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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당부 “과감한 대통령 되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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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5.18 기념식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두 장면.

한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이 5월 유가족을 보듬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모습이었고, 또 다른 장면은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부둥켜 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부른 장면일 것이다.

이 두 장면은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 첫 5.18 기념식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배은심 여사가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5.18 기념식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배은심 여사가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YTN 뉴스 캡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의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모습. 배은심 여사는 이 모습을 돌이켜보니 불쑥 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감동이었나보지. 임종석은 전대협 의장일 때부터 내 자식 같이 했지. 잡혀가서 교도소 있을 때도 접견도 가고 면회도 가고. 이런 저런 인연이 많이 쌓였어. 이제는 비서실장이 되서 오니까 내 손을 덥석 잡더라고. 나한테는 대통령실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옛날부터 아들같은 사람이야. 내 아들이 옆에서 노래 부르는 것마냥. 같이 손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속으로는 좀 웃었잖아. 근데 그 아이들 보면 좋더라. 마음도 편하고, 내 아들 보는 것처럼 좋아. 건강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1987년 6월,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은 아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배은심 여사는 여전히 아들을 낳고 키웠던 광주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집 앞 작은 텃밭에서 아들과 나눴던 대화도 여전히 생생하다. 엄마는 "네가 서울로 대학을 가니 이 집을 정리하고 우리도 서울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했고, 아들은 "내가 60살이 되면 여기 와서 살테니까 그냥 놔두세요"라고 답했다. 엄마와 아들의 꿈은 87년 6월 이후 사라져버렸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도 어느덧 30년이니 강산이 세 번 변했다.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괴롭다. 아들이 외쳤던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들어선 새 정부가 이전과는 다를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30년간 고통받는 이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온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77) 여사를 광주 자택에서 만났다.

이한열 열사 떠난 후 30년간 거리에서 산 배은심 여사
"내가 항시 가는 곳은 약한 사람들 모여 있는 곳"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2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이 유가족 인사를 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2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이 유가족 인사를 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배은심 여사는 지난 30년의 세월을 "길바닥에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당신의 설명대로 배은심 여사는 민주화 시위가 열리는 곳의 선두에 어김없이 자리했다. 그러한 삶을 방증하 듯 광주 자택에는 세월호 리본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가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항시 내가 가는 곳은 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내가 30년간 그러고 살았다.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잖아. 그러니 거리에서의 삶이 내 삶이 되어 버린 거지. 한열이 죽음으로 인해서 내가 많이 배웠어. 결과적으로 아들의 삶을 이어서 살기로 받아들인 것 같아. 불의를 보면 못 참게 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나온 것 같고. 지금도 힘 약한 이들을 비웃는 자들 보면 참을 수 없더라고."

일흔이 넘은 나이 탓에 전국 곳곳을 오가는 것이 힘에 부친다. 올해도 5.18 기념식과 6월 항쟁 기념식을 겨우 마치고 광주 자택으로 내려와 지친 기운을 달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아픔은 심적인 고통. 배은심 여사는 30년 전 아들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순간부터 망월동에 묻힌 순간까지의 시간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특히 매년 6월이 되면 더 또렷하다. 배은심 여사는 "누가 내 가슴을 빨래 짜듯 비트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6월 항쟁 30주년 기념식 하고 나니 아파버렸어. 참 괴롭네 괴로와. 마음의 고통은 아무도 헤아리지를 못 하는 거야. 그 고통은 잣대로 잴 수 없지. 6월이 되면 과거의 시간이 계속 나를 따라와. 6월 되면 한열이가 최루탄 맞고 쓰러진 시간부터 7월 9일 망월동에 묻힐 때까지 이 날은 한열이가 뭘 하고 있지 싶으면서. 내 아들이 지금까지 살았으면 52살이거든. 제대로 컸으면 벌써 중년이 됐겠네. 보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있어."

이한열 어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촛불로 대통령 되지 않았나. 엄청난 촛불의 힘을 어떻게 갚아 나갈 건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양지웅 기자

배은심 여사는 30년의 시간을 되짚다 문득 그 세월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남북 이산 가족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용산 참사 피해자들, 세월호 가족들, 고 백남기 농민 가족들…. 배은심 여사는 "우리 국민들이 너무 아픈 꼴을 많이 봤다"며 나지막이 되뇌었다.

