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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어쿠스틱 팝으로 들려주는 한 사람 마음 이야기

음반에는 사람이 있다. 한 장의 음반에는 최소한 한 사람이 있다.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의 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장의 음반이 만들어지기까지 함께 애쓴 이들은 당연히 그보다 많다. 다만 한 장의 음반 안에서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즐거워하고, 설레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한 사람. 음반은 바로 그 한 사람의 이야기 책이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한 사람.

물론 어떤 음반 속 주인공은 다른 음반 속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음반 속 주인공들이 개성 있는 목소리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음반 속 주인공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한 사람에 감응한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고, 이건 내 이야기라고, 이 노래는 내 마음 같다고. 보컬의 톤과 사운드의 질감, 멜로디, 리듬이 이야기를 음악으로 함께 바꾸지만, 음악 속 이야기를 구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건 노랫말이다. 솔직하고 감각적인 노랫말은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한 장의 음반을 한 사람의 자화상으로 완성한다. 대중음악은 그 많은 자화상들이 모여 만든 인간 드라마이며 인간학이다.

듀오 가을방학
듀오 가을방학ⓒ뉴시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수많은 인간을 한꺼번에 담아내기 어려운 음악에서는 늘 한 사람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 음악 속 주인공은 대개 특정 세대와 젠더, 계급, 세계관, 취향을 담지한다. 결국 한 음반을 좋아한다는 것은 음반 속 인물에 호감을 느끼거나 그 사람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동의에 가깝다. 그래서 특정 음반에 대한 반응을 통해 당대의 멘탈리티와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듀오 가을방학의 음반에는 어떤 사람이 담겨 있을까. 2010년 첫 정규음반을 내놓았던 가을방학은 머뭇거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을 담았다. 돈과 사랑과 결혼과 직장 같은 세속의 가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다해도 그 가치를 위해 자기 마음의 이끌림과 불편함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않는 사람은 쿨하고 까칠하며 솔직하고 섬세했다. 보컬리스트 계피의 목소리를 빌어 여성의 목소리로 구현되었으나 기실 정바비라는 남성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었던 이 예민한 주인공에게 매료된 이들이 가을방학의 팬이 되었다. 이전 세대에 없었다고 할 수 없으나 아무래도 지금 청춘을 통과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밖에 없는 가을방학의 음악은 그렇게 한 젊음의 이야기를 꾸준히 펼쳐놓았다.

그리고 2년여만에 새롭게 나온 가을방학의 새 음반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규 3집 이후 발표한 싱글을 모으고 새 노래를 더해 내놓은 비정규 음반 [마음집]에서도 제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음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 속 한 사람이다. 그/그녀는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같은 계절을 좋아한단 것만으로/이렇게 누군갈 좋아하게 되는/내가 이상한 걸까요”라고 반문하고, “그댄 절대 변하거나 하지 마요/내가 흔들릴 때는 꼭 안아줘요”라고 남다른 자신의 바람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조금 이상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저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다. 그/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 맥주를 들고 늘 듣던 노래를 틀어둔 채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삶을 갖고 어떻게 살든 가끔씩 완벽한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여름밤은 많이 남아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 이런 그/그녀는 삶을 아는 사람, 어른에 가깝다. 그 언젠가 자신의 모습이 “꼭 쓰레기 더미에 앉은 곰인형 같단 걸” 모르지 않고, “혼자가 된 자신에 감탄하며/조금은 웃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은 늘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결국 자신 안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는 없다 해도 자신의 상처와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서 “비 오는 날엔 모르는 노랜 듣고 싶지 않은”사람은 이제 어떤 일에도 처음처럼 어쩔 줄 몰라 허둥대며 정처 없지 않을 것이다. 그/그녀는 모르지 않는다.

“모두가 떠난 그 자리/나만 홀로 남”는 것 같은 기분을. 즐기지도 놓지도 못하고 서성대던 자신을. 지금의 자신이 그 때의 자신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래된 상처들이 자신의 일부가 될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덕분이고, 그만큼 자신의 마음도 단단해진 덕분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하여도/우린 모두 조금씩 다른 주기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차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이의 차이에 대해 인정할 줄 아는 그/그녀는 함께 무언가 해내고, 공동의 가치와 이익을 위해 살아가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을 차분하게 바라볼 줄 아는 개인주의자에 가깝다. 바로 이 진솔하고 성숙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을방학의 매력이자 가을방학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가을방학 콘서트 포스터
가을방학 콘서트 포스터ⓒ가을방학 콘서트 포스터

그렇지만 가을방학의 매력이 오직 이야기와 인간형만은 아니다. 편안한 어쿠스틱 팝 사운드에 담백하고 부드러워 은은한 계피의 보컬. 그리고 노래 속 이야기를 계피의 보컬로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멜로디는 가을방학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완성한다. 한 곡의 음악 속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출한 다양한 음악적 변주는 곡과 곡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의 곡들이 많은데 가을방학은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 연주와 드러밍뿐만 아니라 건반과 일렉트릭 기타, 현악기 등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보컬에도 조명을 잘 떨어뜨리면서 어쿠스틱 팝의 아기자기함을 극대화시켰다. 이 아기자기함은 가을방학의 음악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자 음악 속 한 사람의 내면이 이렇게 다채로운 마음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음악언어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이 음반은 음반의 제목처럼 한 사람의 마음을 모은 모음집으로, 혹은 마음이라는 집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음반으로 완성되었다. 흡사 자신 같은 음반. 나 같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하며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음반. 계속 듣고 싶은 친구의 이야기 같은 음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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