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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드물고 귀하고 흥겨운 전통과 뿌리 옹호 음악
노선택과 소울소스 정규 1집 ‘Back When Tigers Smoked’
노선택과 소울소스 정규 1집 ‘Back When Tigers Smoked’ⓒ동양 표준 음향사
노선택과 소울소스 정규 1집 ‘Back When Tigers Smoked’
노선택과 소울소스 정규 1집 ‘Back When Tigers Smoked’ⓒ동양 표준 음향사

사실 대부분의 음반은 커버(표지)를 보면 대충 안다. 음반 커버는 이 음반이 무엇을 말하려 하고, 어떤 사운드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드러낸다. 가령 예전 트로트 음반 표지에는 항상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가수들이 등장했다. 성인 음악이라는 의미다. 재즈 레이블 ECM이 자신들의 음반 이미지를 일관되게 통일해 디자인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정규 1집 [Back When Tigers Smoked]의 커버는 어떤가. 민화작가 김혜경이 그린 민화에는 소나무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토끼가 물려주는 곰방대를 물려한다. 또 다른 이미지의 민화에는 호랑이 한 마리 복사꽃 사이에 앉아 있다. 현대의 유화도 아니고 추상화도 아니며 사진도 그래픽 디자인도 아니다. 옛 그림 스타일인 민화이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고급스럽기보다는 민중적이고 대중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림 속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다. 이를 드러내고 있어도 무섭지 않고, 큰 눈을 반짝이고 있어 귀여울 지경이다. 대부분의 민화에 배어있는 해학이 똑같이 느껴진다. 음악에서도 흥과 유머가 예상된다.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추구하는 레게 음악은 기실 한국의 민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에서 싹터 성장하는 동안 특유의 리듬감으로 듣는 이들을 춤추게 하고, 여유롭게 했다. 훗날 펑크와 만나고 덥(Dub)사운드로 나아가면서 조금 다른 사운드를 갖게 되었지만 레게 음악은 민화처럼 친근하고 여유로울 때가 많다. 민화 안에 질박한 해학과 삶의 의지가 드러나듯 레게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민화와 레게를 함께 관통하는 정서는 토속이라거나 민속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삶이다. 이제는 토속, 민속, 전통, 자연 같은 단어와 이미지들 모두 자본주의의 상품 구조 안에 포획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단어들에 쌓인 시간은 자본주의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는 오래도록 땅에 뿌리내린 채 살아왔고, 크게 달라진 적 없는 근대 이전의 삶은 자본주의의 시간보다 길었다. 땅과 강과 바다에 기대어 마을에서 함께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온 시간은 전통이라는 이름 안에 무수한 유무형의 유산을 낳았다. 물론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이었으나 그 모든 전통이 그저 낡고 쓸모없는 유산만은 아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이번 음반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그 전통과 뿌리에 대한 옹호와 재현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한국 전통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분명 레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연주하는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의 사운드와 얼마나 똑같은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레게 음악의 다양한 방법론을 이미 능숙하게 체현한 이들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건반, 드럼, 바이올린, 퍼커션, 색소폰, 플루겔혼 등의 악기로 레게의 사운드를 쌓으며 그 사운드 안에 담지해 있던 질박함과 흥겨움을 한국적 질감과 정신으로 연결한다.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연결하고자 하는 한국적 질감은 한국 전통악기와의 협연이기도 하고, 한국의 전통 소리와의 협연이기도 하다. 또한 전통적 가치에 대한 옹호이자, 오늘의 한국이 지향해야 할 오래된 정신이기도 하다.

투박한 뿌리음악의 힘과 정서까지 복원해냄으로써 흙냄새 가득한 기쁨

음반의 첫 곡 ‘The Beginning of The End’에서부터 이들의 곡은 철학적이고 사운드는 농염하다. 이어지는 ‘The Night of Mt. Naeba’는 펑키한 리듬감 위에 타령 같기도 하고 트로트 같기도 한 질감의 멜도리를 펼쳐놓는다. 멜로디가 반복되고, 서로 다른 악기에 의해 변주되며 더욱 혼곤해진다. 첩첩산중 당나귀를 타고 취해 들어가는 듯한 꿈 같은 사운드의 세계는 재즈를 비롯한 여러 장르를 자연스럽게 녹이고 있다. 레게의 문법에 충실한 ‘Singing a Song and Dance’에서는 “삶에 힘겨울 때” “우리 모두 덩실덩실 춤을”추자고 레게를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Blooming Mind’는 바이올린과 건반 중심의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흥겨움을 창출하고, ‘Sound Man’은 레게의 리듬감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어 노래함으로써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레게, 한국의 레게에 이른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노선택과 소울소스ⓒ동양 표준 음향사

좀 더 한국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곡들은 중반부부터 끊임없이 이어진다. ‘Red Tiger’는 소리꾼 김율희의 질박한 소리를 전면에 배치하고 덥으로 연결함으로써 두 음악이 지닌 끈끈하고 농염한 기운을 훼손시키지 않고 레게와 한국 전통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다. 그리고 ‘조랑말을 타고’는 이 땅에서 출발해 세계를 연결하는 여행의 서사를 풀어놓으며 한국적인 삶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드러낸다. 노랫말로 슬쩍 된장찌개와 모내기와 백두산을 이야기 할 때 드러나는 것은 한국의 전통에 대한 순박한 자긍심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화려한 연주력을 뽐내는 곡은 최근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전통성과 현장성을 노랫말과 연주 안에 담아낼 뿐 아니라 투박한 뿌리음악의 힘과 정서까지 복원해냄으로써 흙냄새 가득한 기쁨을 안겨준다. 지금 이 곳의 이야기는 ‘이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는 사설조의 노래로 “불의의 만행들”을 고발하면서 다시 지금 이 곳의 노래를 이어나간다.

‘향농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사의 중요함과 기쁨을 역설하고, 온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 농촌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소박하고 숭고하고 오래된 전통적 생태주의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요즘 “농촌이 살아야/도시가 살고”라고 노래하는 음악이 얼마나 되는가. 1990년대 중반 ‘신토불이’ 이후 거의 소멸해버린 메시지이다. 게다가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반에 담긴 메시지는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멈춤없는 경제성장/과거에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노랫말로 자본주의 세계화와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함께 생태적 삶을 옹호함으로써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은 전통에 대한 일방적 찬미와 계승을 벗어난다. 전통과 토속적 삶의 형식에 갇히지 않고 그 본질을 오늘의 삶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하면서 튼실한 음악 언어로 외화하는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은 농투사니의 그을린 팔다리처럼 굳건하면서도 여유롭고 다정하다. 전통을 지키고 되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많아도 전통의 본질과 정신을 오늘의 언어와 현실로 재현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오늘,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은 드물고 귀하다. 스스로 드물고 귀하다 말하지 않고 그저 흥겹게 만인의 노래가 됨으로써 더욱 드물고 귀하다.

필자 사정으로 하루 늦게 게재됩니다. 독자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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