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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의 Digital 道] 창작 지망생에게 없는 11가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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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중할 수 없다

바쁜 시간 속에서 창작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시작 부분은 아니지만 떠오르는 것들도 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 대비 작업량 즉 효율은 극히 떨어집니다. 친구들의 술자리도 마다하고, 즐겨보는 예능 프로도 끊고 만든 혼자만의 이 아까운 시간에 하는 일은 창작 행위가 아니라 쓸데없는 웹 서핑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창작 작업 모드로 전환되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워드, 포토샵을 열고 일을 시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저는 순간적인 모드 전환은 불가능했습니다. 실제 작업에 들어갈 때까지 낭비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열어도 곧바로 워드를 열기보다는 일단 딴짓을 먼저 하게 됩니다. 귀중한 시간에, 해야 할 작업이 있음에도 웹 서핑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 한심스럽지만 이상하게도 이럴 때 인터넷의 자료들이 평소보다 훨씬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하다가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도 잊고 창작을 위한 시간 전부를 웹 서핑에 소모하곤 합니다.

실제로 지금 쓰고 있는 이 문단과 앞 문단 사이에는 2시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원고지에 글을 쓰거나 타자기로 타이핑하는 것과 달리 컴퓨터로 작업하면 메신저나 메일 등 집중을 방해하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워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결국 웹에 빠지게 됩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결코 창작 모드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조용히 홀로 앉아 있으면 잠이 옵니다. 잠이 오면 억지로 깨어 있기보다 잠깐 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창작을 위해 앉았을 때 오는 잠은 지독한 통과의례 같은 것입니다. 일상에서 창작 행위 사이의 경계를 넘어가야하는 스트레스가 잠으로 와서 그런지 자도 자도 피곤하고, 억지로 깨지 않는 한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자게 됩니다. 책상에서 불량한 자세로 자는 것이 힘들어 피곤이 더 쌓이고, 작업은 안 하고 잠이나 자고 있다는 자괴감이 생겨, 그걸 잊기 위해 다시 잠에 빠져드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뭔가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고 하면 잡 생각들이 머릿속이 머물러 나를 괴롭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래 전에 나를 괴롭혔던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 괴롭힘을 당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분노에 쌓입니다. 수많은 아픈 상처의 기억 때문에 몸은 편하게 앉아 있지만 마음은 지옥에 빠져 있습니다. 번뇌에 사로잡히면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번뇌를 잊기 위해 또다시 인터넷에 빠져들게 됩니다. 놀랍게도 인터넷을 하는 순간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여태까지 미뤄뒀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급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이럴 때에 해야 할 일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물론 이 따위 가망 없는 창작 작업에 매달릴 시간에 빨리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글쓰기를 방해하는 번뇌일 뿐입니다. 번뇌를 벗어나는 길은 창작 행위에 집중하는 것 뿐입니다. 어차피 늦은 일이므로 할일 목록에 적어 놓고 나중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디든 앉자마자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면 집중이 잘 되는 장소를 찾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런 장소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신에게 맞는 곳을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조용한 도서관일수도 있고, 약간의 소음이 있는 카페일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잘 되는 사람, 혼자 있는 사무실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집중이 잘되는지도 찾아보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이, 누구는 한 밤중이 좋은 반면, 낮에 창작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때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며 아침형 인간형이 유행한 적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오래 계속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시간과 공간을 찾는다면 창조적인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씨는 늦게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 생활을 평생 동안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글쓰기에 들어가면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밥도 죄수처럼 구멍으로 받아 먹으며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글 쓰기에 고통받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정말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창작자들이 밤에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음악의 대가 엔리오 모리코네는 아침 일찍 작업실에 출근하여 마치 직장인이 일상 업무를 처리하듯이 오늘 납품해야 할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만화가 허영만씨도 8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는 창작자입니다. 이렇게 몸을 망치지 않는 창작 방식이 가능해야만 오래도록 높은 품질의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도서관에 갑니다. 조용한 가운데 각자 자기 일에 몰입해 있는 도서관의 분위기가 나도 모르게 집중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간순간 잡생각이 나고, 웹 서핑에 빠지기도 하며, 잠도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는 집중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도서관을 선호합니다. 딴짓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자각되면 잠깐 물이라도 마시러 나옵니다. 밖에서 바람을 쐬는 동안 들어가서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잘 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마감 기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전문 창작자가 되면 언론 매체가 요구하는 정해진 날짜까지 작업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약속한 마감 기한이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므로 마감날이 되면 머릿속에 없던 내용까지 강제로 뽑혀 나옵니다. 매체에 기고 요청이 없는 아마추어라면 스스로 마감을 만들면 됩니다. 블로그를 한다면 예고를 함으로써 고정 방문자의 독촉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혹시 지인 중에 여러분들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팬이 있다면, 이런 분들에게 작업 감시를 부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팬이 작업하는 동안 얼마나 작업을 했는지 매시간 체크하는 문자를 보내도록 하면 작업 성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제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원고 계약 없이 제 스케줄대로 자유롭게 작업할 때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정말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확인 문자를 받으면 곧바로 전체 화면 캡쳐를 보내 검사 받는 방법을 쓴 적도 있습니다. 웹 서핑에 빠져 있는 동안, 언제 확인 문자가 불시에 날아들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합니다. 딴짓할 때 확인 문자를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면서 서둘러 워드를 열게 됩니다. 스스로 정한 규칙임에도 당할 때마다 기분 나빴지만 작업 효율에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창작물에 관심을 주지 않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어렵게 만든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습니다. 물리적인 창작물이 만들어져야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텐데, 집중을 하지 못해 창작물을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환경을 조성하든, 외부적인 감시 방법을 사용하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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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속할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상상 속에서 살을 붙여 나가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오래될수록 문제가 생깁니다. 생각 속에 빠지게 되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창작물로 형상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너무 이 생각에 몰입하는 바람에 현실 생활이 덧없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고뇌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창작물로 쏟아내는 것 뿐입니다.

