋을 음반이 아니다. 혁오는 혁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펑키하고 가볍게 끈적이면서 매끄러운 음악들을 넘나들었던 자신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록적이면서도 야심만만하고 완성도 높은 곡들로 이번 음반을 채웠다. 록과 포스트펑크의 자장 안에서 록 본연의 생동감을 활기차게 드러내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곡을 이끌면서, 과감한 변화로 음악적 서사를 구현해내는 능력은 음반 전체가 좋은 곡들로 빼곡하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로큰롤의 경쾌함이 금세 휘발되는 청춘의 열정을 대신하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사실을 혁오는 ‘Burning Youth’와 ‘가죽자켓’, ‘2002WorldCup’ 등의 곡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혁오는 단지 장르의 방법론만으로 밀어붙이는 장르 뮤지션이 아니다. ‘Tokyo Inn’, ‘Tomboy’, ‘Jesus Lived in a motel room’, ‘Wanli万里’, ‘Die Alone’, ‘지정석’, ‘Paul’ 등의 곡을 끌고 가는 동력은 무엇보다 좋은 멜로디이다. 혁오의 가성으로 제시되는 방식이건, 노래의 후렴으로 제시되는 방식이건 이 곡들의 멜로디는 직관적으로 단숨에 사로잡힐 만큼 강력하다. 가령 타이틀곡인 ‘Tomboy’는 갑자기 속도를 늦춘 슬로우 템포의 곡임에도 테마 멜로디의 힘으로 자신의 청춘 서사를 아찔하고 울컥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음악이 정치보다 경제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순간

게다가 혁오는 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들을 A-A’-B-A 형식으로 이어지는 대중음악의 곡 구조 안에서 평이하게 반복하지 않는다. ‘Tokyo Inn’의 경우 곡의 주 리듬과 리프로 테마를 제시한 후 밴드의 숨을 죽이고 혁오의 보컬을 부각시켜 노래하다가 한 소절을 다 노래한 후에야 비트를 숨가쁘게 조이며 간절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는 후렴구 같은 테마를 떼창으로 재현해 곡의 감성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후 같은 구조를 반복하며 속도감을 이어간다. ‘Tomboy’에서도 혁오는 곡의 말미에서 한 번의 변화를 감행해 음악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Jesus Lived in a motel room’를 비롯한 수록곡들은 한 곡이 곡 안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드라마를 최대한 극적으로 연출해내려는 의지로 연주와 비트를 조율함으로써 음악이 선사할 수 있는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퍼붓는다. 이러한 곡들은 국경을 뛰어넘는 대중음악의 보편성과 트렌드에도 닿아있음은 물론이다.

혁오(HYUKOH)
혁오(HYUKOH)ⓒ두루두루amc

‘Wanli万里’, ‘Die Alone’ 뿐만이 아닌 다수의 수록곡들은 혁오가 단순히 뮤지션 혁오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이제는 밴드의 사운드로 한 몸이 되어 능수능란해져 있음을 확인하게 하게 한다. 매력적인 멜로디를 감성적으로 흥얼거려 마음을 충만하게 하면서 감각을 뒤흔드는 혁오는 장르의 방법론과 사운드 연출의 효과를 탁월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청춘의 고백을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귀결시켰다. 특히 ‘Jesus Lived in a motel room’에서부터 ‘지정석’까지 이어지는 음반의 중후반부 4곡은 듣는 이를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정의 파고로 이끌고 가서 내동댕이 쳐버린다. 속수무책이 되게 만들어버리는 곡들 앞에서는 누구인들 아득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새롭고 전복적인 청춘 담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해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공들여 만든 구조들로 안팎을 채운 혁오의 새 음반은 혁오뿐만 아닌 다른 청춘들도 자신의 꿈으로 스스로를 이끌고 갈 수 있으며, 지금의 시간이 누구도 다르지 않으니 함께 이야기 하고 위로하며 견디고 버텨보자고 이야기 해주는 듯하다. 자신의 발화로 동시대의 동세대들에게 도달한 가슴 찡한 편지들. 음악이 정치보다 경제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순간.

*편집자 주 - 필자 사정으로 하루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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