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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의 Digital 道] 씽크패드의 종말  

(지난 이야기) 아이폰 출시 이후 PC 분야까지 저전력-경량화 전쟁에 뛰어드는 바람에 최신 노트북이 오히려 성능이 더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함으로써, 새로운 씽크패드를 구입할 이유가 사라졌지만, 레노버가 제 정신이 돌아와 고성능 씽크패드 P70을 발표했는데….

20. 씽크패드 P70으로 업그레이드를 포기한 이유

저렴한 가격에 씽크패드 P70을 구하기 위해 시간만 되면 이베이를 뒤지곤 했습니다. 최고 성능의 모바일 제온 CPU를 장착한 제품은 거의 삼천 달러 가까이 가격이 올라가므로, 그보다 한 단계 낮은  i7 급 CPU 를 선택하면 150만원 대에 P70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가격은 이베이의 리퍼비시 제품 가격입니다. 새 제품은 i7이 아닌 그보다 낮은 성능의 CPU인 i5 기본형에, 고해상도UHD 화면만 추가해도 200만원을 가뿐히 넘습니다. 리퍼비시는 반품된 제품을 손봐서 좋은 상태로 판매하는 제품을 말합니다.
 
저는 한 십 년 전부터 노트북을 이베이에서 중고나 리퍼비시 제품을 경매로 사왔습니다. 씽크패드는 고장이 잘 나지 않고, 고장 나더라도 부품을 직접 구입해서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베이에서 쓸만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으니까요.

P70 출시 초기에는 아무래도 최신 제품이라 경매 물건이 잘 뜨지 않고, 간혹 나와도 경쟁이 붙어 경매가가 엄청 높게 형성되었습니다. 사실 쓸만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사려면 후속 제품이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고성능 제품은 중고라도 가격 거품이 심하기 때문에 내장 CPU 정도만 고성능이고 나머지 부품은 저가형인 제품을 싸게 구해서 성능 업그레이드를 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액정, 메모리 등은 따로 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싼 반면 고성능 모바일 CPU는 중고도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FHD 해상도 액정이 달린 노트북을 구한 후 이베이에서 UHD 액정을 따로 사서 갈면 1~200달러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와 하드디스크, SSD도 용량이 작거나 아예 장착이 안 된 노트북을 구한 다음 국내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쌉니다. 

어떻게 하든 원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노트북에 150만원 이상을 투입해야 합니다. 맨날 이베이에서 경매 물건 뒤지는 것이 일이지만, 한 번 업글을 감행하면 목돈이 깨지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것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씽크패드 P70:3840x2160@60Hz 해상도의17.3인치 IPS 액정, 모바일 i7은 물론 Xeon CPU도 가능. MXM 외장 그래픽 카드, 모니터 캘리브레이션, 필요한 모든 입출력 포트까지 내장한 말 그대로 플래그십 노트북. 게이밍 노트북과 달리 있을 것만 갖춘 깔끔하고 단정한 노트북입니다. 물론 170W 어댑터까지 더하면 무게가 3KG이 넘습니다.
씽크패드 P70:3840x2160@60Hz 해상도의17.3인치 IPS 액정, 모바일 i7은 물론 Xeon CPU도 가능. MXM 외장 그래픽 카드, 모니터 캘리브레이션, 필요한 모든 입출력 포트까지 내장한 말 그대로 플래그십 노트북. 게이밍 노트북과 달리 있을 것만 갖춘 깔끔하고 단정한 노트북입니다. 물론 170W 어댑터까지 더하면 무게가 3KG이 넘습니다.ⓒ이미지 출처: http://shop.lenovo.com

P70 출시 초기에는 중고 물량 차체가 없었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중고나 리퍼비시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경매에 참가해보기도 했고 가격이 적당한 즉시 구매 제품을 결제하려고 한 적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모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베이에 들락거린 시간 만큼이나 리뷰와 사용기를 열심히 읽고, 실물 사용 동영상과 분해 이미지를 보는 횟수도 많아지면서 이 제품을 구할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씽크패드는 중고도 비싸므로 일단 충동적으로 구입한 후 적응해 가는 것이 최선인데 결국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P70을 조사할 수록 단점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역시 키보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6열 키보드 배열도 최악인데 거기다가 쓸데 없이 오른쪽에 숫자 키패드까지 집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데스크탑에서도 키패드가 빠진 텐키리스 제품이 대세입니다. 아무리 P70이 커서 공간이 남는다고 해도 노트북에 텐 키를 우겨 넣은 모습이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키보드 위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T530까지는 그래도 키보드가 중간에 위치했지만 후속 버전인 T540부터는 텐 키를 넣느라고 키보드와 트랙패드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치우친 키보드를 사용 해 본 분들에 따르면 몸이 틀어지는 느낌이 난다고 하더군요.
 