"다는 몰라도 내가 살아오면서 보면 나뿐만 아니라 힘센 사람들한테 엄청난 고통을 받고 살아온 사람이 너무 많아. 새로운 정부에서는 그 사람들 위한 정치 좀 해줬으면 좋겠네. 아픈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아픈 곳 좀 많이 어루만져 주는 대통령 좀 봤으면 싶어."

지난 겨울, 마치 30년 전 6월처럼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비정상의 시대를 끝내고자 촛불을 들었고 결국 그 힘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배은심 여사는 마냥 걱정이 앞섰다. 최루탄을 쏘며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렸던 독재 정권과 그 속에서 숨을 거둔 아들처럼 누군가가 또 제 명을 다 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6월 항쟁의 힘은 촛불혁명까지 이어졌고, 그 기세에 깜짝 놀란 정치권은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6월 항쟁을 만들었던 힘들이 촛불혁명이 돼서 나오지 않았나. 호헌철폐·독재타도 외쳤던 그 힘들이 30년 만에 광장에서 부활한 것이지. 나는 눈물이 나. 그런 힘들이 살아서 민주정부를 만든 거잖아. 이 촛불 만들기 위해 죽어갔던 노동자들, 농민들 이제는 죽었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 이 사람들 힘으로 촛불이 나온 거 아니겠나. 이제 명예회복 시켜줘야지. 결국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 엄청난 촛불의 힘을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갚아나갈지 걱정이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기념식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고 노래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오른쪽엔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가, 김 여사 왼쪽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기념식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고 노래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오른쪽엔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가, 김 여사 왼쪽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있다.ⓒ뉴시스

배은심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를 묻자 '잘 됐으면 좋겠네', '잘 될거야'만 수차례 반복하던 배은심 여사는 "이번에야말로 '과감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네!"라고 힘줘 말했다. 역사의 상처들을 보듬고, 해결해나가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87년 엄마'의 바람이었다.

"역사의 상처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면 많은 사람들한테 대통령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이번에는 좀 과감하게 해야지. 민주정부 1기와 2기 때 준비를 했으니 민주정부 3기에선 마무리해야 하는 거 아니요. 역대 대통령들 같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들 허무맹랑하게 넘기지 말았으면 좋겠어."

당신의 생각에는 민주정부 3기에서 꼭 마침표를 찍어줬으면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남과 북으로 떨어져 있는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배은심 여사는 "너무 거창한가"라고 되물으면서도 "아니, 할 수 있어요"라고 스스로 답했다.

"빨리 이산가족들 만났으면 좋겠다. 지척에 놔두고 형제 간, 부모 간 못 보고 있는 심정은 얼마나 애가 타겠나. 나는 한열이가 죽어서 묻어놨는데도 분하고 애타고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서 울컥하는데 이산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당장 통일은 못될망정 만날 수 있는 길이라도 만들어줘야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미 다 만들어 놓은 게 있잖아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 정신을 무시해서 그렇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닦아 놓은 기틀을 문재인 대통령은 잘 이행만 하면 되는 것이여. 통일이 별 것이냐. 서로 보고 싶은 사람 보게 하면 되는 거제."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의원 시절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이한열 기념관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의원 시절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이한열 기념관을 방문했다.ⓒ문재인 측 제공

배은심 여사는 '아드님이 그토록 바랐던 세상에 조금은 근접했을까요'라는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힘겹게 입을 뗀 배은심 여사는 "아직은 아니야"라고 답했다.

"한열이가 바랐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평등을 외치지 않았나 싶어.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억울한 사람이 없고, 억압받는 사람도 없는 평등을 외친 것 같아.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가 큰데, 큰 기대만큼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겠지.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하셨으니 촛불을 한시도 잊지 말고 그 힘으로 5년간 잘 하셔서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

다만, 최근 배은심 여사는 문재인 정부에 아쉬운 점이 하나 생겼다. 지난 18일 청와대가 '광복절 특사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양심수 석방이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투옥한 수십 명의 양심수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배은심 여사는 양심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지. 참 안타까워. 그 사람들은 죄가 없는 사람이거든.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야. 박근혜 정권이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를 만들어 감옥에 가둬 놓은 거 아닌가. 그 사람들 좀 빨리 나오게 해야지. 문재인 대통령도 고려 많이 해봤을 거 아닌가. 양심수들이 하루빨리 나와야지."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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