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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멍때리기 대회’는 사람들을 놀리려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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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쯤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탈탈 털린 멘탈을 부여잡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메신저가 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메시지에서는 '잘 지내냐'는 그 흔한 안부 인사조차 없었다. 그저 뭔지 모를 기사로 연결되는 파란색 링크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마우스를 누를 힘도 없어 무시하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귀찮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링크를 클릭했다. 실망(?)스럽게도 '멍때리기 대회'라는 타이틀의 기사였다.

실망도 잠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대회였기에 조용히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멍때리기라면 나도 자신 있다’는 생각에 점점 흥미를 느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꿈 중에는 ‘몇 날 며칠 동안 한없이 멍 때리고 있기’도 포함돼 있다. 평소 친한 친구들에게 '멍때리기 대회'를 언급하며 "출전만 하면 내가 1등"이라고 떠들어댔을 정도다. 그런 대회가 올해도 성황리에 열렸다는 내용에 ‘나도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문득 '저런 대회를 만든 사람은 누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고, 곧장 키보드를 두들겨 관련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만에 '멍때리기 대회'를 주최한 '웁쓰양컴퍼니'의 대표인 웁쓰양과 연락이 닿았다.

웁쓰양을 만난 건 4일 홍대입구역에 있는 한 카페였다. 만나기 전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SNS와 관련기사 등을 찾아 봤지만, 웬일인지 웁쓰양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중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있는 웁쓰양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중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있는 웁쓰양ⓒ민중의소리

“멍때리기 대회요? 일하는 사람들을 놀려주고 싶었어요”

파마를 한 건지 원래 곱슬인 건지 모를 헤어스타일에 염색했던 머리카락이 자란 것인지 절반만 노랗다. 3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이는 웁쓰양은 한눈에 보기에도 개성이 강해 보였다.

만나자마자 무뚝뚝하게 “인터뷰는 응하겠지만 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밝히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웁쓰양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기사에 쓸 사진이라도 좀 찍자”는 말에 깜짝 놀라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아직까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제가 원래는 회화를 하는 예술가예요. 평소 시민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퍼포먼스를 자주 기획하고 진행했었는데 '멍때리기 대회도 그런 퍼포먼스 중 하나였죠. 제가 개인의 신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건 작품보다 제가 더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예요."

의외였다. 아니 놀랐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저 이색적인 대회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멍때리기 대회'가 알고 보니 한 예술가의 퍼포먼스였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날 더 당황하게 만든 건 바로 이 대회를 구상하게 된 취지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놀려보자는 생각이었죠. 티끌만큼도 계몽적인 의미 같은 건 없었어요(웃음). 1회 대회가 월요일에 열린 것도 회사원들이 더 부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죠. 보통 ‘월요병’이라고 해서 직장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바로 월요일이잖아요.”

이 대회가 다소 황당한 이유로 계획됐기는 했지만 준비 과정이나 진행까지 허술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퍼포먼스의 규모보다는 내실을 추구했다. 그래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참가자를 모으기보다 인원은 적더라도 다양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이 넓은 세상에 또 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참가 신청을 받을 때 꼭 확인하는 게 바로 직업이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직업 외에도 학생과 무직자 등의 지원도 환영하죠.”

멍때리기 대회 모습
멍때리기 대회 모습ⓒ웁쓰양 제공

“‘멍때리기 대회’ 도우미는 함정이에요”

‘멍때리기 대회’에 대해 한 번 쯤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승자를 정할지 궁금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대회는 정말 순수하게 참가자들이 90분 동안 얼마나 멍을 잘 때리는지 겨룬다. 그리고 ‘멍을 잘 때린다’는 기준은 심장박동수(심박수) 체크로 이뤄진다. 실제 웁쓰양은 대회를 열기 전 정신과 병원까지 찾아가며 기준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심박수가 전부는 아니다. 현장 관객들의 인기투표까지 합쳐져 우승자가 결정되니 눈에 띄는 복장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참고로 웁쓰양은 참가 선수들에게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는 복장 착용을 요구한다.

“물론 가만히 두면 다들 멍을 잘 때려요. 그래서 대회 안에 숨겨진 ‘비밀병기’가 있죠. 바로 참가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도우미’들이에요. 도우미는 참가자들을 위해 물과 안마, 부채질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게 함정이죠. 남성 참가자한테는 여성 도우미가 여성 참가자에게는 남성 도우미가 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심박수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어요.”

대회는 웁쓰양을 비롯한 심사위원 2명과 5~10명 정도의 도우미들로 진행된다.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검은 원피스에 갓을 쓴 웁쓰양과 포도대장 옷을 입은 두 명의 심사위원이 대회장을 돌아다니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다가 웃거나 조는 사람이 있으면 처음엔 옐로카드를, 두 번째는 레드카드가 주어진다. 물론 심박수가 빨라져도 탈락이다. 탈락자는 웁쓰양을 제외한 두 명의 심사위원에 의해 대회장 밖으로 끌려 나간다.

“저한테 ‘멍때리기 대회’ 하나의 작품이지 대회를 운영하려는 목적은 아니에요. 그러나 모인 사람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규칙을 만든 거죠.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대회 규칙들이지만 알고 보면 많은 고민이 담긴 거예요.”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기타

단돈 300만원으로 치른 제1회 세계 멍때리기대회

‘멍때리기 대회’가 알고 보니 한 예술가의 퍼포먼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단하다’보다 ‘가능해?’라는 의문이었다. 개인이 ‘세계대회를 열겠다’는 생각을 누가 할까 싶다. 더욱이 크게 성공하지 못하면 배고프고 가난한 직종인 예술가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웁쓰양 역시 생활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제가 가진 거라고는 추진력뿐이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에요.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죠. 얼핏 생각하면 엄청난 예산이 들었을 것 같지만 사실 1회 대회에 들어간 돈은 300만원 남짓이에요.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동원하며 거의 모든 걸 자급자족했죠.”

물론 으리으리한 규모의 세계대회는 아니었다. 2014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대회 참가자는 불과 50명이었지만 장소와 대회 물품, 인건비 등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 탓에 발에 불이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첫 대회 때는 사용할 휴대용 심박기를 구하지 못해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정신과 병원까지 갔었어요. 물론 실패했죠. 대신 휴대용 심박기를 렌털해 주는 업체가 있다는 얘길 들었죠.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어요. 한 달 대여료가 한 대당 16,000원 정도? 대회에 사용할 요가 매트는 중고물품을 파는 사이트에서 구매했죠. 운 좋게도 문 닫는 요가학원이 있어서 개당 몇 천 원 씩에 구했어요.”

2014년 처음 열린 멍때리기 대회는 벌써 서울에서만 벌써 3회째다. 지방 개최 요청도 많아 지난해 수원에서도 한 차례 열렸다. 이달에는 대전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2014년 처음 열린 멍때리기 대회는 국제적 유명세도 얻어 중국 베이징(2015년)에 이어 올해 8월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대회가 예정돼있다.

“목표요? 솔직히 제 목표는 이미 1회 대회에서 다 이뤘어요. 목표라기보다 가끔 상상하는 모습이 있는데, 바로 ‘세계멍때리기 대회의 날’이 만들어지는 거죠.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날 한시에 멍을 때리는, 한마디로 지구가 멈추는 퍼포먼스가 이뤄진다면 정말 소름 돋지 않을까요?”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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