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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과 경동교회는 모두 한 사람의 작품입니다”

건축가 김명식의 '건축학 개론' 강좌가 10월 14일(토), 21일(토)에 열립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김수근이라고 추앙받는 건축가가 있었다. 1세대 건축가로 한국 현대건축의 기틀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산성당, 공간사옥, 올림픽 주경기장 등을 건축했다. 1977년 타임 TIME 지는 그를 서울의 로렌초로 추켰다. 장엄한 성당의 벽과 빛을 통해 신 神의 숨결을 재현했던 그가 인간지옥 남영동 대공분실을 꼼꼼하게 설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건축가 김명식은 밀라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남영동 대공분실, 평화의 소녀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세월호 추모공간을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 평화의소녀상
왼쪽부터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 평화의소녀상ⓒ서대문형무소 사진제공 : 김명식

끌려 들어간 피해자는 1층과 5층을 곧바로 잇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취조실로 올라갑니다. 취조실은 대개 지하의 어두컴컴한 곳에 있게 마련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취조당하는 사람에게 심리적 위압감을 주고, 고문에 의한 비명을 묻을 수 있고, 혹여 있을지도 모를 투신자살을 막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 지하공간입니다. 그런데도 취조실을 굳이 5층에 둔 걸 보면 건축가가 생각는 또 다른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가려진 피해자는 자신이 끌려온 방향이나 끌려 올라간 층수를 기억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층에서 쉬지 않고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는 대략 3m 간격으로 있어야 할 계단층이 없으므로, 자신이 몇 층에 도달했는지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치감각의 상실과 그로 인한 공포는 바로 여기서 절정에 달합니다.
타공판은 저음의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흡음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고음의 주파수는 벽에서 튕겨 나오기도 하지만 벽을 파고들어 반대편 벽면 너머로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옆방에서 벽면을 타고 전달되는 가늘고 날카로운 비명은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결국 옆방의 비명을 듣는 피해자는 간접 고문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 김명식.『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2017. 뜨인돌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은 잘 만든 기숙사 혹은 대학의 연구동 같다. 유독 5층 고문실의 창문만 세로형이다.  탈출을 막으면서 일그러진 건물의 조형미까지 챙겼다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은 잘 만든 기숙사 혹은 대학의 연구동 같다. 유독 5층 고문실의 창문만 세로형이다. 탈출을 막으면서 일그러진 건물의 조형미까지 챙겼다ⓒ김명식 제공

그는 건축가에게 윤리를 묻고 있다.

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기록했던 의사나, 늙은 농민의 머리에 물대포를 정조준했던 경찰관이나,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들 줄초상이 났을 때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과징금부과로 무마했던 담당 공무원이나, 이 사건의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시간을 끌다 기소중지를 결정했던 담당 검사나, 소소하게는(?) 단식하는 세월호 아빠 앞에서 ‘폭식’으로 조롱했던 그 젊은이나 모두 직접적인 가해 책임자는 아니다.

‘남영동’에서 인간도살을 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며 “(나를) 배신하지 않는 나라를 찾다 결국 하늘나라를 찾았다.”는 간증을 하며 목사로 둔갑할 수 있다. ‘절대 악’이 ‘상대적 선의’로 둔갑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아직 있다.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끔찍한 사회적 고통과 국가범죄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영화 남영동 1985 스틸컷
영화 남영동 1985 스틸컷ⓒ영화 남영동 1985

