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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52분 53초동안의 충만한 즐거움

음악 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당연히 음악을 자주 듣고 많이 듣는다. 날마다 음악은 쏟아진다. 장르도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양하다. 록, 랩, 아이돌 팝, 일렉트로니카, 재즈, 포크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들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만 음악을 만들겠는가. 나라밖에도 음악은 무수히 많다. 그러다보니 영미권의 음악들까지 챙겨 듣기는 힘겨울 정도이다. 생각해보라. 그 중에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겠는가. 록은 록대로, 랩은 랩대로, 재즈는 재즈대로 좋다. 그래서 솔직히 들을 음악이 없다는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들을 음악이 없는 것이 아니리라.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거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닐는지.

사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음악 취향을 갖기가 쉽지 않다. 가장 쉽게 음악을 접하는 통로인 TV와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이돌팝이나 팝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요즘에는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드라마틱하게 음악을 보여줄 수 있을지 경쟁하는 것 같다. 음악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양념을 과하게 한 요리에 길들여져 다른 입맛을 갖기 어려워졌다.

이준삼 첫 음반 'A Door' 자켓 이미지
이준삼 첫 음반 'A Door' 자켓 이미지ⓒ이준삼

게다가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의 한국 사회는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삶에 대한 불안은 성인들이 음악에 귀 기울 여유를 앗아갔다. 그들이 예전에 들었던 노래를 리메이크 할 때 유독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인터넷으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인터넷에 대안언론이 있다고 보수언론에 젖은 독자가 대안언론을 찾아가는가.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눈앞에 방법을 보여주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듣는다고 곧바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팝이라면 모를까. 팝 이외의 장르는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고, 계기가 필요하다. 그마저도 취향이 굳어져버린 기성세대의 취향을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재즈 같은 장르는 여전히 비주류이다. 물론 세계 어디에도 재즈가 주류 음악인 나라는 없다. 연주의 비중이 높고, 즉흥연주가 필수인 재즈는 문턱이 있는 음악이다. 문턱을 넘어서야만 친해질 수 있는 재즈는 소수 마니아의 음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 재즈 페스티벌이 여럿 열려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여전히 좋은 재즈 음반이 나와도 찾아 듣는 이가 드물고, 재즈 음반을 호평해도 반응은 거의 없다. 그 결과 재즈는 가장 덜 상업적인 음악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대학 실용음악과에서 많이 가르치는 음악이고, 유학까지 다녀오는 재즈 뮤지션들도 많지만 재즈는 흥행과는 거리가 먼 음악이다. 그렇다고 재즈가 클래식처럼 전통만을 고집하거나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재즈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이준삼의 'A Door'

재즈 베이시스트 이준삼
재즈 베이시스트 이준삼ⓒ이준삼

이럴 때, 뉴욕에서 10여년간 활동하다 지난 해 첫 음반을 낸 재즈 베이시스트 이준삼의 음반 [A Door]는 음반의 제목처럼 재즈의 문을 열어주는 음반으로 맞춤한다. 미국의 재즈 전문 레이블 ‘Origin’에서 발표한 음반은 재즈의 스윙이나 즉흥연주, 인터플레이, 프레이징을 알지 못해도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는 음반이다. 함께 연주한 연주자들의 면면부터 압도적이다. 재즈 팬이라면 Aaron Parks(피아노), Ben Monder(기타), Nate Wood(드럼), Ralph Alessi(트럼펫)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대에 휩싸일 법하다.

하지만 이 음반의 매력은 대부분 이준삼 자신이 쓴 곡 자체에서 나온다. 음반에 수록된 11곡 가운데 민요 도라지를 변주한 ‘Doraji The Flower’를 제외한 10곡은 모두 이준삼이 썼다. 이준삼의 곡들이 보여주는 특징은 곡의 템포나 구조와 무관하게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균형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음반의 첫 곡인 ‘Whirlwind’는 베이스 연주로 시작하면서 영롱한 피아노 연주를 시냇물처럼 흘려보내고, 빠른 리듬 위에서 테마 멜로디를 트럼펫으로 연주해 곡의 주제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그 후에 이어지는 피아노의 즉흥연주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구현되면서 곡의 소박한 면모를 부각시킨다. 피아노 즉흥연주를 트럼펫이 이어받을 때에도 연주는 자연스럽게 절제되어 따뜻하게 느껴진다. 곡의 말미에서 테마가 다시 반복될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과하거나 넘치지 않는 밀도와 균형감각을 지키는 가운데 곡의 멜로디와 협연으로 만들어내는 다정한 서정성은 이준삼의 음악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돕는다.

그렇다고 이준삼의 음악이 그저 쉽게만 들리고 테크닉의 욕심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반의 두 번째 곡 ‘Zadrak’는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로 곡의 포문을 연다.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가 주고 받으며 끌고 가는 음악은 선이 굵게 들리는 음악의 이면에 피아노와 베이스 연주로 섬세함을 채워넣고 만다. 끝까지 선명하게 대비되는 곡의 구성과 사운드의 차이는 이준삼의 음악이 지닌 서정성이 분출과 절제의 교차로 채워질 뿐만 아니라, 각각의 영역 안에서 매우 풍부한 언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드러낸다. 느린 템포와 하모니카 연주로 편안함을 강조한 ‘Boa Noite’나 신예원의 축축한 보컬이 빛나는 ‘Love Trauma’, 다정한 풍경이 그려지는 ‘Ice Skate’, ‘Airport Music’은 이준삼 음악의 소탈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만드는 좋은 곡들이다. 재즈를 모르고,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의 보편성을 구현해낸 곡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탐미적이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과잉이 없으며, 구구절절하지 않는 음악은 스스로 절제하고 단호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아름다움의 이상적인 귀결이다. 멋을 부린 즉흥곡 스타일의 ‘23451’과 ‘23452’, 자연스러운 경쾌함을 지켜나가는 ‘2 Tunes and Off-Hour Waiting Area’, 민요 ‘도라지’를 한충은의 대금과 협연한 ‘Doraji The Flower’, 음반에서 가장 화려한 구성을 지닌 ‘Where water comes together with other water’까지 이준삼 음악의 특징은 균일하게 유지된다.

세상에 좋은 음악은 많지만 이준삼의 음악을 놓치면 52분 53초동안의 충만한 즐거움은 끝내 알지 못하고 말 것이다. 자신을 위해 이 정도의 시간은 써야 하고, 이렇게 좋은 음악은 즐겨야 한다. 인생은 그래야 값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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