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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찰과 서울대병원,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경찰청장이 고 백남기 농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사람을 물대포로 쏴 죽여 놓고도 1년 6개월간 고개를 뻣뻣이 들고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경찰 총수가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세상이 바뀐’ 상징적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이날 사과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족들이 경찰 총수의 첫 사과를 ‘언론플레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찰은 사과의 시점을 경찰개혁위원회 출범식 날로 잡았다. ‘인권 경찰’로 거듭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지시에 화답하는 조치중 하나가 바로 경찰개혁위원회 출범이다. 이 청장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위원들에게 “거침없는 조언과 쓴소리를 해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며 중간에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 대한 사과를 끼워 넣었다.

처음 경찰청은 다음주 월요일로 예정된 기자간담회에서 청장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기자단에 전해왔다. 그러다 몇 시간 뒤 일정을 변경해 16일 경찰개혁위원회 출범식 날로 시점을 변경하겠다고 다시 통지했다.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사과를 경찰개혁위원회 출범에 맞추면서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을 겸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날 사과가 서울대병원의 백남기 농민 사인 수정 다음날 이뤄졌다는 점이다. 발표는 경찰청장이 했으되 발표를 압박한 것은 서울대병원의 조치였다. 경찰이 서울대병원에서 벌였던 부검 강행, 이른바 ‘시신 탈취 시도’가 있었던 것이 불과 9개월 전이다. 부검 논란을 이끌어내고 집행한 것이 바로 지금의 이철성 경찰청장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오늘 사과문에는 자신이 유족들의 멱살을 잡았던 참혹한 과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경찰의 사과를 압박한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수정 역시 순수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울대병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설득력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서둘러 회견을 끝내려다 기자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하에 청와대 주치의를 하다 임명된 서창석 병원장은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수정 발표 바로 전날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병원에 의사선생님은 없고 영혼없는 의료기술자만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수정과 경찰의 사과를 보며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사인 조작 시나리오’다.

기억하기 싫은 시나리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지난해 9월 20일. 한겨레신문이 ‘K스포츠 이사장이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문제의 제단을 연결짓고 국정농단의 실체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백남기 농민이 위독해 지셨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역시 이 즈음이다. 검찰이 부검을 할 것이라는 정황도 함께 포착됐다. 보도가 나가고 5일 뒤인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숨을 거두고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병사라고 적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부검을 강행했고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하지만 경찰도 박근혜 정권도 이 저항이 나쁠건 없었다. 경찰은 사인을 병사로 몰아 자신의 치부를 덮고 정권은 터져나오기 시작한 ‘국정농단’ 논란을 덮는 효과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인 조작 시나리오’의 골자다.

경찰의 공권력에 희생된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부역한 것이 바로 경찰과 서울대병원이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허둥지둥 내놓은 두 기관의 조치를 보며 ‘나라다운 나라’로 가기위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바뀐 것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 뿐이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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