창작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충만하더라도 실제 창작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하면 참담한 깨달음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머릿속에 엄청난 내용을 쌓아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글로 써보면 A4 용지 세 페이지를 넘기기 힘듭니다. 기껏 글로 쓴 내용도 개략적인 얼개나 추상적인 선언에 불과함을 깨닫게 됩니다. 머릿속의 화려한 이야기를 워드로 옮겨 적고 나서야 그것이 그저 앙상한 뼈다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사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태까지 알고 있던 주장들과 별다를 것도 없는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헬조선이라고 떠들어 왔지만, 만약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글로 적어보고 나서 절망한 적이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아마 거의 대부분은 뻔하고 실효성 없으며 구태의연한 개선책 몇개를 적고 나면 더 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억지로 써내려 가면 조악한 문장의 나열에 그치고 맙니다. 억지로 쓸 때는 타자를 칠 때마다 오타가 납니다. 단어는 불만스럽고 어색하며, 문맥은 서로 호응하지 않습니다. 창작 행위는 머릿속에 그린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벽돌을 한 개씩 쌓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계획이 거창하다고 실제 작업 과정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개의 벽돌을 잘못 쌓으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에 벽돌을 쌓아 나가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조악한 세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서 세세한 내용을 기록하려고 시도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성과물은 만들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집을 나와서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간 다음,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다가 싸운게 된 상황을 기술한다면, 친구에게 말로 이야기 하듯이 그 과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글을 쓰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로 이를 설명하려면 조급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는 약속 시간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갔으나 상대와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고 말았다” 이런 얼개 밖에 쓸 수 없습니다. 집을 나섰을 때의 날씨,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 등의 묘사로 주인공의 심리를 설명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그저 빨리 약속로 달려가야 합니다. 가로수는커녕 스쳐 지나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애써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삽입하더라도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대화밖에 쓸 수 없습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적어도 300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각 단계에 집중하는 차분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훈련되지 않은 창작자는 이런 차분함을 갖기 어렵습니다. 추리 소설의 경우 작가가 마지막 순간의 진실을 감춘 채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오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페이지에 걸쳐 조금씩 복선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마추어 창작자들은 첫 페이지부터 정형화된 인물이 평면적인 대화와 행동을 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완전히 잃게 만듭니다.

기술 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기술 문서라도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하고, 매 페이지가 전체 내용을 위해 적절히 서술되어야 합니다. 기술 보고서를 쓰는 사람도 훌륭한 한 명의 이야기꾼이 되지 못하면, 그 보고서는 생명력을 잃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버려지게 됩니다.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총론을 생각하면서 각론을 풀어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이란 반복을 하는 과정이므로 수많은 창작 행위를 계속함으로써, 첫 세 페이지를 넘어 창작 행위를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문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주제로 일정 분량의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추어에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 창작 작업에서 분량 만들기를 계속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업에 대한 공포입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장소에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피곤한 듯해서 미리 잠도 잤고, 웹 서핑도 충분히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핑계를 댈 수 없는 상황에 왔으므로 무조건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갑자기 가슴이 허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 막막한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뭔가 다른 핑계가 필요합니다. 작업을 피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럴 때는 컴퓨터 폴더 정리도 중요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됩니다.

정말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을 수록 그 공포감은 더 커집니다. 창작자가 느끼는 이 감정은 마치 담배 중독자가 담배를 끊은 후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허무함과 비슷합니다. 창작의 공포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글 한 편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나도, 사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글쓰기 작업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세 페이지는 쓸 수 있습니다. 억지로 삼십 페이지까지 분량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좌절하는 것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백 페이지 이상을 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직업이 창작자라서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이 창작 작업뿐인 전문 창작자들도 이정도 분량을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물며 휴식 시간을 억지로 빼서 작업을 해야 하는 아마추어 창작자가 이런 분량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에서 전문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정 분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만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한가지 주제에 대해 장, 절로 나누고 각 절을 세분하여 작업하는 방법의 장점이 나옵니다. 하루 세 페이지 원칙도 이런 용도로 꼭 필요한 전략입니다. 그리하여 300페이지의 글을 완성할 때까지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작업에 몰두하는 날들이 필요합니다. 창작 행위를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저 우직하게 반복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평생을 창작자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살아왔습니다. 많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에 쓴 글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읽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한가지 주제로 글 쓰기를 계속해서100페이지를 넘길 수 있기까지는 45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 때까지 수 차례의 긴 글 쓰기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 고통 속에 남은 것은 일관된 흐름도 갖추지 못해 잡학 사전 같은 기이한 글 덩어리 밖에 없었습니다. 이 습작의 시간을 견딘 후 겨우 100페이지 넘기기가 가능했습니다. 10km 단축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듯이, 100페이지를 넘기고 나자 300 페이지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을 괴롭히는 것들은 창작물로 형상화 시켜야 편안해집니다. 제가 끊임없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괴로움을 덜어내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당신도 이런 괴로움을 겪고 있나요?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창작을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물론 처음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들을 자기 완결적인 창작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길고 고통스러운 습작의 시간을 버텨내야 합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있다면 여러분들도 창작자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시기는 내년, 다음 달 혹은 언젠가 시간이 날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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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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