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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휠체어 탄 사람이 바다에 풍덩 들어가서 수영하는 모습 본 적 있나요?”
없음

“저는 휠체어를 탄 여행가입니다.”

홍서윤(31)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이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면 다들 깜짝 놀란 얼굴이 되곤 한다. 그를 보고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여행을 하지?’라고. 누군가에겐 그 일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바로 홍 소장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유럽을 돌고 온 ‘증인’이다. 휠체어를 타고, 심지어 커다란 짐가방을 직접 끌고서 말이다.

홍 소장은 7개 나라 25개 도시를 휠체어로 누비면서 느낀 경험을 담은 ‘유럽, 가지 않을 이유 없었다’라는 책을 낸 작가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종횡무진 전국을 누비며 여행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홍 소장을 만난 곳은 서울 광화문 광장 옆에 설치된 ‘광화문 1번가’였다. ‘광화문 1번가’는 국민인수위원회 성격을 가진 정부의 공식 기구로, 국민들로 정책 제안을 받고 있다. 그는 ‘광화문 1번가’의 대변인격인 국민소통위원을 맡고 있다. 밝고 유쾌한 그의 성격과 어울리는 자리였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17일 오후 광화문 세종로 광화문1번가 열린광장 국민인수위 국민경청보고서 전달식에서 홍서윤 소통위원(오른쪽)에게 보고서를 받고 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17일 오후 광화문 세종로 광화문1번가 열린광장 국민인수위 국민경청보고서 전달식에서 홍서윤 소통위원(오른쪽)에게 보고서를 받고 있다.ⓒ양지웅 기자

어린시절 청천벽력 같은 사고

홍 소장은 지금 비록 대부분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보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엔 달랐다. 경남 창원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경북 김천의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잠시 딸을 할머니에게 맡겼던 것이다.

“할머니 손에 크다 보니까 어린 아이처럼 크지 못했어요. 할머니를 따라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다니고, 된장찌개를 끓여주면 이유식 먹을 나이에 밥을 비벼먹고. 겨울에는 콧물 흘리고 뛰어다니고 그렇게 컸어요.”

그러다가 10살 때쯤 창원으로 다시 돌아온 어린 홍 소장은 사고를 당했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방학첫날 그는 수영장을 갔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잠시였다. 수영장에 다녀온 뒤 갑자기 몸에 마비증세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는 바이러스성 척수염 진단을 받았다.

“진짜 저희 집에서는 청천벽력이었죠. 하루 아침에 멀쩡했던 딸이 그렇게 된 걸 쉽게 받아들일 부모님는 별로 없을 거예요. 이후 학교도 잘 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있곤 했어요.”

인터뷰 내내 밝았던 그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나이인 사춘기 시절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아버지 사업 때문에 가족이 모두 필리핀에서 한동안 머물렀던 것이다. 한창 예민할 시기였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을 마음에 꾹 눌러 담았다.

“밖으론 티가 안 났어요. ‘착한아이콤플렉스’처럼 굉장히 바르게 행동하고, 학업에 충실한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하지만 내면적으론 엄청나게 (감정) 기복이 있었죠. 그걸 꾹 누르면서 있었어요. 다행히 거기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선생님들이 제가 어떤 상황인지 아니까 자연스럽게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지도를 잘 해주셨죠.”

돌이켜보면 홍 소장에게 필리핀은 삶에 있어서 고민의 깊이를 더해준 계기가 됐다.

“필리핀이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좋았어요. 식민지를 겪으면서 서양 문화가 들어가서 그런지, 물리적인 환경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열악하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아이, 동물 이런 사회적으로 약한 개체를 대하는 건 훨씬 선진적이었어요. 한국과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면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한국에 가면 ‘왜 저런 시선으로 나를 보지?’, ‘왜 저 사람은 이렇게 나를 규정 짓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거든요. 아직 우리 사회는 덜 영글었구나 싶었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건 대학 진학 때였다. 홍 소장은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겪으면서 법과 제도에 관심이 생겼고,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전공을 고민하다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현장이 사회복지 현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찾기 위해 대학과 대학원에서 잇따라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그 결과 자신도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느끼게 됐다.

