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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의 Digital 道] 고물 노트북을 놓지 못하는 이유

이 글은 컴퓨터 업그레이드에 관한 기록입니다. 정확하게는 엽기적인 업그레이드에 관한 기록입니다. 제가 왜 엽기적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경과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로 갈 때까지 엄청난 고뇌의 시간만큼 약간의 설명도 엽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1. 끝없이 전락하고 있는 씽크패드

저는 2011년에 구한 씽크패드 T520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구닥다리 T520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씽크패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7열 키보드가 T520까지 유지되었으나, 그 다음 제품부터는 6열로 다운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본연의 기능에 양보가 없었던 아이비엠 시절의 씽크패드 브랜드가 중국의 PC 제조 업체 레노버로 넘어간 이후 끝없는 다운그레이드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씽크패드 마니아들은 매번 씽크패드가 짱X패드화될 때마다 “이건 아니야”, “다음 번엔 개선될 거야”라며 기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용산 레노버 A/S 센터에서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여태까지 참아 온 것이 이 때문입니다. 그 충성심으로 따지면 아이돌 스타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당하면서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극성팬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최근 결혼 과정에서 이십 년 이상 된 팬들을 서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 받는 A씨의 과거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A씨는 매번 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 왔는데,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오토바이 모델을 지정했고, 팬들이 돈을 모아 이 오토바이를 선물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세월 팬심으로 견뎌왔던 열렬 팬들이 실망한 후 이런 사례들이 계속 폭로되고 있는 중입니다. 씽크패드 마니아들도 더 이상 더러운 꼴을 안 보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참아도 결혼.. 아니 키보드 변경은 그 중 최악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키보드를 이 따위로 망가뜨린 레노버에 대한 비판이 폭주했지만, 아무리 반대가 많아도 한 번 망가진 키보드 배열은 되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트랙포인트의 클릭 버튼을 터치식으로 변경했다가 워낙 반발이 거세자 버튼식으로 되돌린 사례가 있고, 레노버 수석 디자이너가 레트로 씽크패드를 만들 지도 모른다는 떡밥을 날리고 있어 아직 팬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접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 십년의 전통을 가진 씽크패드에 대한 사용자들의 충성도는 전세계적입니다. 사용자들은 레트로 씽크패드란 추억 팔이 제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오는 모든 씽크패드가 레트로의 모습을 가지길 원하지만 더 얇게, 더 가볍게, 더 오래, 더 뽀대나게란 노트북 디자인 트랜드 상 더 이상 이전 같이 투박한 디자인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씽크패드는 더욱 더 망가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레트로 씽크패드:현 레노버 수석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힐이 씽크패드 본연의 모습을 담은 특별한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사용자들의 기호를 조사한 결과 나온 컨셉 제품입니다. 화면비, 로고 컬러, 무게, 내장 가능한 하드 개수 등에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키보드 만은 압도적인 비율(80.3%)로 7열을 선택했습니다.
레트로 씽크패드:현 레노버 수석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힐이 씽크패드 본연의 모습을 담은 특별한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사용자들의 기호를 조사한 결과 나온 컨셉 제품입니다. 화면비, 로고 컬러, 무게, 내장 가능한 하드 개수 등에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키보드 만은 압도적인 비율(80.3%)로 7열을 선택했습니다.ⓒ이미지 출처: http://blog.lenovo.com/tag/retro+thinkpad

12. 가볍고 얇으며, 고성능이면서도 배터리 오래가는 모바일 시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008년에 아이폰을 들고 나오면서 모바일이 대세가 되자, PC 분야도 이동성과 저전력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폰 이후부터 CPU의 발전도 성능 보다는 저 전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능 향상은 멈추어 버렸고, 얼마나 더 적은 전력으로 이전과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최신 CPU가 2010년 경의 CPU 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기도 합니다.

