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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이제는 조금은 다른 지산을 만나고 싶다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지난 주말 경기도 이천시 지산리조트에서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산에서 밸리록 페스티벌을 시작한 해는 2009년이다. 올해로 9년째라고 할 수 있지만, 2013년과 2015년에는 안산시 바다향기 테마파크에서 진행했다. 지난해에야 다시 지산으로 돌아왔으니 실상은 6년째라고 해야 맞다.

그동안 국내외 음악산업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페스티벌 문화도 달라졌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수도권 여름 페스티벌을 독차지하고 있다가 지산으로 분화되었을 때만 해도 국내의 페스티벌 숫자는 양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다 세지 못하고, 다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났다. 수도권 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전주에서도 페스티벌이 열린다. 겨울을 제외하면 봄여름가을 내내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장르도 록, 팝, 재즈, 월드뮤직에서 일렉트로닉과 힙합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이다.

최근에는 일렉트로닉과 힙합 페스티벌은 비교적 장르 페스티벌 컨셉트를 지켜가지만, 대부분의 페스티벌들은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뒤섞는 분위기이다. 그러다보니 페스티벌 간의 변별력과 개성은 희미해졌다. 특히 국내 뮤지션 라인업이 대동소이 하다 보니 티켓 가격이 저렴하거나 더 유명한 해외 라인업을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로 시선이 쏠린다. 하지만 어지간한 해외 라인업은 이미 내한했고, 국내 시장 규모에서 초청할 수 있는 해외 뮤지션의 수도 한정적이다. 특히 여름 페스티벌은 일본 등 아시아 투어 일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 라인업에 무게를 싣다보면 티켓 가격을 낮추기도 어렵다. 그 결과 특정 장르 중심의 페스티벌을 제외한 페스티벌 사이의 차이는 갈수록 미미하다.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비슷비슷한 공간에서 비슷비슷한 라인업을 앞에 두다보니 호기심도 줄고 충성도도 떨어졌다.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한계가 느껴진 지산 락 페스티벌

올해의 지산은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그동안 거의 매해 지산을 찾았는데, 올해는 어느 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객 수가 적었다. 물론 비가 와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단지 비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같은 기간에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을 비롯한 페스티벌이 2개나 열린 것도 영향을 끼쳤다.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로 발길을 돌린 이들 중 다수는 예전 같으면 지산으로 향할 이들이었다. 이들이 지산을 찾지 않은 이유는 라인업 때문이었다. 올해 지산에는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 시규어 로스(Sigur Ros), 고릴라즈(Gorillaz)가 헤드라이너로 섰다. 넬,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이적, 자우림, 지코, 칵스, 혁오를 비롯한 국내 라인업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음악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외 라인업에서 큰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관객 수가 급감한 것이다. 이는 주최측인 CJ E&M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같은 시기 일본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출연진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경우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실 지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록 중심의 페스티벌에서 벗어나 팝과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올해에도 갈란트, 메이저 레이저, 이적, 지코 같은 이들이 주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록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은 이제 관용구로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록 음악의 인기는 이제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리듬앤블루스, 일렉트로닉, 힙합 등에 밀려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대응은 남다른 컨셉트를 보여주거나 획기적인 해외 라인업을 섭외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올해 지산은 CJ E&M 아트크리에이션국과 아트디렉터 호경윤, 미술가 권오상, 권용주, 노상호, 윤사비, 신도시, 홍승혜가 협업해 게이트와 무대를 디자인하고 작품을 지산 리조트 곳곳에 배치했다. 무대 디자인은 상큼했고, 많은 관객들은 야외에 전시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관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었다. 시청자들이 참여해 자신의 스타를 키워가는 방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시대에 걸맞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어쩌면 지산이 개선해야 할 지점은 CJ가 모두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그들의 룰대로 그들의 상품을 소비하고 전시를 지켜보며 공연에 환호하다 돌아가야 하는, 그래서 관객이 특별히 할 일이 없고 남다른 페스티벌을 만들 수 없는, 누구나 비슷비슷한 기억만 안고 돌아가야 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지산리조트의 환경은 비교적 쾌적하고, 운영 시스템도 계속 개선되고 있으며, 올해에는 유독 관객이 적어서 여유로웠지만 지금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해외의 빅스타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객이 몰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페스티벌이 늘어나고 내한 공연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해외 라인업만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한계가 있다.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그럼에도 추억으로 남을 무대들

그럼에도 올해 지산에서 만난 몇몇 뮤지션들이 만들어낸 순간들은 여름이 지난 뒤에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빼어난 가창력으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루카스 그래함(Lukas Graham), 이제는 메인 무대로 진출해도 좋았겠다 싶을 만큼 능숙한 무대 매너와 농축된 연습량을 폭발시켰던 밴드 칵스, 그리고 시규어 로스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꿈꿔왔을 야외 무대 공연을 멋지게 선보이고 돌아간 시규어 로스의 공연은 올해 지산의 백미였다. 특히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그래서 오로지 시규어 로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무대 위 달빛과 별빛 아래에서 특유의 몽환적인 사운드의 세계를 축조했던 시규어 로스의 야외 공연은 오래된 숙원을 풀어준 값진 무대였다. 결국 이 순간을 맛보기 위해 페스티벌을 기다리고, 티켓을 예매하고, 차편을 구하고, 짐을 꾸려 지산까지 가는 것이리라.

시규어 로스의 야외 공연
시규어 로스의 야외 공연ⓒ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아츠 페스티벌

솔직히 이제는 더위를 뚫고 지산을 찾아가는 일이 갈수록 망설여지고, 모든 공연을 다 보기보다는 기대되는 공연만 찾아보게 되는 중년 음악팬의 입장에서는 과연 언제까지 지산에 가게 될지 모르겠다. 이 또한 지나가고 새로운 유행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매년 지산에 갈 수 있으면 좋겠고, 그 때마다 조금은 다른 지산을 만나고 싶다. 공연만으로 즐거운 지산 말고, 찾아가고 머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지산. 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지산을 기다려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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