“휠체어를 타고 어딜 나가면 어르신들이 혀를 차면서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사춘기 때엔 이런 식의 시선이 불쾌했죠. 하지만 지금은 인식도, 사회도 달라졌어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인간의 심리, 행동, 태도에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런 배경을 확인하는 일들을 하거든요.

어르신들이 살았던 시대엔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그땐 인프라가 좋지도 않았고, 사회나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니, 어르신들이 보기엔 육신이라도 멀쩡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연민이 있었을 거라고 이해해요. 아마 그 어떤 세대도 전후 세대를 100% 이해 못할 걸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좀 더 너그러워지는 거 같아요.”

광화문 앞에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왼쪽)
광화문 앞에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왼쪽)ⓒ홍서윤 제공

어린시절부터 일상이었던 여행은 휠체어를 타고도 가능했다

홍 소장이 본격적인 해외 여행에 나선 것도 이때였다. 홍 소장은 어릴 적부터 부모를 따라 전국 곳곳을 여행 다녔던 경험이 있다.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배낭에 짐을 미리 싸두고 기다리는 날도 많았다. 산과 들, 바다, 가리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여행의 기회는 홍 소장이 장애를 안게 된 이후 예전처럼 갖기가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된 그는 어느 날 혼자서 KTX를 타고 장거리 외출을 시도했다. 힘들었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발단이 돼서 여행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게 됐어요. 장애가 있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간 추억들을 한 번 더 끄집어내면서 여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국내 여행도 가고, 국외 여행도 가고, 다양한 곳으로 움직였어요.”

홍 소장이 유럽으로 눈을 돌린 건 UN 사무국 인턴에 합격해 스위스 제네바로 떠났던 대학원 동기 덕분이었다. 그가 올리는 스위스 사진을 보고 생활을 전해들으면서 스위스로 휠체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장애를 안고도 가까운 해외로 여럿이서 함께 간 적은 있지만 혼자서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그였다.

마음은 먹었지만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몸이 잘 버텨줄 수 있을까’, ‘스위스에서 과연 휠체어를 타고 얼마나 돌아다닐 수 있을까’ 등 많은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선뜻 나서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고민을 거듭하던 홍 소장이 “내가 정말 스위스를 가도 될까?”라고 묻자, 스위스에 간 친구의 대답은 이외로 간단했다. “그냥 오면 돼.” 이유도,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이 ‘일단 오면 좋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2014년 홍 소장은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모두 가지고 스위스로 떠났다.

“그 친구만 믿고 간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망설일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해요. 스위스에 가보니 생각보다 혼자 여행해도 되겠다고 싶었어요. 용기를 얻은 거죠.”

홍 소장은 스위스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휠체어로 버스와 기차를 마음껏 탔고,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도 문제 없이 탔다.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패러글라이딩을 수소문 끝에 찾아 하늘을 날아 오르기도 했다. 어느 누구든, 그 순간 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홍 소장 역시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나홀로 여행에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홍 소장은 이듬해 가을에 혼자서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로서는 여러 위험 요소가 따르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짰다. 2015년 9월 한 달 동안 독일, 벨기,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6개 국가 15개 도시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휠체어를 타고 유럽을 혼자서 누비고 다닌다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낼 게 뻔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부모님에게도 비행기에 올라타기 2주 전에 여행에 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2014년 스위스 여행 중 패러글라이딩에 올라 탄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
2014년 스위스 여행 중 패러글라이딩에 올라 탄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홍서윤 제공

