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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017]한현주 “세월호 유가족 품어볼 마음의 방, 연극으로 마련”
한현주 작가
한현주 작가ⓒ한현주 작가 제공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연극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분노했다. 일부 연극인들은 이 거대한 슬픔을 어떻게 연극으로 담아낼 수 있겠냐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연극으로 세월호를 말하기 시작했다. 시대를 말하고 진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작품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공연 방해를 당하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호 3주기 2017년, 세월호 작품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혜화동 1번지가 주최하는 ‘세월호 2017’ 중 두 번째 작품인 연극 ‘유산균과 일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세월호 작품들이 구체적인 정황들을 토대로 연출되거나, 퍼포먼스 형태로 무대화 되었다면, 연극 ‘유산균과 일진’은 드라마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월호에 ‘드라마’를 입혀야 하는 만큼 작가의 고민과 고통이 덧입혀 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유산균과 일진’의 대본은 정성들여 짜낸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했다.

작품을 쓴 한현주 작가는 “과연 세월호에 대해서 작품으로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쓰겠다고 한 이유는 세월호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세월호를 드라마로 어떻게 풀었는지 들어보기 위해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세월호를 향한 부채의식
이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라는 것을 할 때가 됐다

“작년 재작년 세월호 연극제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발언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드라마 형태보다는 연출의 구성 작업 형태로 나오는 작품의 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작년에도 이오진 작가의 ‘오십팔키로’와 정진세 작가의 ‘세월호 오브 퓨처 패스트’를 제외하곤 그러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현주 작가가 ‘유산균과 일진’을 집필을 하게 된 것은 혜화동1번지 동인과 ‘세월호 2017’의 기획자 고주영 PD 사이에서 언급된 “이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공감대에서 비롯됐다.

“동인들과 고주영 PD의 생각을 듣고, 저도 시도를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가 세월호에 대해 공부를 한 것은 아닌데, 연극의 치유적인 맥락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연극이 가지는 치유의 장으로서의 힘, 무대가 가지는 힘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극 ‘유산균과 일진’ 속에는 고등학교 2학년 민주, 민주의 엄마 정혜, 민주의 친구 영서, 그리고 유가족 재호가 등장한다. 여고생 민주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유산균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재호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괴로움 때문에 어플의 일진을 보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있다. 연극은 두 인물을 통해서 아픔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교통사고를 겪은 민주의 가정과 세월호를 겪은 재호 가정의 등장. 무대화 될 설정은 이렇지만 처음부터 설정이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한 작가는 처음엔 상처가 없는 평범한 학생이 재호의 고통에 다가가는 방식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반 사람들의 감각이자 정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작가는 “안 풀렸다”고 회고했다.

“원래 잡아놨던 설정이 안 풀렸다. 왜냐하면 유가족의 고통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고통의 무게를 잰다는 게 웃기지만 뭔가 이야기 되어질 수 있는, 재호의 큰 고통에 다가갈 수 있는 어떤 예비 된 뭔가가 있어야지 이게 이야기가 가겠더라. 계속 시놉시스를 쓰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민주 쪽에 고통을 설정하게 됐다. 민주나 정혜만큼의 고통은 아니라도 인간에겐 누구나 상실의 고통이 있는 것이고, 상실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접근해 가는 것이 조금 더 재호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긴밀하게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균과 일진 도대체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붙잡은 끈 같은 것

다른 종류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민주와 재호는 각각 유산균을 먹고 일진을 보는 행위를 함으로써 불편함이나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난다. 민주는 설사를 막고, 재호는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는다.

“유산균이나 일진은 이들에게 위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붙잡은 끈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는 그 사건 이후에 생긴 고통이니까, 자꾸 설사를 하니까 유산균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재호도 일진을 보면서 위로 받는 것도 있겠지만 시작은 밧줄 같은 것이다. 쥐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연극 ‘유산균과 일진’은 세월호를 앞세워 관객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달라’고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왁자지껄한 웃음도 없고 억지 눈물을 짜내려는 오열도 없다. 단지 연극은 매우 담담히 당신과 나의 슬픔은 같지 않고, 두 사람의 얘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해준다. 이처럼 작품이 보여주는 명징한 ‘거리두기’는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세월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세월호가 끝나지 않은 문제임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어떤 배우인가, 연출님인가 이런 이야길 했다. 작년에 어떤 유가족분이 실제로 자기는 아주 웃기는 연극이나 아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연극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의 맥락은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당연히 포함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작가들은 우리가 어떤 감정의 배설 차원에서 울 준비가 이미 되어버린 무대, 이런 것은 지양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물론 영서가 떠나는 장면처럼 눈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우는 게 목적이 되거나 클라이막스나 카타르시스가 목적이 되어 버리면 또 하나의 세월호가 가진 문제들, 아직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그런 지점이 눈물 속에 감춰져 버리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유라는 화두를 던질 때 위험할 수 있는 게 모든 사건이 마치 모두 완료되어 버린 것 같은 지점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단순히 관객이 감정을 소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게 할 그런 긴장감들이 극 속에 묻어난다. 어떤 것이 있을까. 한 작가는 덧붙여 설명을 했다.

