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한국의 사학은 교육기관인가, 탐욕스런 자본인가?

때는 1986년,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때 일이다. 조선대 총장 박철웅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7시에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모든 교수들의 출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한 뒤 교수들에게 운동장 두 바퀴를 도는 이른바 구보 훈련(!)을 지시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 교수들이 총장의 지시에 따라 헉헉거리며 운동장을 뛰었다. 구보가 끝나면 1970년대 국민학교 애국조회처럼 총장의 훈화가 30분 동안 이어졌다. 이 훈화에서 박철웅이 남긴 유명한 이야기 한 대목.

“시국이 혼란스러울수록 나서는 놈만 손해야. 일제 때 독립운동 한다고 나대던 놈들 보라고. 이 박 총장처럼 잘된 놈 있어?”

그런데 이 엽기적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성인을 자처하는 교수들 중에서도 가끔 이런 미친놈이 있기 마련이다. 기회를 틈타 총장에게 아부하고 싶었던 한 교수가 총장의 훈시가 끝나자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총장님, 우리 한 바퀴 더 돕시다!”

한국은 사학(私學)의 천국이다.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사학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 대학 중 사학의 비중은 무려 80%에 이른다. 국공립 대학 비율은 20% 밖에 안 된다. 반면 극강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조차 국공립대 비중이 70%나 된다. 스웨덴 독일 핀란드 등 복지강국의 국공립대 비중은 90%, 호주의 국공립대 비중은 무려 98%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사학의 성격이 ‘헌신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탐욕스런 자본’에 훨씬 가깝다는 점이다. 한국 사학은 교육보다 돈을 버는데 훨씬 관심이 많다. 한국 교육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형적인 이유는 바로 이 탐욕적인 자본이 교육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친일 자본으로 출발한 한국의 사학

한국 사학재단의 역사는 대부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기에 시작됐다. 이때만 해도 사학재단을 만든 이들은 강력한 항일운동가까지는 아니어도, ‘민족이 강해지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민족주의적 계몽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제도 식민지배 초기에는 이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계몽주의자들이 항일운동가들보다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 일본의 대륙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일제는 민족주의적 계몽주의자들마저 압살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바탕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학마저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해방이 됐을 때 살아남은 사학들은 대부분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이들이었다. 이들 대부분 학생들을 정신대와 학도병으로 보내는 데 혁혁한 전과(?)를 세운 자들이었다.

사학의 또 다른 뿌리는 해방 이후에 형성됐다. 해방 이후 한국에는 초중고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1945년에 2800개였던 초등학교는 1955년 4200개로 늘어났고 1945년 165개밖에 없었던 중고등학교는 1955년에 1500개로 급증했다.

이처럼 학교가 늘어난 이유는 이승만 정부가 교육의 주도권을 사학에 넘긴 탓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매우 높았지만 정부는 교육기관을 늘릴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지주들에게 “학교를 지으면 재산을 몰수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친일파 지주들에게 일종의 구원의 목소리였다.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도 넘기고 교육자 소리도 듣는 일석이조의 조건이었다. 여기에 농지개혁을 피해 사학을 세운 지주들까지 합류하면서 한국의 사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재산 도피처라는 성격이 크게 강화됐다. 애초부터 사학의 설립 목적이 교육이 아니라 재산보호와 이윤추구였다는 이야기다.

막대한 보수 카르텔을 구축한 한국의 사학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선전으로 여대여소 국면을 만든 참여정부는 이듬해 사학법 개정에 나섰다. 개정안 핵심은 사학의 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개방이사제롤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감시기구의 도입에 온 나라의 보수 세력들이 그야말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장외투쟁에 나서며 “사학법 투쟁은 나라를 위한 투쟁이다. 끝까지 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보수 세력이 이 문제에 결사적 투쟁 의지를 내비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학의 문제가 단지 수백 개 재단의 비리 문제를 넘어서서 100년 전통의 친일파 집단들이 기득권을 수호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2014년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 등 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이 퇴직 후 사학재단의 이사에 오른 경우가 262명이나 됐다. 교육부 출신은 191명, 장·차관 출신은 41명이었다. 이러니 한국 사회가 사학의 고리에 더 단단히 엮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오랫동안 독재정권과 결탁하면서 이념적으로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다. ‘사학비리의 지존’으로 불리는 상지대 김문기 이사장은 1986년 강사를 채용할 때 1000만 원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격렬한 투쟁을 마주해야 했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양지웅 기자

그런데 이 무렵 상지대 본관 옥상 위에서 대량의 삐라가 살포됐다. 삐라에는 ‘가자 북의 낙원으로, 김일성 수령님과 협조해서 통일 이룩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치안본부 경찰들이 상지대에 들이닥쳤고, 학생 간부 150명이 체포되며 학교가 쑥대밭이 됐다.

하지만 수사결과 이 삐라를 뿌린 사람은 학교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김문기의 사위로 드러났다.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용공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자들, 이들이 대한민국의 사학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사학개혁,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

2005년 개정됐던 사학법은 보수 세력의 엄청난 반발(이라고 적고 ‘지랄’이라고 읽어 마땅하다)에 2007년 재개정됐다. 100년 전통의 친일자본이 장악한 사학은 생각보다 매우 막강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주요 매체까지 엮여 있어 이 카르텔을 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05년 사학관계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학교문을 닫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늘어놓았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005년 사학관계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학교문을 닫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늘어놓았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냉정하게 말해 한국의 사학은 교육기관이라는 명목 아래 세금을 축내는 학교기업이다. 그것도 뿌리가 친일자본에 있는 명백한 이윤추구형 기업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사학만큼 이윤에 집착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도입한 역사보다 한국의 사학들이 비정규직 교수를 도입한 역사가 훨씬 길다. 최근 대놓고 “돈 안 되는 학문은 안한다”며 인문학 무시 풍토를 주도하는 곳도 사학이다.

한 사립대 총장(이사장 아들)이 학생들 등록금 1억 5000만 원을 단란주점에서 펑펑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학의 추악한 일면이 다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 교육부가 공개한 전북의 한 사립대 종합감사 결과다. 교육부가 파악한 이 학교의 배임 미치 횡령 금액은 31억 원에 이른다.

교육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감사결과를 상세히 적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교육부의 이런 적극적 태도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에 명시한 ‘사학비리 근절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 방침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부는 감사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사학비리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처리해 사학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도 올해 안에 안을 만들어서 사학법 개정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이 개혁에 보수세력들이 또 얼마나 한국 사회를 난장으로 만들지 매우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 난관을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교육을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비리집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해내야 한다. 교육만큼은 자본과 이윤이 판치지 않는, 순수한 공적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완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