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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거리의 성직자 서영섭 신부 “노동이 자본 위에 있다는 게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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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직자가 있다. '신부님 같지 않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카톨릭 신부. '빡빡머리'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을 하고 뒤통수를 긁적이며 아스팔트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저 사람 누구에요?"라고 묻게 만든다.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매주 수요일마다 삭발을 한다. 그가 머리를 기르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로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일종의 의식이다.

수도복을 입은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복을 입은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민중의소리

서 신부는 2009년 4월 쌍용차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한 2천646명의 노동자에게 '해고무효'를 판결한 서울고등법원의 2심 결과가 대법원까지 유지되길 바랐다.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고 위로하던 재판부의 따뜻한 미소가 스쳐갔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이 됐다. 회사 측의 회계조작과 기획부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죽음의 행렬들. 그러나 법은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살인'의 문을 아예 활짝 열어버렸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어느 순간 '하느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희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밀어버렸죠. 지금도 단 한 명의 해고노동자도 남김 없이 공장에 돌아가지 않으면 머리를 기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원래 서 신부는 머리카락이 뒷목을 덮을 정도로 내려오는 장발이었다.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며 짧은 머리로 생활하던 그는 2009년 졸업 이후에는 장발을 유지하며 세상을 향한 나름의 '자유로움'을 발산했던 것이다.

2013년 4월 4일 새벽, 끝 없는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서울 대한문 앞을 지키던 '쌍용차' 천막 농성장이 1년 만에 기습 철거당했을 때도 서 신부는 그곳에 있었다. 중구청 공무원과 경찰의 폭력적인 철거에 저항하다 연행된 서 신부는 그때도 "신부님인 줄 몰랐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비슷한 '봉변(?)'을 몇 차례 당한 뒤에도 카톨릭 신부의 신분을 나타내는 '로만칼라'를 미사 봉헌 시간이 아니면 잘 입지 않는다.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300일이 넘도록 고공농성을 할 때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로만칼라를 입고 다녔죠. 그런데 그 옷 하나가 권위를 상징하니까 현장에서 벽이 생기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녀요."

'노동'에서 '예수'를 본 서영섭 신부
"교회는 노동이 자본보다 위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 중인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 중인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서영섭 신부 제공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백남기 농민, 차가운 바닥에서 오체투지로 싸우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서 신부는 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과감한 용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운명의 주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깨 걸고 함께 투쟁하는 '연대'의 동지다.

서 신부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나아가 노동을 통해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모습에서 예수를 본다. 그것이 예수의 삶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교회가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존엄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오히려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고 안타까워 한다.

"신자들 중에도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만을 노동의 최고 가치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노동에 귀천이 있나요? 교회는 노동을 하느님의 창조사업이라고 가르치거든요. 고결한 것이에요.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거죠. 인간이 노동을 통해 창조사업을 연속시키고 완성시키는 겁니다. 그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인격을 실현하는 거죠. 얼마나 고결한가요. 그런데 외려 그걸 무시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해요."

서 신부는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 역시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자본 우위의 사회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윤을 위해 생명의 존엄성도 내팽개치는 자본, 그것을 비호하느라 정작 국민의 생명은 지키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인 충성만을 요구하는 국가권력.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인간성이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닐 때도 그는 2천여년 전 핍박받던 예수의 모습을 봤다.

기득권과 나란히 서지 않았던 예수를 국가는 얼마나 불편하게 생각했을까. 초인적인 단식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촉구하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손을 잡아주던 프란치스코 교황. 그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범죄 권력'. 세월호에 가해지는 공격이 로마의 탄압을 받던 예수의 모습으로 서 신부의 눈 앞에 겹쳐졌다.

"세월호는 사람과 노동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불량권력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자본과 결탁한 권력은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끊임없이 조작과 은폐를 서슴지 않았어요. 이런 불의에 통탄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이고 교회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교황님이 방한하기 전에는 한국 교회에 그런 반성이 부족했죠."