“민주가 ‘아저씨가 아픈 건 나랑 다르다’고 이야기 하는 게 있다. 그 지점은 내가 아픈 것은 내 개인적인 고통이라는 것이다. 민주가 당한 교통사고는 이 가족의 어쩔 수 없는 불행의 사고였던 것이지만, 아저씨가 아저씨 딸을 잃은 것은 내가 겪은 것과는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것이 개인적인 고통이면 개인적인 복수가 가능하지만, 아저씨가 출소한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그 출소한 사람 만나서 개인적으로 뭘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전에 어떤 정치인이 세월호를 교통사고에 못 되게 비유했었다. 교통사고도 어떤 사람에겐 절대적인 고통이지만 그런 식으로 고통을 비교한다는 것은 나쁘다. 또 한편으론 세월호가 가지고 있는 그 고통의 차원이 다른 맥락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지점도 가져가야했다.”

그게 가능해? 두 사람의 얘기는 차원이 다르잖아(극중 민주의 대사)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작품
세월호는 영원히 치유돼야 할 고통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세월호에 대해서 쓸 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픈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있어서 세월호의 상처는 오랜 기간 치유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상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가 역시 유가족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엔 초고가 굉장히 거칠었다. 초반에 배우, 연출님과 같이 읽어 보았다. 배우들과 연출님이 질문을 많이 해주셨다. 보통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질문하는 게 부담으로 오곤 한다. 그래서 처음엔 그런 질문들이 부담이 됐다. 근데 그 질문들이 고치는 과정에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저도 항상 세월호에 대해서 긴장감을 놓지 않았지만 이렇게 설정해서 자칫 위험해 질 수 있는 점들을 연출님도 놓치지 않으셔서 감정선이 큰 드라마가 되지 않고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 또 이번 연극을 유가족이 볼 수도 있는데 그분들이 본다는 것도 긴장이 되지만 그것보다 유가족 캐릭터가 등장해서 조심스러워 할 부분도 있었다. 근데 배우들이 워낙 세월호에 대해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 캐릭터를 채우는 질문들도 도움이 많이 됐다.”

세월호에 대한 수많은 고민 위에 드라마를 입힌 이 연극이 6일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다. 미리 만나본 ‘유산균과 일진’ 속에서 뾰족뾰족 아픈 부위를 만나기도 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없는 세상을 바라는 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도 묻어난다. 한 작가가 생각하는 세월호란, ‘이제 좀 그만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영원히 치유돼야 할 고통이자 치유하려고 영원히 노력해야 하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내상을 보듬어 주는 것도 치유가 될 수 있고, 정치적인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치유다.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것도 치유가 될 수 있다. 광장에서 세월호를 후원하고 유가족을 안아주는 것도 치유가 될 수 있다. 한 작가는 이 모든 치유법이 필요하다면서도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7시 40분, 8시 45분, 8시 52분, 10시 8분, 10시 11분, 10시 14분… 30도, 45도, 50도, 65도… 123정, 511호기, 513호기… 2142톤, 아니 3608. 45톤, 10회 아니, 0회… 뭐지? 외계 암호야?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숫자들인가?(극중 민주의 대사)

“가장 작은 시작은 내 마음의 한 구석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을 해보면서 품어주는 그런 마음이다. 작품을 보면 민주랑 재호가 실제로 만나는 장면은 없다. 대신 민주가 말하는 방, 영서와 만나는 방 등이 있다. 자연스럽게 만나지는 어떤 방처럼 그런 방을 유가족 재호를 위해서 마련해 보는 것이다. 유가족과 생존자들과 그 일과 관련된 사람을 위해서 마음의 방 하나쯤 가져 보는 것. 그리고 그 방이라는 것은 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연극 무대라는 공간이 그런 한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연극 ‘유산균과 일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3시·7시, 일요일 3시에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볼 수 있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주최하는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2017’의 두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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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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