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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대중음악평론가가 사는 법

어제는 모 지역문화재단의 지원사업 심사를 하고, 곧장 서울로 돌아와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에서 진행한 정기상영회에 참석했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가 끝난 뒤, 감독·주연 뮤지션 등과 1시간 정도 GV(Guest Visit, 감독과 관객간의 대화)를 했다. GV가 끝난 시간은 23시. 그때부터 감독, 주연 뮤지션 등과 어울려 밤새도록 퍼마셨어도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을 따름이다. 어떤 이들은 음악평론가가 뮤지션들과 호형호제 하며 늘상 한 잔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그런 평론가는 별로 없다. 모든 뮤지션이 술을 좋아하지는 않고, 평론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평론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는 뮤지션들도 있지만, 인간 관계를 맺게 되면 냉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뮤지션들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평론가가 더 많다. 음악 평론을 하는 이유는 뮤지션들과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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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뮤지션만큼 다양한 평론가

지금 한국에서 음악평론을 하거나, 음악 관련 글을 쓰는 이는 어림잡아 50여명 정도이다. 이들은 세대가 다르고, 젠더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 성장과정도 다르고, 관심분야도 다르다. 어떤 평론가는 록을 가장 좋아하고, 어떤 평론가는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당연히 수입도 다르다. 다들 음악 글을 쓰고 있지만 전업으로 글만 쓰는 평론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대학에 출강하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기도 한다. 어엿한 대기업 직원도 있고, 선생님도 있다. 글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별도의 생계 대책이 있거나 가난을 버틸 각오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전업 평론가로 활동하려면 프리랜서 생활을 견뎌야 한다. 프리랜서 생활은 자유로운 생활이 아니다. 언제 일이 들어올지,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생활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다. 들어오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하고, 일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한다.

나 역시 음악 관련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거의 거절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요청이나 내가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주제/분야는 고사하지만 그밖에는 가벼운 글이든 무거운 글이든 최대한 써보려고 노력한다. 사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모든 글쟁이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음악 글을 쓸 수 있는 매체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원고료도 예전 그대로다. 많이 쓰고 싶지만 많이 쓰기 어렵고, 많이 써도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청탁받은 글만 쓸 수는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책으로 내야만 자신의 비평을 축적할 수 있다.

대신 각종 음악 경연 심사가 중요한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 내 경우 심사를 하는 일이 자주 있는 편이 아니라서 더더욱 중요하다. 음악을 주제로 강의를 요청할 때도 있다. 강의 요청 역시 드물어도 특히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게 준비하곤 한다. 그밖에는 어제처럼 각종 지원사업 심사를 하기도 하고, 자문회의나 토론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별도의 직업을 갖지 않은 전업 음악평론가에게는 이런 모든 일들이 수입원이 된다.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주수입원인 음악평론가도 있다. 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일이어도 모든 평론가들이 방송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말재간을 갖지는 못했다. 책을 써서 인세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김훈 정도의 유명작가가 아니라면 역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음악평론가의 생활은 늘 불안하다. 새로 등장하는 신진 평론가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서정민갑
서정민갑ⓒ@Archiview

불안한 생활…그럼에도 음악 평론을 하는 이유

그럼에도 음악 평론을 하는 이유는 음악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음악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해명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 분석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사만이 아니라 보컬과 연주가 함께 만드는 사운드의 음악언어가 표현하려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문자언어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다움에 가까이 갔는지, 얼마나 새로운지, 얼마나 의미있는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음악은 장르의 지도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장르의 방법론을 얼마나 갱신했는지, 사운드와 메시지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는 체 하고, 잘난 체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잘 이해하고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음악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음악은 단지 목소리와 연주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매체, 산업, 세대, 정치, 젠더, 지역,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여러 영역들이 음악의 안과 밖에 결합해왔다. 함께 보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있고, 그 변화가 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항상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당연히 많은 정보를 접해야 하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 날마다 나오는 새 음악들을 찾아 듣는 일은 기본이다. 자신의 주 관심 장르뿐만 아니라 인기 차트도 확인해야 한다. 해외의 음악도 놓치면 안된다. 해외 음악 전문 웹진을 확인하고, 새 음악을 챙겨들어야 한다. 며칠만 게을리 해도 들어야 할 음악들은 무수히 쌓인다. 괜찮은 새 음악이 나오면 뮤지션의 이력, 뮤직 비디오, 라이브 퍼포먼스를 확인해보는 일 역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리고 음악, 대중문화, 예술, 문화일반, 철학 등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언과 작품을 검토하면서 인식의 틀과 감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소셜미디어와 여러 매체들을 계속 확인하는 이유이다. 꾸준히 좋은 글을 읽고, 어려운 책이라도 기꺼이 읽으면서 계속 인식을 확장하고 감수성을 자극해야만 어제와 다른 글, 더 깊은 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평론가는 골방에서도 세계를 보아야 하고, 배움에 끝은 있을 수 없다. 노력이 결과와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열리는 열매를 본 적은 없다. 음악평론가의 꿈은 결국 좋은 글을 쓰는 일이고, 좋은 글은 끊임없는 공부와 사색, 글과의 치열한 전투로만 가능하다.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은 꾸준한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어쩌다 그 기회를 얻었다 해도 잠시일 뿐이다. 새로운 음악은 계속 나오고 세상은 계속 변한다. 좋은 글이 곧장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오늘은 그저 오늘 써야 할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음악에 감동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세상의 빠른 변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면서, 자신의 글에 좌절하면서, 모든 오해와 곡해와 무관심을 견디면서.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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