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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1000만 촛불, 한상균 “우리의 주장은 정당했다”
2015년 12월 10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중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을 나와 경찰에 자진출두전 일주문에서 조합원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있다.
2015년 12월 10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중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을 나와 경찰에 자진출두전 일주문에서 조합원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 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입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

2015년 12월10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25일간의 피신을 끝내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이자,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를 이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인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권이 자신을 잡기 위해 벌이는 쇼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이같이 강조했다. 수천 명의 경찰은 조계사를 둘러싸고 자진 출두하는 한 위원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1급 수배범이 됐다. 자진 출두하는 그의 손에 경찰이 수갑을 채우자, 동료 조합원들이 분을 삼키지 못하며 외쳤다. “우리가 한상균이다! 한상균은 무죄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날의 구호는 1년여 뒤 현실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계의 요구는 점차 커져갔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016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상균을 석방하라! 민주주의 살려나자! 7.13 시국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016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상균을 석방하라! 민주주의 살려나자! 7.13 시국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사라진 공권력 폭력진압의 책임
1급 수배자가 된 한상균
“우리는 정당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올 무렵, 서울고법에서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위원장은 최후변론으로 “세상을 바꿀 100만 촛불을 밝히고 있으니, 우리의 주장은 정당했다”며 “민주주의와 민주노조를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광장과 거리에서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울려 퍼졌던 구호와 함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비정규직 철폐, 국정교과서 폐기, 노동개악 철회, 재벌개혁 등 촛불의 요구는 민중총궐기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회의 과정과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앞선 집회에서 공권력은 시작도하기 전에 집회참가자들을 범법자로 취급했다. 경찰은 ‘신고제’인 집회신고를 임의대로 ‘허가제’로 다뤘다. 세종로사거리 북단 집회행진을 금지시켰다. 행진 경로 및 인원에 대한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입장을 표명한 게 다였다. 부득이하게 집회신고 장소 밖 도로로 나와 있던 일부 시민을 빌미로 ‘선제적’으로 차벽을 설치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했다.

경찰은 ‘차벽 설치는 위헌’이라는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무시했다. 사상 최대의 경찰 버스를 투입했다. 민중총궐기 당일 날 투입된 경찰 버스만 600여대가 넘었다. 산성을 쌓아가며 집회 참가자들을 ‘적’으로 몰아가는 당시 경찰의 대응방식은 참가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물대포로 사용된 물의 양만 200톤이 넘었다. 경찰은 수백 개의 캡사이신 분사기를 사용했다. 살수차 모니터 작동 방법조차 모르는 경찰관이 집회참가 시민을 향해 주먹구구식으로 물대포를 발사했다. 강화유리를 깨버릴 정도의 위력을 자랑하는 물대포는 60대 농민을 쓰러뜨렸다. 농민은 깨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공권력이 자행한 폭력진압 사실은 지워버리고 민중총궐기 집행부를 IS 테러단체에 비유하는 등 불법적인 폭력집단으로 매도해 갔다. 그 중심에 한상균 위원장 등 총궐기 집행부가 있었다. 박근혜 정권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총궐기 집회 주도 혐의를 씌우고 수배에 나섰다. 수천 명의 경찰이 한 위원장이 도피한 조계사를 둘러쌌다. 양심에 따라 집회를 이끈 해고노동자가 한 나라의 1급 수배자가 되는 웃픈 순간이었다.

2015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경찰에 자친출두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격려하고 있다.
2015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경찰에 자친출두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격려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 출신인 한상균 위원장이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다. 지난해 7월 옥중편지에서도 그는 “노사의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이용하거나 파국의 길로 몰아넣는 경우도 많았다”며 “해고가 아닌,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8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간 쌍용자동차 사태, 이를 온몸으로 체감한 한상균 위원장에게 ‘해고는 살인’이란 말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가 쉬운 해고를 조장하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에 저항한 이유였다.

경찰은 그런 그를 폭력진압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당시 경찰은 한 위원장에게 집회를 주도한 혐의 외에도 ‘소요죄’ 혐의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소요죄는 1980년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에 맞서 총을 들었던 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1986년 5·3 인천항쟁 지도부에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적용했던 혐의다. 소요죄 논란은 경찰의 여론몰이용에 지나지 않았다. 검찰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소요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요죄 추가 적용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 폭력진압의 정당성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의 양심과 경찰의 폭력진압보다 박근혜 정권이 지목하는 ‘불법집회’에 초점을 뒀다. 특히 1심은 “한 위원장이 불법행위를 지도하고 선동해 큰 책임이 인정된다”며 징역 5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2심은 “경찰의 일부 조치가 시위대를 자극했던 측면도 있어 보인다”면서도 경찰의 위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 위원장에게 징역 3년 및 벌금 50만원으로 실형을 확정했다.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6년 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한 기간동안 평화적 집회 보장 등에 대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6년 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한 기간동안 평화적 집회 보장 등에 대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국제사회는 한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유엔 실무그룹)’은 한 위원장의 구속을 두고 유엔 인권헌장에 위배된 ‘자의적 구금’이라고 규정하며 석방을 권고했다. “한 위원장이 집시법을 위반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정부가 제출한 의견서와 다량의 사진을 실무그룹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 인물 중 누가 한 위원장인지 구분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엔 실무그룹은 경찰의 집회 금지 및 장소 제한에 대해 국제법상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실무그룹은 “교통 방해 또는 시민의 일상생활을 방해한다는 점을 근거로 집회를 금지하거나 불법화하는 것은 정당한 집회 제한의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집회 주최자들이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집회 주최자들의 권리행사를 저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한 위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국제사회의 권고조차 외면했다. 또 한명의 양심수를 만들어 낸 것이다.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까지 지난 정권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2심 최후진술에서 한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차벽과 물대포를 배치하며 헌법과 민주주의를 가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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