넷북이니 울트라 PC니 요란한 이름의 제품들이 다 이런 유행을 타고 나온 쓰레기들이었습니다. 인텔은 낮은 전력 사용량의 CPU를 출시했지만, 그만큼 성능도 낮은 것이었습니다. 대만 제조사들이 이 CPU로 무늬만 노트북인 제품을 양산했습니다. 한 때 공전의 히트를 한 eee PC는 작고 가벼웠지만 성능도 허접해서 도저히 업무에 쓸 수 없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제품들이 인터넷 웹서핑용이란 핑계로 여러 업체에서 대거 쏟아져 나왔지만 애플의 맥북 에어가 출현한 이후 모두 쓰레기 하치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잡스는 얇고, 가볍고, 아름다우면서도 쓸만한 성능을 가진 제품은 어떠해야 하는지 실제로 보여 줌으로써 경량 노트북의 청소부를 자임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맥북 에어는 활용도까지 높아 아직까지도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노트북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맥북 에어:2008년, 잡스는 서류 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퍼포먼스로 맥북 에어의 출현을 알렸습니다. 가볍고 얇으면서도 튼튼한 일체형인 바디, 오래 가는 배터리,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고성능… 잡스는 휴대용 경량 노트북을 재정의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쓰고 있는 1kg 이내의 노트북은 모두 맥북 에어의 모조품이라고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습니다.
맥북 에어:2008년, 잡스는 서류 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퍼포먼스로 맥북 에어의 출현을 알렸습니다. 가볍고 얇으면서도 튼튼한 일체형인 바디, 오래 가는 배터리,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고성능… 잡스는 휴대용 경량 노트북을 재정의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쓰고 있는 1kg 이내의 노트북은 모두 맥북 에어의 모조품이라고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습니다.ⓒ이미지 출처: http://www.theregister.co.uk

이후 인텔이 전력 대비 성능을 향상시킨 저전력 CPU 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최적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CPU의 성능이란 사용한 전력량에 비례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저전력 CPU는 성능도 낮아서 무게와 배터리 사용 시간을 따지는 경량 노트북에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반면 이런 최적화가 통하지 않는 고성능 CPU는 2010년 제품과 최신 제품의 전력량 차이가 없으므로 신형과 구형 CPU가 성능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히 고성능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워크스테이션급 노트북인 씽크패드에 저전력 CPU를 쓰기 시작하면서 신형 제품의 성능이 더 낮아지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13. 저 성능 CPU의 최신 컴퓨터가 구형 컴퓨터보다 빠른 까닭

실제로 최신 컴퓨터 특히 노트북의 CPU 성능은 이전보다 더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최신 컴퓨터가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SSD라는 빠른 저장 장치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SSD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하드디스크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합니다. SSD에 윈도우 시스템을 설치하면 하드디스크에서 2분 이상 걸리던 부팅시간이 30초 이내로 빨라집니다. SSD는 CPU 성능을 2배 이상 높이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응답성 향상을 가져옵니다.

2010년에 구입한 컴퓨터를 지금 사용하기에는 무척 느릴 것입니다. 그 이유는 메모리 용량이 작고 느린 하드디스크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대개 메모리를 2GB에서 4GB정도 사용했습니다. 하드디스크는 이제 끔찍하게 느린 물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CPU는 전혀 느리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2010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SSD로 바꾸면 최신 컴퓨터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메모리를 8GB나 16GB로 올리면 아주 날아다닐 겁니다.

하지만 SSD는 가격이 비싸 대용량이 필요한 데이터 저장용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용량도 상관없는 윈도우 시스템용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팔리는 용량이 주로 256GB이고 이 용량 대 제품 가격이 가장 저렴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서 아직도 윈도우 시스템을 하드디스크에서 쓰는 분은 SSD로 바꾸시기를 강력하게 권고 드립니다.