“상처는 기록이 되고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사회적 고통이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고통이 공감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가 고통을 대하는 방식과 그것으로부터 얻는 교훈은 자연스럽게 역사로 편입되고, 고통의 기억을 재현하고 형태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이나 형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과장이나 혼란, 불안 따위에 굴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분명하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마지막 대목에 저자가 박아놓은 문구다. 제 딴엔 미학을 공부한다고 하는 후배가 이 책을 추천했다. 건축가는 건물 짓는 사람인 줄만 알았지, 도시와 역사, 조형물을 인문학적으로 읽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저자는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저명한 건축가가 아니어서 독자에게 누를 끼치기 싫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이 지은 그럴듯한 건축물조차 없다고 한다. 궁금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건축 거장에서 배운 이가 한국에 와서 새로운 트렌드의 건물 짓는 것 말고 낡은 건축물에 관한 글을 쓰다는 것이. 이번 호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로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선 새로운 길이다. 인터뷰는 작은 교회 옆마당의 카페에서 했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뜨인돌

금영재 먼저 책 이야기를 하죠. 책이 올해 5월에 나왔으니, 시기적으론 좀 늦은 거 아닌가요? (정권 바뀌기 전에 나왔으면 더 큰 위로가 되었을 텐데)
김명식 아. (한숨) 많이 늦었죠. 원래 2015년 겨울에 원고를 마감했거든요. 그때 박근혜 정권이 아주 살벌할 때죠. 그런데 출판사에선 더 세게 써달라고 해요. 제 수준엔 이것도 꽤 세다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서 걱정을 좀 했어요. 한국 건축의 대부 김수근을 건든다는 것도 지금 학계에서 쉽지 않은 일이고, 더구나 세월호, 평화의 소녀상 등 출판사가 정권에 밉보이기 딱 좋은 소재였거든요. 한차례 출판사가 바뀌고 이후 출판사 사정으로 밀리다 급하게 밀어붙였죠.

금영재 건축가는 좀 멋있게 보입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끝에 나오는 제주도 건물도 부럽고,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도 하필 제일 잘생긴 장동건이 건축가로 나옵니다. 왜 건축을 선택했습니까?
김명식 스케치를 좀 잘하는 편이었어요. 입상도 꽤 했고요. 미술의 기본이 정확한 사물의 형태를 잡아내는 거잖아요? 건축은 특별히 더 구체적인 형태의 스케치를 해야 돼요. 자기 생각과 추상적인 개념이 스케치를 만나 구체화되죠. 스케치를 잘한다는 건 아무래도 사물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림 실력이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도움이 됩니다. 이런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야가 디자인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1990년대엔 예대에 디자인과가 있었거든요. 공간을 디자인하는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공간에 대한 이해, 이를 디자인하는 내공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접 학문인 건축을 알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건축을 공부했어요. 자연스레 공간과 건축, 나아가 도시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공부를 박사과정 동안 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앞에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앞에서ⓒ김명식 제공

금영재 네덜란드로 유학 가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박사학위, 그리고 현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어요. 유학, 경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언어의 장벽도 있고.
김명식 저는 독하거나 목포를 잡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좀 허술한 구석이 많은...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유학한 것이 아니고, 2000년도 이후 세계 건축 거장들이 네덜란드 출신이 많았고, 제일 좋아하는 반 고흐의 나라이기도 하고 한마디로 끝없는 호기심 때문에 가게 되었습니다. 열망은 있었지만, 막상 가선 언어와 실력 탓으로 엄청 고생했어요. 정말 혼쭐이 났습니다. 그쪽 대학이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정말 그랬습니다. 실내 디자인을 공부하다 이걸 건축과 도시로 확장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오히려 그 경험 덕에 박사과정은 수월했습니다. 제 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회상할 정도니까요.

금영재 한국에 돌아와서 역사적 상처가 담긴 건축물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셨어요. 이 책의 소재도 <사회적 고통을 담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남영동 대공분실,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담은 건축물에 주목한 이유가 뭡니까?
김명식 2014년 한국에 왔을 때 세월호가 가라앉았어요.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존재 이유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죠. 아울러 건축가, 설계자는 동시대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찌 보면 건축은 예술인데, 일반적으로는 ‘고통’과 접맥하기가 쉽지 않죠.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다른 시각으로 사회적 고통에 대해 접근해보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당시 전 건축은 어떻게 사회적 고통을 다루고 있고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루었던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와 같은 좋은 사례도 있었고요.

