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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오늘과 만나 더 풍성해진 신중현의 음악 역사
신중현
신중현ⓒCJ문화재단 제공

전설이 많은 시대이다. 신화가 많은 시대이다. 이제 신화나 전설이라는 호칭은 TV 연예 오락프로그램에서 예전에 활동했으나 이제는 활동하지 않는 대중예술인들을 소개할 때 항상 붙이는 진부한 수사가 되어버렸다. TV 연예 오락프로그램들에서 젊은 시청자들만 바라보며 트렌디한 스타들만 등장시킬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장년층과 노년층의 시청자들도 감안해야 하다보니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처럼 옛 대중음악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 옛 대중음악인들에게 붙이는 호칭은 늘 신화와 전설이다. 겨우 한두 곡의 히트곡만을 가진 이들도 대단한 스타였던 양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동시대를 보낸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던 젊은 시청자들에게 방송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설과 신화는 그저 옛날 사람이라는 의미로 전락해버린 감이 없지 않다.

사실 한국대중음악이 예술의 영역으로 평가받기 전에는 전설과 신화라는 의미부여도 많지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 강헌, 김창남, 신현준, 이영미, 임진모 등의 소장 대중음악평론가들이 대중음악을 예술과 사회적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학을 써나가기 시작한 후에야 한국 록, 팝, 포크 등등의 장르에서 원조와 장인의 위계가 설정되고, 그에 걸맞은 비평적 수사들이 부여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중현은 한국 록의 대부라는 평가가 공식화되었다. 1997년 그에게 바쳐진 두 장의 걸작 헌정 음반은 바로 그 재평가의 절정이었다. 그가 주도한 밴드 애드 훠가 한국 최초의 록 밴드였으며, 그 후 그가 만든 밴드들이 한국 록음악의 태동과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만이 당시 한국 록의 전부는 아니었고, 그가 만든 음악들 또한 록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등을 빌어 소울 음악을 한국화한 주역이며, 당대를 주름잡은 히트곡 제조기였고, 전권을 휘두른 프로듀서였다. 또한 그는 1970대 전 세계를 강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탁월하게 한국화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 작업은 200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 작업들이 모두 엄밀하고 정당한 재평가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도 그가 전설이자 신화였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나 이제는 그의 음악들 가운데 록 음악이 더 주목받고 있으며, 밴드 시절의 히트곡들은 연주자 신중현의 탁월함을 가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신중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곡의 히트곡만으로 말해질 수 있는 뮤지션이 아니다. 그는 미군 클럽과 그룹 사운드와 검열의 시대를 통과하며 스스로 역사가 되어버린 뮤지션이고, 더 구체적인 기록과 평가와 재해석이 진행되면서 계속 살아있어야 할 한국 대중음악의 빼어난 창작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호들갑스러운 전설과 신화 만들기와 추앙이 아니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에 최종 공개된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은 바로 그러한 신중현 다시 읽기, 신중현 다시 쓰기 작업의 의미 있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음반이다.

신중현 헌정 앨범
신중현 헌정 앨범ⓒCJ문화재단 제공

CJ문화재단이 제작하고, 정원영이 총괄 디렉터를 맡았으며, 이이언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11곡의 신중현 음악을 리메이크했다. CJ문화재단의 신인발굴 프로그램인 튠업을 통과한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뮤지션들은 신중현의 대표곡인 ‘미인’, ‘아름다운 강산’을 비롯한 곡들을 두루 리메이크했다. ABTB, 아시안 체어샷, 블루파프리카, 이정아&남메아리, 포헤르츠, 박소유&김진규, 후추스&아홉번째, 전국비둘기연합, 블루터틀랜드 등이 참여한 이 음반을 통해 먼저 드러나는 사실은 신중현 음악의 높은 완성도와 질박한 사이키델릭, 그리고 한국적인 체취와 시대의 공기들이다. 기실 리메이크 작업은 리메이크의 원료가 되는 원곡이 빼어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작업이다. 또한 원곡이 빼어나고 원곡에 익숙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결국 자신의 패를 다 보여주고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음반에 참여한 튠업 뮤지션들은 신중현의 원곡이 품고 있던 록 에너지와 음악적 핵심을 충실히 재현하거나 자기화했다.

‘생각해’를 리메이크한 밴드 ABTB는 끈적끈적한 리듬감을 부각시킨 록킹한 연주로 신중현이 일군 한국 록이 오늘도 튼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시안 체어샷이 6분대로 늘려버린 ‘그 누가 있었나봐’는 트립합을 더해 신중현의 사이키델릭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 앨범을 대표한다고 할 만큼 화려하고 극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곡으로 원창작자 신중현만큼 리메이크의 주체인 아시안체어샷을 주목하게 만드는 멋진 곡이다. ‘긴긴 밤’은 사이키델릭한 곡들 사이에서 어쿠스틱하게 느껴질만큼 간명하게 재해석된 블루스 스타일이 돋보인다. 오직 몰아치기만 했더라도 좋았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질감의 곡들을 두루 포진시킴으로써 이번 음반은 신중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과거의 거장과 현재의 음악인들이 교감하고 대화하며 현재의 음악언어로 말하는 제대로 된 리메이크 음반이 되었다. 싱어송라이터 이정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가 함께 만든 ‘나는 너를 사랑해’도 노랫말의 단순함을 다채로운 연주의 변화로 확장하면서 리메이크 음반다운 음반이 될 수 있게 하는
데 일조했다. 깔끔한 편곡으로 원곡의 눅진함과 쓸쓸함을 세련되게 되살린 포헤르츠의 ‘저 여인’도 신중현 음악의 현재화라는 과제를 잘 수행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탈바꿈한 박소유의 ‘설레임’은 파격적인 재해석을 감행해 건조하고 몽롱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로큰롤 라디오 김진규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교차시키면서 신중현의 음악을 가장 가까운 오늘로 끌어왔다. 경쾌하면서도 풍부하게 재해석해 사이키델릭한 스타일을 놓치지 않은 ‘할 말도 없지만’에서는 후추스와 아홉 번째의 감각이 도드라진다. 신중현 음악의 사이키델릭 록 측면을 폭발시킨 두 곡 ‘나는 몰라’와 ‘떠오르는 태양’의 연타는 호쾌하고 자신만만하며 자유롭다. 특히 ‘떠오르는 태양’를 맡은 블루터틀랜드의 농염한 연주는 과거와 현재를 단번에 잇는다. 강이채, 박윤식, 임헌일, 장기하, 신대철 등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한 인트로와 아웃트로 격의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 역시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음반에 대한 호평의 한 켠에는 좋은 뮤지션들에게 적절한 곡을 연결하고 조율하며 각자의 스타일과 만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만든 프로듀서 이이언의 수고와 능력 역시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이로써 확인되는 것은 단지 신중현 음악의 풍성함만이 아니라 신중현 그 후 풍성해진 한국 대중음악의 실체이다. 누군가는 신중현과 동세대들의 음악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음악으로 나아가 오늘의 신중현이 되고 있다. 이제 100여년에 이르는 한국대중음악사는 이식을 넘어 혼종과 자기화의 역사에 이르면서 산개하고 있다. 그 긴 역사를 기반으로 과거가 현재를 통해 확장하고, 현재 역시 과거를 통해 확장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음악적 교감과 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 음반은 바로 그 일 중에 일부분을 잘 해내면서 다른 역사들이 기록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직 오늘과 만나지 못한 신중현 음악의 또 다른 영토들 역시 조만간 이렇게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여전히 묻혀있는 한국대중음악의 금맥들이 계속 발굴되고 현재로 기록되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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