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17년 상반기 특별했던 음반 37장
3호선 버터플라이 5집 ‘Divided By Zero’
3호선 버터플라이 5집 ‘Divided By Zero’ⓒ오름 엔터테인먼트

요즘 가끔 뮤지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음반, 음악을 기록해서 담은 물체. 뮤지션의 노력이 결집된 총체이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상품. 그런데 음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는 음반의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알고 있듯 테크놀로지의 변화 때문이다. 이제는 음반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다보니 이제는 다들 음반보다 음원에 더 익숙하다. 실제로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시디를 선물해도 들을 수 있는 재생기기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온라인으로 음악을 듣는 풍토에 맞춰 싱글의 가치를 극대화하지 않으면 안되다보니 정규음반을 만드는 일은 일종의 팬 서비스처럼 되어버렸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관념과 습관의 변화보다 빠르다. 음반을 500장에서 1,000장 정도 찍긴 하지만 판매량은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음반을 내야 할지, 음반이라는 단위를 고수해야 할지 갈수록 고민스럽다. 이대로 간다면 음반이라는 곡 묶음 형태는 존재하더라도 물성을 가진 물체로서의 음반은 갈수록 사라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아직은 음반을 만드는 이들이 많다. 올 한 해를 절반쯤 보낸 6월말, 어떤 음반들이 돋보였는지 복기해본다. 물론 대중음악계를 몇 장의 음반으로 복기하는 것 역시 과거의 전통에 가깝다. 음반만 되짚지 않고 음원과 뮤직비디오, 콘서트와 페스티벌, 방송과 소셜미디어까지 되짚어야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복기할 수 있겠지만 음반에 익숙해진 세대는 역시 음반을 떠올리는 편이 편하다. 아니, 판매량이나 인기, 화제와는 무관한 작품성이라는 음반의 프레임.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 PART 1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 PART 1ⓒ기타

동굴을 만들듯 자신의 방을 만들어낸 음반들

상반기에 나왔던 수많은 음반들 가운데 듣는 순간 다시 듣고 싶어진 음반, 들으면서 동굴을 만들듯 2017년의 시간에 자신의 방을 만들어낸 음반들은 대략 서른 일곱장 쯤이다. 물론 그 기준은 전적으로 나의 기준이다. 그 음반들을 장르별로 나눠본다. 록에서는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 3호선버터플라이의 [Divided By Zero], 스카웨이커스의 [The Great Dictator],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 로다운30의 [B], 혁오의 [23], 바이 바이 배드맨의 [너의 파도], 아도이의 [Catnip], 아이엠낫의 [Hope], 검정치마의 [Team Baby], 언니네 이발관의 [홀로 있는 사람들], 짙은의 [Uni-Verse], Various Artists의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 데드버튼즈의 [Rabbit]이 있었다. 일렉트로닉 음악 중에서는 디 앨런의 [Allen's Alien], 예서의 [No City For Love], 이디오테잎의 [Dystopian], 예인의 [5]이 스스로 기억되었다. 힙합 음반 중에서는 코드쿤스트의 [Muggles' Mansion], 쿠마파크의 [New Type], 와비사비룸의 [Vibe], 화나의 [Fanaconda], 이그니토의 [Gaia] 음반이 강력했다. 팝 음반 중에서는 웨스 에이치큐의 [Clayheart], 안녕의온도의 [사랑에 관한 각자의 기억],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 태연의 [My Voice]에 마음이 움직였다. 알앤비에서는 진보의 [KRBN2 Part 2] 음반이 뜨거웠다. 그리고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중에서는 김준범의 [Human Emotions], 이부영의 [Songs of Michel Legrand], 김철수&오진원의 [我], 11의 [Transparent Music], 김오키의 [fuckingmadness], 이준삼의 [A Door], 조윤성&김마리아의 [I'm Old Fashioned], 나윤선의 [She Moves On], 황호규의 [Straight, No Chaser] 음반이 여러 번 나를 찾게 만들었다.

장르를 보면 록과 재즈가 좀 더 많은 편인데 이는 나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포크나 헤비니스 음반 중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긴 음반이 적지만 올해에도 여러 장르에서 좋은 음반들이 고르게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이라면 내가 지목하지 않은 음반들을 지목하기도 할 것이니 굳이 이 리스트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

혁오(HYUKOH)
혁오(HYUKOH)ⓒ두루두루amc

특별한 언어를 가진 음반들

장르와 경력의 차이에 맞게 여러 뮤지션들은 서로 다른 메시지와 방법론으로 자신의 음반을 완성했다. 내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들의 일관된 특징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묵직한 메시지들이 담긴 음반들이라는 점이다. 요즘 대중음악에 진지한 성찰과 고뇌가 없다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이 음반들에는 자신의 존재와 관계에서 출발한 질문과 상처, 반성, 깨달음, 다짐이 깊게 담겨있다. 그뿐 아니다. 한정된 인간 관계를 넘어 세계 자체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기도 하고,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은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뮤지션은 낙관적이고 어떤 뮤지션은 비관적이며 어떤 뮤지션은 분노하고 있지만 이 모두 인간의 모습이다. 그저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메시지를 생동감 있고, 다의적으로 재현해냄으로써 듣는 이들 역시 공감하고 성찰하고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음반들의 언어는 모두 특별하다.

음악적 방법론의 차원에서는 옛 음악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기도 하고, 새로운 음악언어에 대한 도전의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장르 언어를 고수하지만 장르 언어의 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뮤지션은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통해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면서 음악적인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라 믿는 이들은 자유롭게 소리를 더하거나 빼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운드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균형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음반들은 최종적으로 근사한 소리의 집으로 완성되었다. 그 집에 들어가 보면 어떨 때는 집의 모습이나 집을 지은 이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하지만 어떨 때는 집은 돌연 거울로 돌변해 집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의 자신은 이미 지나온 자신이기도 하고, 바로 지금의 자신이기도 하다. 그저 찰나의 자신이기도 하고, 오래 지속되는 자신이기도 하다. 자신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에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지금 보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보게 될 모습이지만 말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보이는가. 느껴지는가. 음악 속 수많은 이야기들이. 2017년 대중음악의 인간학과 인문학이. 대중음악의 현주소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