금영재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인 남영동 대공분실과 경동교회를 함께 다룬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고문에 최적화된 대공분실을 설계한 사람이 한편으론 신 神의 성전이라는 교회를 설계했다? 마치 인간의 이중성이나 악의 보편성과 같은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로 읽혔습니다만.
김명식 다소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추적하면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대조를 통해 ‘악의 평범함’(한나 아렌트가 주장)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김수근은 경동교회를 치밀하게 계획했습니다. 반대로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경찰청은 민주당 임수경 의원에게 영문으로 ‘남영동 오피스 빌딩’이라 적힌 설계도와 시방서를 제출합니다. 처음으로 공개된 이 도면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어요. 남영동 대공분실은 갓전구 하나, 출입문, 승강기, 욕조와 세면대에 이르기까지 고문을 위해 세심하게 설계된 건물입니다. 피해자를 질질 끌고 갔던 건물 뒤 출입구까지 김수근의 손길이 미쳤죠. 단순히 뛰어난 건축가만으로는 기억해선 안 될 이유입니다. 김수근의 작품집 어디에도 자신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경기대 교수(안창모)가 교수신문에 '외관은 김수근답게, 내부는 경악스러움'이라는 비평 글을 내긴 했지만 이후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건축가 김수근을 검색하면 불멸의 건축가, 인본주의 건축물 등 온갖 미사여구로 그를 기억합니다. 대중서로 김수근을 다룬 책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겁니다. 한국 근대건축 1세대로 가장 추앙받는 그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독재정권과 내밀하게 접촉하여 승승장구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김철수 기자

힘겹게 돌아와 의자에 앉은 소녀 옆에는 ‘부재’를 상징하는 빈 의자가 놓여있지요. 두 개의 의사는 사선을 넘어 돌아온 이와 돌아오지 못했거나 죽은 이를 의미합니다. 단발머리는 원래 댕기머리였을 소녀의 머리카락이 강제로 잘렸음을 나태내고, 맨발은 당시 찍힌 사진에서 드러나듯 짚신 하나 제대로 신지 못했던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해주지 않았던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반성과 사회를 촉구하는 결연함을 나타납니다. 소녀상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죽음이 아니고서는 벗어날 길이 없었던 암울한 처지를 암시하며, 동시에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금영재 평화의 소녀상 말입니다. 옆에 빈 의자가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이 의자가 상실과 부재를 의미하다면, 그 자리에 앉아 위로하거나 책을 읽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직 소녀상 옆의 의자에 앉은 사람은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꽃이 놓여 있는... 어떤 엄숙한 느낌이 있거든요.
김명식 말씀 잘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먼발치 대상으로 여기며, 엄숙하고 먼 역사적 사건으로만 대변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우리 일상 삶으로 들어와 아직도 고통받는 피해자를 껴안고 위로하는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기념비가 아무 때고 대상화되지 않아야겠지요. 돌아오지 못한 소녀의 자리에 앉아, 사선을 넘어 돌아왔음에도 환대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받는 옆 소녀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말입니다.

베를린에 있는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거대한 사각 묘비 위에 걸터앉은 사람들, 숨바꼭질하며 노는 아이들, 그늘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그 위를 뛰어다니지 못하게 하는데 기념비의 훼손보다는 다칠까 봐 염려한 탓이죠. 전범 국가 독일이 수도에 그것도 포츠담광장, 의회 의사당,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외국 대사관 등으로 둘러싸인 정치적 중심지에 기념비를 세웠어요. 이름 없는 2천 7백여 개의 묘비가 거대하게 세워져 있지만 기념비는 산책, 만남, 수다와 같은 도시의 일상과 조화를 이뤄요. 희생된 유대인들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주어진 거대한 장소인 셈이죠. 베를린 시민들은 이곳을 하나의 조각된 공원으로 이용합니다. 부럽죠.

