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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다 큰 아저씨들의 성장드라마를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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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플레이 온’ 변규리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플레이 온’ 변규리 감독ⓒ연분홍치마 제공

“솔직하고 거리낌없고 거침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일면 장난끼있고 재밌는 분들이지만, 참 진지했고 진중했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겪는 과정에 대해서 정말, ‘최대한 쭉쭉 흡수해서 겪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노조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3년 여간 지켜본 카메라가 있었다. 변규리(29)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플레이 온(Play On)’이다.

영화 ‘플레이 온’은 라디오 DJ로 변신한 SK브로드밴드 통신설치 수리기사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주인공들은 지난 2014년 11월, 정규직 전환을 위한 파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팟캐스트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파업 내용 외에도 일하면서 겪는 고충, 고객들에게 바라는 점부터 개개인의 옛 꿈과 고민까지 소탈한 목소리를 전했다. 영화는 라디오 진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파업현장의 이미지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이들의 ‘파업’ 그리고 ‘삶’을 그렸다.

영화 ‘플레이 온’ 스틸컷
영화 ‘플레이 온’ 스틸컷ⓒ연분홍치마 제공

영화는 2017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초청돼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다음달 1일부터 4일 진행되는 제 22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플레이온의 배급을 맡은 단체 ‘연분홍치마’는 공동체 상영회를 다수 기획하고 있어, 다양한 곳에서 이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변규리 감독은 왜 이들의 이야기에 끌렸느냐는 질문에 “평소 초기노조를 만나고 싶었어요. 이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제 막 전면파업을 해보자’ 준비하고 있을 때 였어요”라면서 “하나하나 중요한 순간이실 것 같아서 담아보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특히 “이분들이 용기를 갖게 된 계기는 뭘까? 궁금했어요”라고 밝혔다.

그 시작은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함은 아니었다고 한다. 변규리 감독은 오히려 주인공들이 파업 과정 내내 ‘내가 어쩌다 노조를 하게됐을까’, ‘아직까지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의미를 위해서보다는 ‘절실하다’는 솔직한 언어들이 한 명씩 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신중하게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어 “그런 삶의 욕망들이 모이면 실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어요”라고 말했다.

투쟁! 외치는 것도 어설펐던 노조원들. 우왕좌왕. ‘내가 어쩌다!’ 자조 섞인 한탄까지. 그러던 그들이 점점 바뀌어갔다. 변규리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낸다는 즐거움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이 영화 속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어쨌든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게 돼서 그게 너무 좋다’는. 이때까진 이게 틀렸다고 말하면 다음날 소리 소문 없이 잘리거나, 왕따를 당한다거나 그런 식의 압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러 사람이 같이 있으니까 그런 문제제기를 했을 때 고용주들이 완전히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내가 요구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찾아가고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이 이분들에게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우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걸 이분들을 통해 저도 확인한 것 같아요”

영화 ‘플레이 온’ 스틸컷
영화 ‘플레이 온’ 스틸컷ⓒ연분홍치마 제공

영화는 주인공들이 2014년 겨울 야심차게 시작했던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을 비롯한 6개월의 파업 기간, 얻어낸 작은 승리, 또 이후 닥친 또 다른 절망과 다시 시작된 도전까지 그들의 호흡을 그대로 따라간다.

100%의 성공은 없었다. 역시 SK라는 대기업과 싸워 이기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결국 하청업체에서 정규직으로 인정받았지만, 원청업체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았다. 또한 전처럼 바쁘게 일하는 상황은 벗어났으나, 고의인지 우연인지 사측에서 일을 주지 않아 월급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어떤 면에서는 성공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성취할 과제들이 계속 있는 상황인거죠. 음, 그런데 이분들도 그 도전이 완벽하게 수용될 거라고 확신하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 이후에도 이분들에게 삶이 변화하는 과정이 계속 있구나 알게 됐어요”

몇 년에 걸친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 변규리 감독은 이들과 한 달에 1번은 꼭 만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쨌든 아직까지는...”이라면서도 “인터뷰 직후 주인공 분들과 뒷풀이가 있어요”라고 말하곤 곧바로 환한 표정을 지어 두터운 친분을 짐작케 했다.

분위기를 전환해 재밌던 에피소드를 묻자, 한층 밝아진 얼굴로 “지금은 웃지만...”이라면서 파업 당시를 회상했다.

“계속 무임금으로 살다보니 돈이 너무 없잖아요. 새벽에 노숙할 때 한 6시쯤 먹었던 저녁으로는 해결이 안돼요. 그래서 천원 이천원씩 걷어서 핸드폰 어플로 사다리 타기해서 사다먹고.. 또 노숙할 때 겨울에 굉장히 추웠는데, 핫팩이 2개씩 돌아가야 하는데 1개가 모자라서 배분하는 걸 두고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엄청 진지했어요, 그런 상황들이. 그러다가도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웃고... 안타까우면서도 웃기죠.”

변규리 감독, 영화 ‘플레이 온’ 주인공들과 함께
변규리 감독, 영화 ‘플레이 온’ 주인공들과 함께ⓒ연분홍치마 제공

변규리 감독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똘똘 뭉친 것처럼 보였다. ‘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

그는 “원래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근데 글만 가지고 충족되지 않는 게 있었어요. 그게 뭘까..”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이어 “사람들과 더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직접 질문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일 역시 현장 취재나 인터뷰 등 사전 작업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나, 좀 더 그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변규리 감독의 그간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안녕, 히어로(조연출)’, 길 위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거리에서 온 편지(공동연출)’, 이번 영화 ‘플레이 온’ 등 노동 분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와 관련해 변규리 감독은 “노동자로 길게 일해본 적도 없고 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을까,질문을 받고 저도 개인적으로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봤다”면서 “아마 엄마의 영향이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굉장히 오랫동안,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계시는데, 되게 성실하게 일하시고 내면의 프라이드도 굉장히 강하신 모습을 보고 커오면서 ‘아, 노동자로서 삶을 사는 건 당당하고 멋지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자라왔어요. 근데 엄마가 점점 몸이 아프고 일을 하는데도 경력 인정을 받기는커녕 더 안 좋은 직장으로 가게 되고, 힘들어하시고, 그런 걸 봤어요. 엄마는 여전히 자신감을 갖고 일하시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답답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 고민들 끝에 대학 때쯤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게 노조를 만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변규리 감독은 앞서 언급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단체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비롯한 인권운동 활동들을 영상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연분홍치마는 인권활동들을 하는 과정을 영화로 전하면서 알리는 단체”라면서 “관객과의 소통 욕구가 크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연분홍치마는 현재 변규리 감독의 영화 ‘플레이 온’과 ‘안녕 히어로’, 그리고 김일란, 이혁상 감독 제작의 ‘공동정범’ 세 작품에 대한 상영 및 배급 활동을 하고 있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와 관련한 이야기다.

한편 이들의 영화 제작을 응원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다. 연분홍치마는 은행자동출금(CMS) 후원을 받고 있다. (계좌:1006-701-255845 우리은행 연분홍치마)

변규리 감독은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후원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있지만 그 수가 활동가들의 생활을 다 채워줄 정도는 아니라 더 많이 홍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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