모니터 품질도 별로였습니다. 물론 3840x2160 해상도의 커다란 17.3인치 모니터를 1920x1080@HiDPI 모드로 쓸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씽크패드는 원래부터 모니터 액정이 허접했었는데 P70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IPS액정이긴 하지만 FHD 해상도 제품 뿐만 아니라 UHD 해상도 제품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1. 인텔이 쪼잔한 이유

그래픽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바일 제온은 i7 CPU의 P530내장 그래픽에 비해 성능이 1.5배 이상 좋은 “iris pro graphics P580”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바일 i7 CPU 중에 P580이 들어 있는 제품도 있지만 이런 CPU 는 단품으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인텔은 P580그래픽이 내장된 CPU를 자사의 미니 PC인 NUC제품에 아예 납땜해서만 파는 치사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텔 NUC 브랜드의 소형 컴퓨터 제품인 “skull canyon”: i7-6770HQ CPU(i7-XX70에서 70은 p580 그래픽이 내장되어 있다는 뜻), thunderbolt 3, USB 3.1 Gen2 Type-C, PCIe Gen3 SSD 지원, 4K@60HZ DP, HDMI 2.0, UCFF보드, 21.1cm x 11.6cm 두께 2.8cm의 작고 성능 뛰어난 미니 PC. 인텔은 이 제품에 들어가는 스카이레이크 CPU 라인업에만 hdmi 2.0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텔 NUC 브랜드의 소형 컴퓨터 제품인 “skull canyon”: i7-6770HQ CPU(i7-XX70에서 70은 p580 그래픽이 내장되어 있다는 뜻), thunderbolt 3, USB 3.1 Gen2 Type-C, PCIe Gen3 SSD 지원, 4K@60HZ DP, HDMI 2.0, UCFF보드, 21.1cm x 11.6cm 두께 2.8cm의 작고 성능 뛰어난 미니 PC. 인텔은 이 제품에 들어가는 스카이레이크 CPU 라인업에만 hdmi 2.0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intel.com

 
인텔은 세가지로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우선 I7 CPU에서 고성능 내장 그래픽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P580그래픽을 내장한 i7 CPU는 자사 NUC 제품에 “납땜”을 해서만 팔고 있어서 시장에서 단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쓰는 해킨 방식의 애플의 맥 운영체제는 (외장 그래픽과 내장 그래픽을 필요에 따라 전환하는) 옵티머스 그래픽 방식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나마 좀 더 높은 성능을 내려면 P580같은 고성능 내장형 그래픽이 필요한 데 이걸 쓸 수가 없어서 화가 났습니다.
 
두번째로 꼭 P580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구할 수 있는 CPU 중에서 P580을 내장한 것은 모바일 제온 뿐이므로 끔찍할 정도로 비싼 모바일 제온 버전 P70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비싼 노트북을 팔면서P580을 내장한 i7 CPU를 옵션으로 제공하지 않는 바람에 엄청난 지출을 하게 생긴 것입니다.
 