이런 점이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서 아쉬웠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4‧3 기념관의 공원에는 죽은 이의 명비와 위령탑, 모녀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마치 국립묘지의 느낌을 줍니다. 살아있는 자가 개입할 공간은 드물죠. 그곳은 일상현실과 과거를 단절시켜버립니다. 하나의 거대한 제례의 공간으로써.

순서대로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순서대로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김명식 제공
4.3위령탑
4.3위령탑ⓒ제주4.3평화재단
비설
비설ⓒ제주4.3평화재단

금영재 단순히 건축물을 보는 것을 넘어 음미하는 방법, 하나를 알려주세요.
김명식 건축의 본질은 결국 공간에 있습니다. 시각적 충동에 이끌려 건축물의 외관을 보았다면,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움직이며 공간을 체험하면 보다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그곳을 빠져나오며 도시의 공간(시내)으로 들어가 그 건물을 되돌아보는 것도 또 다른 경험을 줍니다. 건물의 외관은 도시를 이루는 공간의 한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모두 다른 측면에서 건축을 경험할 수 있어요. 그 건축물의 계보학적 분류나 미학적 측면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골치 아픈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요 (웃음) 요즘 유행어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다면, 그 전에 혹은 후에 이를 참고하면 됩니다.

금영재 중‧고등학생이나 건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소양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명식 글쎄요. 이왕 건축을 배울 거라면 건축 아닌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것이 좋아요. 건축은 대체로 학교나 현장에서 익히게 되는데, 그때 열심히 하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건축 이외의 것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청년기를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많아요. 소설을 읽거나 혹은 글쓰기, 정말 글쓰기는 생각을 구조화하거나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절대적인 능력이죠. 그림을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며 감상하거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선율과 화음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시를 읊조리며 시인처럼 흠뻑 시상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돼요.

이런 문학 ‧ 예술적 기반이 건축적 공간 언어로 구현되면 어떤 이미지를 넘어선, 음악적이며 시적인 건축이 됩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건축이 가능하죠. 어떤 대상을 오랜 시간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밀하게 뜯어보고 분석하는 습관도 건축가가 되는데 큰 보탬이 됩니다.

금영재 지금은 건축비평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고 계시는데, 건축설계는 안 하시는 겁니까?
김명식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즉 남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우선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새로운 분야고,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장 선상에서 건축 비평이나 교육은 학생이나 일반인에게 새로운 눈을 갖게 하고 이전에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열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아파트 천지죠. 전문용어로 ‘선’도시라고 합니다. 유럽에선 이미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아파트가 한국에선 승승장구해요. 네덜란드에선 넓은 대지에 3, 4층 정도 되는 건물이 누워있어요.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에 많은 건축가가 참여해서 공동의 주거형태를 완성하곤 하죠. 한국에서 건설사가 고정된 매뉴얼대로 모든 것을 다하니 중소 건축사가 낄 여지가 적습니다. 개성 있는 건축물이나, 예술적 기능을 담지 한 공간을 설계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가 아름답지 않은 건물에 관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겠지요.

개인적으로 꿈이 있다면 전혀 다른 주거 행태의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법정 스님은 “주거 공간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좋다. 더 넓은 정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전 그런 정신이 반영된 건축물을 짓고 싶어요. 물론 저에게도 창의적인 설계의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현장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금영재 해외에 가면 ‘이것만큼은 보고 와라’고 권하는 건축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선생님이 사랑하는 건축가는 누굽니까?
김명식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로마)은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합니다. 이 성당을 지은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는 한 살 많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경쟁자이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수제자이기도 했지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만, 전 그의 독특한 인간미에 끌려 더욱 좋아하게 됐어요.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건축 실력을 이어받아 르네상스 건축에서 바로크 건축의 세계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관광명소로도 정평이 나 있으니 돔 천창아래 예배당 의자에 꼭 한 번 앉아보세요. 이곳을 찾았다면 이어지는 뜰의 공간도 함께 걸으며 건축이 줄 수 있는 근사한 공간감의 최대치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건축물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기준과 수준을 제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파사드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파사드ⓒ김명식 제공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돔천장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돔천장ⓒ김명식 제공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옆 뜰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옆 뜰ⓒ김명식 제공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옆 뜰
산 까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옆 뜰ⓒ김명식 제공

