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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온라인 음악 서비스는 여전히 뮤지션들의 적인가

세상 어디에나 ‘정설’이 있다. 가령 한국전쟁에 대한 정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갑자기 쳐들어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정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탱크는 한반도 지형에서 별 효과가 없었고, 한국군은 기습 공격을 당했지만 곧 전열을 회복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끈질기게 가로막았다. 이처럼 정설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실보다 정설이 더 득세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이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사실보다 정설이 더 명쾌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
온라인 음악 서비스ⓒ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음악 서비스 월정액이 얼마면 뮤지션들의 삶에 도움이 될까?

대중음악계에도 몇 가지 정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정설은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상용화된 뒤 뮤지션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담론이다. 예전에는 음반을 기반으로 음악을 향유했는데,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음반을 대체하게 되었고, 온라인 음악 서비스는 음반에 비해 너무 헐값이기 때문에 뮤지션들의 수입이 줄어들었고, 그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이 의견은 많은 음악 팬들과 뮤지션들에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이용하기보다는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듣는 게 뮤지션에게는 더 좋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많은 의견은 지금 온라인 음악 서비스의 이용요금이 너무 낮고,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분배율도 너무 낮다는 의견이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 업체들이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덤핑 판매했고, 서비스 업체들이 창작자들보다 더 높은 비율의 이용료를 가져간다는 의견도 더해진다. 이러한 의견은 음악을 듣는 패턴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바뀌고, 뮤지션들의 낮은 소득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가장 대표적인 문제이자 원인으로 흔하게 지적되었다. 전선은 명확했다. 불쌍한 뮤지션 대 나쁜 음악 서비스 업체. 뮤지션들이 분개했고, 음악팬들도 동의했다. 뮤지션들이 행동하고 온라인의 음악팬들과 네티즌들이 합세했다. 그 결과 온라인 음악서비스의 이용요금과 분배율은 조금이나마 개선되었고 계속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뮤지션들의 삶은 개선되었을까. 일일이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반응이 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온라인 음악 서비스는 뮤지션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그리하여 뮤지션들의 안정된 삶을 가로막는 주범인 것일까. 반대로 질문해보자. 과연 온라인 음악 서비스의 월정액이 얼마가 되어야 뮤지션들의 삶에 도움이 될까. 월 30,000원? 50,000원? 그 정도로 서비스 이용료가 올라가면 뮤지션들의 삶이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그 정도로 음악 서비스 이용료가 올라가면 과연 지금 10,000원 이하의 이용료로 온라인 음악서비스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따라올까? 과연 소비자들이 뮤지션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기꺼이 그 정도의 가격 인상을 수용할까? 물론 소비자들 중에서는 가격 인상을 감당하겠다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음악 소비자들은 이렇게 높아진 가격을 쉽게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낮은 음악 서비스 가격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유투브 레드
유투브 레드ⓒ유투브

‘음원서비스=악(惡), 뮤지션=선(善)’?…문제는 간단하지만은 않다

테크놀로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해왔다. 사람의 수고는 최대한 줄이고, 시공간의 제약은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 테크놀로지, 혹은 그 테크놀로지의 주체인 인간이 만들어낸 진화의 결과이다. 여기에서 음악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음반을 놓고 앞뒷면을 뒤집어 가면서 듣다가, 스마트폰의 터치 몇 번으로 언제 어디서든 수많은 음악을 쉽게 찾아 듣게 된 것 역시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진화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음악의 희소성을 떨어뜨렸고, 음악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지불해야 하는 이용료도 낮추게 만들었다. 굳이 물성을 가진 음반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데, 음반 가격과 유사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 업체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테크놀로지가 가치를 변화시킨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단지 음악만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뮤지션들과 음악팬들이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 다분히 비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은 아쉽다. 유튜브에서 공짜로 음악을 듣게 되었고, 유튜브 조회수가 수십억에 가깝더라도 정작 뮤지션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적다는 사실이 단지 플랫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희소성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는 모든 컨텐츠에 동일하며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유튜브 덕분에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경로를 갖게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음반 시대에 지불했던 이용료를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유튜브 이용료를 내고 광고 없는 유튜브를 보라고 해도 이용자수가 많지는 않은 현실이다. 게다가 앞으로 테크놀로지가 더 발전하면 음악의 가치와 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다. 가령 인공지능(AI)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온다면, 직업음악인의 역할과 가치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도 있다. 음악인의 수 역시 줄어들 수도 있다. 물론 역으로 인간이 직접 만드는 음악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음악에는 더 높은 보상을 제공해야 할까. 아니면 인공지능으로 음악을 만드는 일을 금지시켜야 할까. 어느 쪽도 쉽게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서비스 업체 혹은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플랫폼을 기득권이나 착취자라고 보고, 뮤지션들을 피해자로 보면 선과 악이 명확해지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니 이제는 오히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문제를 호도하며 왜곡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가장 정의로워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어떻게 창작자의 권리와 향유자의 편의성을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하는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더 많은 질문들이 더해져야 한다. 지금 뮤지션들의 삶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고, 그 중 뮤지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업계가 해결할 수 있는 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모든 뮤지션이 음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최대한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뮤지션들에게 업계와 국가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그 질문들이 더해질 때 정책은 비로소 효과적인 정책으로 발현될 것이다. 이제는 질문도 대책도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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