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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의 Digital 道] 창작 지망생에게 없는 11가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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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신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작 행위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이 때문에 창작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다면 작업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내가 아주 약간의 핑계만 있어도 창작 작업을 중단하고 딴짓을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깜깜한 밤길을 홀로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피처가 필요했습니다. 그럴 때는 하다못해 바탕 화면 정리마저도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참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작업을 해야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능력을 짜내다 보면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므로 결과물의 상태도 썩 좋지 못합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게 만들 자신도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작업하는 꼴이 되면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게 됩니다. 열정마저 사라지면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면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합니다. 번뇌에 사로잡히게 했던 옛날 기억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도록 만듭니다. 내가 이런 것을 만들 자격이나 있는지,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나 같은 인간이 만든 것을 봐 줄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중간 작업물도 유치하게 느껴지고,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표현은 조잡하고, 비유는 억지스럽고, 문장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의욕만으로 덤볐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저 그런 것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바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이 그렇습니다. 애초의 기획은 사라지고 창작자에게 없는 것들을 억지로 짜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생각에 심각하게 매몰되면 진도가 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됩니다. 머리 속에서 지금 작업에 관한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이 들어찹니다. 다음 작품에 관한 놀랍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떠오릅니다. 재미도 없고 되지도 않을 하찮은 것은 포기하고 다음 작품에 전념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 비하는 근본적인 의문까지 생기게 합니다. 애초에 이따위 창작 작업을 하려 한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냥 하라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주는 월급이나 받아서 평범하게 살 것이지 뭐하러 돈도 되지 않고, 미래도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애쓴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만들어 봤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을 붙들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업 내용을 살펴보아도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주제도 허접하고 내용도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런 예술적 기교도 없이 지겹게 늘어놓았을 뿐입니다.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인터넷에 흘러 넘치는 하소연 글처럼, 무슨 말인지 알기도 어렵고, 재미도 없으며, 길기만 한 글에 불과합니다.

사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지 몰라 보여주기도 두렵습니다. 내가 찍은 꽃 사진은 인터넷에 흔한 들꽃사진만큼이나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요즘 그림판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만화도 인기를 얻는 시대라지만 내가 그린 만화는 그런 부류에 넣기에도 부족합니다.

내용으로 승부하겠다고 애써 자위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내 작품은 전달력조차 갖추지 못한 열악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이말년이나 팀장님 만화처럼 독자들이 내가 모르는 재미를 찾아 내서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시작할 때의 열정이 사라진 후 자기 비하에 빠지게 되면 결국 작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사실 저도 이런 식으로 쓰다가 만 글이 많습니다. 이런 좌절을 견뎌내야 제대로 된 창작자가 됩니다. 저는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가 작업에 몰두하는 창작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작업대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 시간을 모두 창작 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태블릿 펜을 잡고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워드로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는 시간이어야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창작에 몰두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쌓여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옵니다.

창작 작업을 일상 업무처럼 처리하거나, 규칙적으로 분량을 만들어 낼 때는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욕에 넘쳐 열심히 작업할 때는 자신감 부족이 생길 틈이 없습니다. 집중이 가능할 때는 종일 작업도 가능합니다. 이럴 때는 적절한 비유가 즉흥적으로 떠오르고,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저절로 솟아납니다.

세상에 알려진 많은 작품들이 작가가 몰입해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완성된 것들입니다. 찰나에 불과한 몰입의 순간이 작가들의 나머지 삶 전체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만든 작품이 그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창작자들이 기행을 일삼고,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번뜩이는 영감은 일상적인 삶에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통념을 넘어서고, 상식을 깼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걸작을 만든 프로 창작자들이 창작 활동을 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한탄하지만, 남은 삶 동안 또 다른 걸작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창작 작업을 게을리하고, 규칙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게 되었을 때입니다. 아마추어 창작자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여가 활동까지 포기하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작 시간을 낼 수 없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작업보다 더 중요한 일도 수만 가지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게을러지는 자신을 다잡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완벽주의도 자신감을 좀먹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주말 혹은 여가 시간 전체를 작업에 전념하겠다고 계획했으나 토요일 오전, 잠에서 깨보니 벌써 11시가 넘었습니다. 오전이 다 지나가버려서 작업을 하기에는 이미 글렀습니다. 그냥 가족들과 바람이나 쐬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한 주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포기한 주말이 벌써 6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토요일 하루 종일 작업을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시작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계획대로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절대로 자신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오후 1시, 아니 오후 6시가 넘었어도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애쓰더라도 남은 시간에 한 페이지의 글을 쓰기도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작업을 시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줄을 쓰는 날이 1000번 모이면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한 줄이라도 써야 하는 이유는 그 한 줄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늘은 한 줄밖에 쓰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그 다음 날은 두 줄 혹은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한 페이지를 쓴 날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다음 날은 세 페이지를 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성취라도 자신감 충만을 불러오는 마법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양이 질을 만드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진도를 나가고 싶다면 일단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쏟아내도 상관없습니다. 일관된 주제에 맞출 필요도 없고 품질을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글쓰기 작업이라면 맞춤법이나 문장 호응도 무시하고 그냥 즉흥적으로 타이핑을 해도 됩니다.