그 외에도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건축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로마),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예술과학단지(CAC. 발렌시아),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의 시카고 연방정부센터 (시카고),
까를로 데 까를리의 산 제롤라모 에밀리아니 성당(밀라노)

주) 김명식 건축가는 ‘알레꽈뜨로 뽄따네’로 적어주었지만, 독자가 검색할 수 있도록 ‘알레콰트로 폰타네’로 적습니다. 마찬가지로 ‘깜삐돌리오’는 ‘캄피돌리오’ 로, ‘깔라뜨라바’는 ‘칼라트라바’로, ‘미스 반 데 로헤’ 는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금영재 평가가 엇갈렸던 서울로 7017(서울역 고가공원)과 광화문 광장에 대한 의견도 궁금합니다. 특히 광화문 광장은 전 개인적으론 교통섬같이 느껴집니다.
김명식 고가공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죠? 저도 개인적으론 보존에 너무 무게가 쏠린 듯해 아쉽습니다. 보존, 복원 작업에서 중요한 건 균형 잡힌 연속성이라고, 대상과 주변,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속성이 균형을 잡을 때 가장 좋거든요. 과거와 동시성이 전 부자연스럽다고 느꼈어요. 물론 아티스트가 보는 시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미 완성이 되었으니 이용하면서 시민들 의견이 점차 모아져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광장은 사실 우리나라에선 근대의 산물이죠. 광화문 광장은 조선 시대 육조거리였고 이곳은 그야말로 왕조 국가의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궁궐을 나선 왕의 행차가 이 거리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사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광장은 이제 세계에서 유례없는. 시민이 새 역사를 쓰는 현장으로 변모했어요. 이 함의가 적지 않다고 봐요.

광화문 광장은 군사정권 이래 이순신 동상이 서고 주변으로 도로가 놓이고 세기가 바뀌면서 세종대왕 동상이 조성되면서 거리의 공간에서 광장의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현재는 두 동상이 광장의 주인처럼 하나는 서 있고 다른 하나는 앉아 있어요. 그런데 지금 광장을 설계한다면 적합하지 않아요. 이제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고 그를 기념하는 시대로 아니기 때문이죠. 우상화의 망령을 거둬내고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고 영웅이 되는 광장으로 그렇게 굳건하게 만들었으면 해요.

금영재 몇 년 전 시골의 고등학교 선생님 댁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멋진 이층집이었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들러 책을 보라고 1층을 모두 도서관처럼 꾸미셨더라고요. 아이들이 뒹굴면서 책을 보면 사모님이 음료수를 내다 주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구상을 그대로 옮긴 집이죠. 이런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김명식 가가장 좋은 건 자신의 스타일과 맞는 건축가를 찾는 겁니다. 지난여름 비평을 쓰기 위해 남양주의 한 주택을 찾은 적이 있어요. 그 집주인은 먼저 그때까지 출간된 모든 건축가의 책을 봤어요. 건축에 관한 생각과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건축가, 그리고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혹은 오랜 기간 삶의 공간이 될 자신의 집을 짓는데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지역 사람이라고 막 맡길 순 없죠.

다음으론 건축가의 조언을 듣거나 문헌과 동영상을 통해 지식을 얻은 후에 설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배워서 일정한 자신감이 서면 건축가와 협업하는 건 한층 수월합니다. 그러니까 설계도면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고 그것이 어떻게 시공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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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재 이산아카데미 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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