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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99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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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인간이 아니었어”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99) 할아버지는 70여년전 순간을 설명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집에 키우는 개·돼지도 그런 취급은 안 당하지.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 동네 강아지마냥 이리저리 끌려다녔지.”

세월이 흘렀고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 몇 명 남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됐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병상에 있는 상황에서 당시 순간을 전할 수 있는 아픈 역사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를 지난달 30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자택에서 만났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를 지난달 30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자택에서 만났다.ⓒ옥기원 기자

죽어서만 나갈 수 있는 ‘생지옥’
썩은 깻묵 먹고 버틴 ‘인간 이하 노예의 삶’
원폭 피폭 후 풀려난 강제징용 피해자들

김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끌려간 시점은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 8월이다. 황해도 연백군 전매청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은 일본인들의 손에 이끌려 트럭에 몸을 실었다.

“(트럭에) 무조건 타라는 지시를 받았어. 무슨 일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기차를 탔고, 부산항에 도착했어. 배에 탄 180명 정도 되는 청년들이 겁에 질려 있었지.”

김 할아버지가 강제로 끌려온 곳은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였다. 그곳에서 그는 전시 무기인 항공 모함 제작 작업에 투입됐다. 그는 당시를 “죽지 못해 버텼던 생지옥”이라고 회상했다.

“기름 짜내고 난, 썩어서 냄새나는 깻묵에 쌀을 섞은 밥이랑 고구마 넝쿨을 바닷물에 삶은 반찬을 먹으라고 줬어. 개한테도 그런 음식은 안 줬지. 정말 죽지 않을만큼 먹였어. 죽으면 내다 버렸고, 죽지 않으면 일을 시켰어. 너무 배가 고프고 힘이 들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자료사진)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인간 이하 노예의 삶’이 이어졌다. 아침 6시에 기상해 저녁 10시에 취침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곳은 죽지 않고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던 생지옥이었다.

“대형 파이프를 구부리는 일을 하다가 떨어져 왼발 엄지발가락이 부러졌어. (동료에게) 업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괜찮다며 소독약만 바르고 돌려보냈어. 발가락이 달걀 크기만큼 부었는데. 너무 서럽고 억울했지.”

그렇게 한 달을 일해서 받은 돈은 100전 남짓,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1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일본인들은 당시 조선인 청년들에게 나머지 노역의 대가를 집으로 보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시 상황이 계속될수록 강제징용자들의 노동 강도도 세졌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도 그에게는 남 일 같았다. 1945년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지기 전까지.

“일하는데 창문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했어. 몸이 붕 떠올라 떨어졌지. 정신을 차려보니 황색 연기가 가득했어.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울면서 뛰어다녔고, 주변에 수많은 시체가 보였어. 너무 놀라서 ‘살려 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지.”

제2차세계대전 일본의 패망으로 김 할아버지는 강제 징용 현장에서 풀려났다. 그는 일본사람의 목선을 구해 부산으로 돌아왔고, 일본으로 끌려간 지 1년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해방 후 6·25전쟁으로 피난 길에 올랐고, 충남 공주(이후 대전)에 정착했다.

20대 아픔 속에 사는 99세 할아버지 소원
“노동자상 세우고 대통령 위로편지 받았으면”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님 부부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 발족식에서 노동자상을 어루 만지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님 부부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 발족식에서 노동자상을 어루 만지고 있다.ⓒ민중의소리

김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때의 고통이 생생하다”며 “일본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100세를 앞둔 노인은 지금도 20대에 겪었던 아픔 속에 살고 있었다.

“(일본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 악을 행하고도 잘못을 빌지 않았어. 미국과 중국에는 사과하고 우리나라에게만 안 했어. 한국이 식민지라서 무시하는 거야. 정부랑 국회의원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그래야 다시는 이런 고통이 없어.”

김 할아버지는 생전의 소원을 묻는 질문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과 ‘대통령의 위로편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제징용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도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곧 죽을 늙은이가 무슨 소원이 있겠어. ‘고생했다’는 (대통령) 위로편지면 충분하지. 죽기 전에 우리나라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지는 것도 봤으면 좋겠어. 그걸 보고 후손들이 우리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그거면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한편, 시민노동단체들로 구성된 ‘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는 서울 용산역 광장 등에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 정권은 ‘용산역이 국가부지’고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건립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소식을 접한 김한수 할아버지 등은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 등에 참여해 노동자상 건립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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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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