"공감과 연대가 교회의 생명"이라고 단언하는 서 신부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보기에 좋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세상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는 평등한 세상에서 직업의 귀천 없이 모두가 존중 받는 세상을 '하느님'의 질서라고 믿는다. 그러나 노동자의 아들로서 목수 일을 한 예수가 받았던 편견과 경멸. 그 끔찍한 혐오가 오늘날 이 땅의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한다.

"교회는 노동이 자본보다 위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게 우리의 삶이고 하느님의 명령이에요. 제가 항상 신자들에게 '노동이 존중 받는 세상'을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그런데 돈을 위해 사람을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또 그걸 언제부턴가는 인정하며 살더라고요. 세상의 창조가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걸 무시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노동에 완고한 문재인 정부, 민중의 목소리에 민감해야"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서 신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실현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 개인의 가치와 권력의 행사가 일치되길 바란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서 신부는 '개돼지', '레밍' 발언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민중에 대한 혐오의 역사는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한 권력자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사회는 언제든지 민중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구조를 재생산할 뿐이라고 우려한다.

"역대 권력자들이 자신의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몰락을 자초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안 돼요. 실제로 새 정부가 아직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정부종합청사 앞에 있던 해고 노동자 천막을 철거하고 대형 화분을 갖다 놨어요. 하는 짓이 이전 정권과 똑같죠. 왜 이렇게 노동에 대해서는 완고한지 모르겠어요. 이건 계급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인데요."

서 신부는 "단순히 대통령 하나 바꾸기 위해 촛불이 모인 건 아니지 않느냐"는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가장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또 정권교체 전에는 연대의 이름으로 공동전선을 형성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이제는 노동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문 대통령 개인의 가치와 권력의 속성은 별개로 보니까요. 새 정부가 좀 더 민중의 목소리에 긴장하고 민감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 속에 소금 간직하라'는 예수 말씀 실천할 것"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김정우 전 쌍용차지부장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김정우 전 쌍용차지부장ⓒ서영섭 신부 제공

서 신부는 훗날 자신이 하늘나라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답하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투쟁 현장에서의 모욕과 폭력이 싫어서 양심을 외면했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고 늘 다짐한다.

서 신부는 지난 2013년 4월 4일과 6월 11일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 분향소 철거에 저항했다가 김정우 전 쌍용차지부장 등 8명의 시민과 함께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종교적 권위에 안주하기보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 소금이 되겠다는 그의 뜻은 최근 진행된 2심 결심공판의 법정 최후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했다.

(전략)

공권력의 불법과 탈법을 묵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한문에서 저희는 우리의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마저도 파괴되었습니다.

경찰의 언어폭력은 다반사였고 물리적 폭력도 가히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저희 모두를 모멸감과 수치감을 안겨준 폭력이었습니다.

가톨릭 신부인 저조차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매일 정신 수련을 위해 기도와 묵상을 통해 나름 건강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공권력의 폭력성에 피폐해진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라는 생각에 먹먹했습니다.

그런 모멸과 수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톨릭 신부들은 대한문 거리에서 225일 동안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 시간만큼은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이 멈춰지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 모두는 체험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예수 역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삶이었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 사랑인 가장 고통 받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실천했습니다.

1심 최후진술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제든지 이런 상황을 대면하게 되면 결코 피하지 않을 겁니다. 순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연대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서울고등지검장으로 임명된 윤석열 지검장의 이야기로 최후진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조직은 사랑하지만 사람에게는 결코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부당한 명령에 거부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희망을 발견합니다. 국가와 공권력이 병들지 않으려면 자정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3% 소금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비록 소수이지만 이 양심 있는 소수가 분명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희망차게 만들 겁니다.

저 역시 그러기 위해서 예수의 당부대로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르코 9,50) 라는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2017년 6월 2일 금요일
피고인 서영섭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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