여행의 출발은 한 달간의 짐을 담은 가방을 어떻게 끌고 다니냐는 방법을 세우는 것이었다. 일행이 있을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혼자서 하는 여행에서는 직접 짐을 다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방 손잡이에 고리를 걸어 휠체어와 연결하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홍 소장은 여러 시도 끝에 손과 가방을 잘 연결해 균형을 잡으면서 휠체어도 함께 끄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던 그는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에겐 여행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해보니 별 거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여행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지 않을 이유도, 유럽에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물론 여행길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휠체어 바퀴가 터져서 멈춰 선 적도 있었고, 여행가방 바퀴가 고장 나 낑낑대며 숙소까지 끌고 간 적도 있었다. 역무원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차역 플랫폼에 밤늦게 갇힌 적까지, 그에게 늘 크고 작은 사고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홍 소장은 소셜펀딩 블로그 글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의 어려움에 눈을 돌리지 않았고,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의 도움을 줬다. (중략)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던 파리의 휠체어 고장 사건은 나에게 ‘어떻게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됐다.”

“과해서 불편하지도, 부족해서 속상하지도 않는 수준의 친절을 몸소 경험하니 또 하나의 바람이 더 생겼다.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혹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친절을 온몸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바람. 내가 한 행동이 또 다른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고, 분명 조금씩 그 폭이 커져 변화가 이뤄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여행은 역시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 여행에서 무엇 하나라도 배움이 생길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온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특히 홍 소장에게 여행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쓴 주제도 ‘이동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와 관련해 그는 기자에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목포에서 홍천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갈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이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서울시 청년의회에서 활동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
서울시 청년의회에서 활동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홍서윤 제공

바다로 산으로 자유롭게 여행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다

이후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 장애인들과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논의를 나누던 홍 소장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 문제를 여행과 접목해 풀어보고자 지난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차렸다.

“유럽은 여행사든 NGO(비정부기구)든 장애인 관광이든 모든 게 체계화, 조직화돼 있었는데, 그게 부러웠어요. 우리나라는 그런 체계가 없거든요. 장애인 여행과 관련해 정리된 데이터도 없고, 장애인 지원도 체계적이지 않고. 심지어 목적지 하나 정하는 것부터 난제예요. 직접 운전을 하지 않으면 다른 교통수단으론 이동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언제까지 집밖에 나가는 게 힘들 순 없으니 마음 맞는 분들과 작게 단체를 만들었어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의 범위도 넓어지게 됐다. 우연한 기회로 서울 거주 청년들이 참여하는 정책 민관협의체인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의회에서 활동한 것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홍 소장은 여기서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 관광은 어느 부서에서 다뤄야 할까요?” 이에 대해 서울시 장애인 자립지원과와 관광정책과가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서로 미루는 모양새를 보인 것을 보고 그는 크게 회의감을 느꼈다.

“‘장애인 관련 정책은 장애인 복지과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더라고요. 거기서 저와 다른 시각을 경험했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정책을 대상 중심으로 보는구나. 아니, 그러면 복지가 아닌 일은 또 어디서 하나요? 행정 공무원들의 경직성을 체감했어요.”

홍 소장은 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그는 “어떤 칸막이나 장벽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론 관광정책과에서 이를 다루기로 결정했는데, 작게나마 좋은 성과를 봤다”고 소회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홍 소장은 앞으로도 연구소를 중심으로 계속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또 지난 번엔 유럽 여행에 대한 책을 냈다면, 이번에는 아시아 여행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떠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참 열심히 움직인다’고 얘기해요. 움직일 사람 없으면 저라도 움직여야죠. 그래서 몸이 부서져라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 보면 알겠지만, 광화문에서조차 휠체어를 탄 사람을 잘 볼 수가 없어요. 동해 망상해수욕장에 갔더니 휠체어를 탄 사람이 바다에 풍덩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속리산에 갔더니 시각장애인이 배낭 하나 메고 등산하면서 단풍을 만져보는 모습을 보거나, 그럴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굉장히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장애인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고 준비돼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걸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 궁극적인 목표가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요.”

광화문 1번가에서 만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
광화문 1번가에서 만난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민중의소리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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