SSD는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하드디스크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가진 차세대 저장장치입니다. 50년 이상 된 기술에 기반한 하드디스크를 구닥다리 오디오 매체인 LP라고 하면, SSD는 최신 mp3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LP는 커다란 플라스틱 원판을 모터로 회전 시킨 후 원판에 새겨진 데이터를 물리적인 바늘을 접촉하여 읽어 내는 기기입니다. 충격에 약하고 보관에 주의를 해야 하는 점 뿐만 아니라 내부 동작면에서도 하드디스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드디스크도 회전하는 원판에 바늘을 가까이 대고 자기장으로 데이터를 읽습니다. 읽기 동작 중에 충격을 받으면 하드디스크 원판을 바늘이 긁어서 데이터가 사라집니다. 하드디스크 복구 업체에서 하는 작업도 고장 난 하드디스크의 바늘을 교체해가면서 긁힌 부위를 건너뛰고 데이터를 읽는 것입니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하드디스크는 결코 데이터 복구율이 100%가 될 수 없습니다.

요즘 가볍고 충격에 강한 1kg 내외의 울트라 노트북에는 대부분 SSD가 창작됩니다. 폭발적인 수요가 맞추어 생산량도 증대되고 있습니다. 낸드 플래시 제조 방법이 발전해 대용량 제품도 나오고 있으며, 밀집도가 증가한 만큼 가격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100배 이상이었던 SSD와 하드디스크의 가격 차이가 최근에는 5배 이내까지 좁혀지고 있습니다.

최신 SSD:SSD는 성능, 단위 면적당 용량에서 이미 하드디스크를 뛰어넘었습니다.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를 버리고 SSD를 위한 전용 인터페이스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초당 150MB 속도에 그치는 하드디스크에 비해 최신 SSD는 초당 3500MB의 속도를 자랑합니다.
최신 SSD:SSD는 성능, 단위 면적당 용량에서 이미 하드디스크를 뛰어넘었습니다.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를 버리고 SSD를 위한 전용 인터페이스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초당 150MB 속도에 그치는 하드디스크에 비해 최신 SSD는 초당 3500MB의 속도를 자랑합니다.ⓒ이미지 출처: https://www.extremetech.com/

14. 아직도 현역으로 쓸 수 있는 2011년의 노트북

제 T520도 SSD로 바꾼 후 완전히 새로운 노트북으로 변신했습니다. 15.6인치 FHD인 화면은 지금도 별 손색이 없는 스팩입니다. 2011년 당시 노트북에 달 수 있는 최고 사양의 CPU를 장착했고, 메모리를 16GB까지 빵빵하게 채웠으며, 최근에 512GB SSD로 업그레이드까지 했기 때문에 성능 면에서 최신 노트북에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CD-ROM을 빼고 대신 2TB 하드디스크를 단 덕분에 용량도 전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T520:씽크패드 본연의 모습을 지킨 제품, 빠르고, 견고하며, 확장성이 높고 안정적입니다. 다양한 입출력 포트는 현장에 데스크탑을 들고 갈 때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발표된 지 벌써 6년이  지났음에도 제가 이 제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T520:씽크패드 본연의 모습을 지킨 제품, 빠르고, 견고하며, 확장성이 높고 안정적입니다. 다양한 입출력 포트는 현장에 데스크탑을 들고 갈 때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발표된 지 벌써 6년이 지났음에도 제가 이 제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미지 출처: http://notebooks.com

물론 아무리 최강의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어도 업글병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사실 T520을 사자마자부터 T520에서 벗어날 생각을 했습니다. 업글병은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이니까요. 그래서 업글병이 도질 때마다 기변을 생각했지만 T520은 그나마 제대로 된 씽크패드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모델이라 간단히 기변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신 씽크패드를 살펴 볼 때마다 최신 제품이 오히려 T520보다 허접했기 때문에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T520은 성능 면에서도 최근 하드웨어에 전혀 뒤지지 않아서, 느려서 바꾼다는 핑계도 댈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T520 이후에 나온 T530, T540, T550, T560, T570 등은 긴 사용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저전력 CPU를 사용하고, 두께를 줄이기 위해 CD-ROM을 제거하고, 얇고 가벼운 유행을 따라가려고 키보드를 간소화하는 등 삽질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제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그나마 정통 씽크패드 라인업의 계보를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에서 충실한 제품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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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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