이렇게 만드는 창작물이 마음에 들지도 않아도, 이것들이 모이면 질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자신이 없더라도 양을 늘려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쓸만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가 되면 앞부분을 다 폐기해도 됩니다. 쓸만한 뒷부분을 기준으로 앞 부분을 새로 만들면 되니까요.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려워도 만든 것을 고치기는 쉽습니다. 창작 작업이란 매 번 앞 부분을 고쳐 나가면서 뒷부분을 추가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 부분을 수정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뒷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것들을 뒷부분에 반영하면서 분량을 늘립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은 결국 성실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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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력이 없다

아마추어 창작자들에게 가장 좌절스러운 순간은 실력이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될 때입니다. 높고 높은 이상을 담은 숭고한 글을 쓰고 있지만 매순간 나를 좌절시키는 것은 맞춤법입니다. 사실 저도 워드프로세서 없이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맞춤법 뿐만 아니라 문법적인 조언까지 해 주는 부산대학교의 문법 검사 사이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신속한 정보 전달 위주의 소셜미디어 시대에 뜻만 통하면 그만이지 일일이 맞춤법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창작자에게 맞춤법 실력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평소에 맞춤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능하면 맞춤법 교정이 가능한 워드프로세스를 이용해 글을 쓰고, 쓴 글에 문법적인 하자는 없는지 문법 교정 사이트를 거치는 것이 필수입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한 줄 짜리 글도 검토와 검토를 거쳐 맞춤법에 이상은 없는지, 표현에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두 번 이상 검토해야 합니다.(이 문장을 쓸 때 “한 줄 짜리”가 맞는지 “한 줄짜리”가 맞는지 맞춤법 사이트에서 확인했습니다) 독자들은 맞춤법이 틀린 글을 읽으면 실수라고 보기보다는 저능아로 판단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잘못된 맞춤법이 반복되면 이런 편견은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두 번 이상 검토하기 어려운 글은 가급적 올리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창작자는 소셜미디어에 즉흥적인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전공 분야라면 이런 부분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두 번 이상 검토를 해야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안 쓰는 것이 최선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격언은 창작자에게 황금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글을 쓰면 결국 “정치인들 중에 뒤 안 구린 놈이 어디 있어?” 수준의 하나마나한 글을 쓰게 됩니다. 정확한 각론 없이 일반론에 근거한 창작물은 아무런 가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잘못된 창작물이 세상에 나오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은 곧바로 검색 사이트가 가져가므로 원 글을 지워도 복사본은 오래도록 인터넷에 남게 됩니다. 창작물에 문제가 있어서 곧바로 지워도 누군가 캡쳐해서 보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잠깐 동안 올려 놓더라도 위험합니다.

창작물은 사실에 입각해야 하고 과학적인 원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가을을 노래하는 시에 봄 꽃이 등장하거나, 유명한 건물의 그림자 방향을 반대로 말한 글도 많습니다. 함민복 시인은 다른 사람의 시를 평가할 때 표현력보다는 사실적인 표현인지 여부에 가장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조금이라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독자들의 난도질을 각오해야 합니다.

드골 암살을 다룬 첩보 소설 “자칼의 날”을 쓴 프레드릭 포사이스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지역은 실제 그 지역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언론사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준비한 포사이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을 실제로 탐방한 후 썼기 때문에 현실의 공간을 소설 속에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아니라도 창작물은 기본적으로 사실과 부합해야 합니다. 특히 아무리 허구라도 과학적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라면 독자의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현실과 어긋나지 않는 표현력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공자들이 빠지는 가장 큰 위험은 독자들의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창작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책상 두드리기”라고 부릅니다.(“스틱- 착 달라 붙는 메시지의 비밀, 칩 히스, 댄 히스” 참조) 나는 지금 내 머리 속에 떠 오르는 노래에 맞춰 책상을 두드립니다. 그 소리는 나를 감동시키지만 상대방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상대방은 내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 무슨 노래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공 분야에 대한 창작물은 같은 분야의 동료들만 이해할 수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속한 분야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글을 이런 식으로 쓴다면 일반인들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억울한 사연을 담은 글들이 책상 두드리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사연을 복잡하고 길게 나열하고 있지만, 사용되는 단어조차 생소한 일반인들은 쓸데없는 소음으로 여겨 패스할 뿐입니다.

창작자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대상이 제한적인 창작물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도록 하는 기교는 들어가야 합니다. 좀 더 많은 독자를 만나려면 가능한 쉽게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책상을 침과 동시에 입으로 그 노래를 들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수록 당신의 콘텐츠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기가 창작자에게 가장 큰 미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창작 행위를 하는 매순간 당신이 책상 두드리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창작자를 절망시키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진부한 표현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정통하더라도, 따로 창작 테크닉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는 한 이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감동적인 내용에 대해서 “심글을 울린다”란 말 표현이 가장 깔쌈해 보입니다.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할 수”없을 뿐입니다. “금상첨화”를 위해 인용하는 경구 역시 낡아 빠진 속담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여전히 달라진 맞춤법을 따라 잡지 못해 과거 표현법을 그대로 쓰고 있”읍”니다. 나름 재미있으라고 쓴 부분도 거의 다 아재 개그류에 속하는 진부한 내용입니다.(이 부분에서 “진부한”이란 형용사 또한 정말, 진심으로, 지긋지긋하게 진부합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노잼이란 표현을 개발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책에 대한 독서가 정지되었기 때문에 그 시점 이후에 달라진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엣지”있는 표현을 구사하지만 닳고 닳아 아침 드라마에까지 등장하는 철 지난 것들 뿐입니다. 지금 세대가 배우는 교과서는 과거 내가 배운 교과서와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참고서조차 다릅니다. 그리하여 내가 만든 콘텐츠는 조선 시대의 것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됩니다.

창작 행위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신선함이 없으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진부한 표현은 모두 제거하거나 참신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합니다. 살던 대로 살고, 하던 대로 하고, 쓰던 대로 써서는 결코 신선한 창작물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담는 용기인 창작물의 표현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재검토 해야 합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기준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제대로 된 개선이 가능합니다. 신선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콘텐츠가 독자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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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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