세번 째는 그래픽 부분에 이중 부담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제온은 원래 서버용이라 그래픽이 내장되지 않은 제품도 있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아예 내장 그래픽이 없는 CPU가 오히려 낫습니다. 내장 그래픽이 없다면 맥에서 외장 그래픽을 인식하므로 노트북의 고성능 외장 그래픽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픽이 내장되지 않은 모바일 제온이 없어 결국 이중 부담을 해야 합니다. P70은 최고 성능 제품이라 무조건 외장 그래픽 카드가 장착되어 있는데 (옵티머스 방식이라)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은 내장 그래픽 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바일 제온 중에서 내장 그래픽이 없는 제품을 구할 수 있다면 CPU 구매 비용도 절약하고, 맥에서 고성능 그래픽도 활용할 수 있겠지만 인텔은 모바일 제온에 그래픽을 내장했으므로 이런 선택도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인텔이 파는 소형 컴퓨터인 NUC에 들어가는 CPU 는 “납땜”이 되어 있어 NUC를 사서 CPU만 빼 P70에 끼워 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인텔의 치사한 상술 때문에 고성능에 저렴한 제품 구입이 불가능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따져봐도 P70은 키보드와 액정도 별로이고, 맥에서는 쓸모 없는 외장 그래픽을 비싼 돈 주고 함께 사야 하며, 그나마 성능이 좋은 P580내장 그래픽을 쓰려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제품입니다. 사 봤자 쓸 때마다 열만 받을 것 같아서 결국 구매를 포기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업그레이드 할만한 씽크패드는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히 씽크패드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22. 흘러 가 버린 씽크패드의 추억

씽크패드를 사용한지도 어언 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1997년, 얇고(그 때 당시 기준으로), 단단하며, 화면 크고(역시 그 때 당시 기준), 아름다웠던TP 560에 꽂힌 이래, 상판을 열면 키보드가 변신하는 버터플라이 키보드의 710C를 가지고 싶어 환장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710C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곤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북간도라 부르는 용산의 외진 상가 어디쯤에서 다 낡아버린 놈을 만져 보는 것으로 제 호기심은 끝났습니다. 키감이 개떡같더군요.
 
그 후 390X, 570E, 240X, A22P를 거쳤습니다. 구닥다리 제품인 770Z를 되살려 보려고 애쓰던 시절도 거쳤습니다. 언제나 노트북은 씽크패드였고 다른 제품이 눈에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 세월이 무상하네요. 그 후에 제가 쓴 몇몇 제품이 기억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을 썼는지 이젠 까맣게 잊어먹고 말았습니다. 씽크패드 제품 리스트를 뒤져보고서야 X40과 X60 타블렛을 썼던 기억이 났습니다. SSD 테스트에 열심이던 2008년 경에는 T43도 썼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만의 기억들을 나열하는 것이 저에게는 추억을 상기 시키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혹시 한 두 명쯤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 본 분들을 향수에 젖게 할 수는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그저 여행 중에 찍어온 남의 셀카를 감상하는 기분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도 씽크패드의 종말을 추억하며, 또한 제가 왜 일체형 컴퓨터를 만들어야 했는지 알려 드리기 위해 지난 시절에 대해 약간의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Lenovo ThinkPad T61
Lenovo ThinkPad T61ⓒ인터넷 커뮤니티

T61은 제가 잊을 수 없는 씽크패드입니다. 2010년 언젠가 중고로 구입하여 본격 글쓰기 여행을 할 때 들고 다녔던 노트북이니까요. 저는 그 당시 전문 글쟁이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1년 이상을 전국 도서관 투어를 다녔습니다. 잠은 개조한 소나타에서 자고, 밥은 한적한 논두렁에서 라면으로 때우고 다녔습니다. 

도서관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했는데 사람이 많은 도서관에서는 눈치가 보여 고양이 세수만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귀찮아져서 그냥 양치질만 대충하고 지낸 탓에 머리에 개기름 흐르는 거지 꼴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경상북도에서 시골길로만 해서 경상남도로, 경상남도 바닷가를 따라 사천, 여수, 광양, 보성, 강진… 까지 가면 거의 도사가 됩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면 내면 속으로 깊고 깊게 빠져듭니다. 

이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글 솜씨가 저절로 샘솟기도 합니다. 외모는 비록 거지꼴이지만 내면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생활을 2년 가까이 한 덕에 책 한 권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낸 후의 삶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후 한 오 년 동안 바쁘게 뛰어 다닌 것 같네요.  90년대 리눅스에 빠져서 산 지 10년 만에 출사를 하여 2년여 동안 속에 담았던 것을 다 소모하고 벤처 생활을 끝냈는데, 2011년 책을 낸 이후 6년 이상 쏟아 내기만 하던 시간을 보낸 후 이제서야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T61은 제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해 준 제품입니다. 작가가 된 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T520입니다. 제가 구입한 씽크패드 중에서 제일 오래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 후 아무리 기다려도 제가 원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으니 이제 그만 씽크패드를 놓아줄 때도 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레노버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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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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